‘인재영입 리스트’ 사전유출에 최고위원 반발 등 ‘집안단속’ 실패…보수통합 내세워 위기 탈출 모색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인재영입 논란으로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11월 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는 황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한국당이 박찬주 전 육군대장을 접촉한 것은 지난 5월 말쯤이다. 당시 황교안 대표는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추진에 반발하며 전국 장외 집회를 돌고 있었다. 집회 일정 중 대전에 들른 황 대표는 박 전 대장에게 직접 연락해 대전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힘을 보태 달라”는 말과 함께 영입을 제안했다.
박 전 대장 영입은 황 대표를 옹립했던 친박계에서 주도했다. 박 전 대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친동생 박지만 씨 육사 동기(37기)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냈던 김관진 전 장관 직속 후배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공화당 공동대표이자 강성 친박으로 분류되는 홍문종 의원과는 오랜 친분을 맺기도 했다. 그만큼 친박계와 밀접하다.
한국당 영입 실무를 담당했던 측에서는 박 전 대장 장점을 크게 세 가지로 봤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잘못된 적폐청산의 대표적인 희생양 △인재 영입으로 안보 프레임 강화 △긍정적인 지역민심이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천안이 고향이고, 지역 기반(천안을)을 잘 다져놔서 당 자체 분석을 통해서도 지역에서 충분히 당선이 가능한 것으로 전망됐다”라고 귀띔했다.
박 전 대장은 2013~2017년 공관병에게 감을 따게 하고 텃밭 관리를 시키는 등 ‘갑질’을 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결국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그에게 현재 걸려있는 재판은 부하의 인사 청탁을 들어줬다는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다. 이는 서울고법에서 벌금 400만 원이 선고된 상태다.
박 전 대장을 필두로 1차 인재영입 명단은 확정됐고, 10월 31일 성대한 환영식을 계획하며 준비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런데 환영식을 이틀 앞둔 10월 29일, 박 전 대장을 포함한 인재영입 일부 리스트가 영남권 지역신문에 보도되며 사달이 났다. 언론은 일제히 박 전 대장 영입 소식을 보도하며 ‘공관병 갑질’을 다시 꺼내들었다. 1호 인재에 대해 ‘실망스럽다’라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11월 4일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별관에서 갑질 논란과 현안 등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10월 30일 열린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선 성토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박 전 대장 영입 소식을 몰랐던 일부 중진 의원들은 공관병 갑질에 대한 비판 여론을 거론하며 1호 영입이라는 상징성과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하지만 황 대표 등 지도부에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리스트 유출’이었다. 보안을 철저히 중시하는 황 대표의 성격상, 지도부 내에선 유출자가 누구인지 자체 파악에 나섰고 결국 황 대표 측근 인사가 지목됐다. 첫 인재영입 발표를 앞두고 황 대표가 집안 단속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더 큰 문제는 그날 오후 발생했다. 조경태 정미경 김순례 김광림 신보라 최고위원 전원이 인재 영입을 담당한 박맹우 사무총장을 불러 비공개 회동을 한 것이다. 사실 이날 자리는 인재영입을 논하기 위해 모인 자리는 아니었으나, 조경태 최고위원 등을 중심으로 박 전 대장에 대한 문제제기가 적극 제기됐다. 급기야 최고위원들은 ‘부적합’ 판정을 내렸고, 조경태 최고위원은 직접 기자들 앞에서 서서 “(이번 영입은) 부적절하다”고 발언했다.
외형상으로 보기에 당 대표가 주도한 인재영입이 또 다른 지도부인 최고위원들에게 막힌 형국이 됐다. 대표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한 비박계 중진의원은 “박찬주 영입 과정에서 나타난 잡음들은 황 대표가 정치 신인이라는 약점을 그대로 노출시켰다”며 “최고위원들도 인재영입에 문제가 있다면 따로 대표에게 건의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언론에 대놓고 노출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대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결국 10월 31일 환영식에서 박 전 대장 영입은 보류됐고, 박 전 대장이 11월 4일 기자회견을 자처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황 대표 측과 별다른 조율 없이 나선 기자회견에 나선 박 전 대장은 자신의 갑질 의혹을 폭로한 군인권센터 소장을 향해 “삼청교육대를 보내야 한다”는 발언으로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당은 결국 박 전 대장의 영입을 취소했고, 예정된 2차 인재 영입 발표도 일단 미루는 것으로 결정했다.
‘박찬주 사태’를 통해 황 대표 리더십과 측근 그룹의 문제가 나타났다는 비판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표가 ‘정치 신인’이라는 약점이 있다면 폭 넓고 적절한 조언이 이뤄져야 하는데, 측근 그룹을 영남권과 친박계가 꿰차고 있어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다.
측근 문제는 11월 4일 출범한 ‘총선기획단’에도 번지는 양상이다. 기획단장은 박맹우 사무총장(재선·울산), 총괄팀장은 이진복 당 상임특보단장(3선·부산), 간사는 추경호 전략기획부총장(초선·대구)이 임명되는 등 핵심 요직은 친황계 및 영남권 의원들이 차지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총선기획단의 청년, 여성, 비문인사 등 다양한 조합과 대조되며 “총선 체제 돌입부터 여당에게 기세를 뺏겼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인재 영입 논란부터 시작된 당내 불만 기류는 급기야 쇄신 요구로 이어지며 ‘중진 용퇴론’이 터지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친박계 김태흠 의원은 11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영남권과 서울 강남 3구 등을 지역구로 한 3선 이상 의원들은 용퇴하든지 수도권 험지에서 출마해야 한다”며 “원외와 전·현직 당 지도부, 지도자를 자처하는 인사들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했다. 김 의원 제안은 인재영입 논란과 총선기획단 출범이 발단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요구에 초선 의원들도 가세하며 전·현직 지도부와 잠재적 대권후보군,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을 향한 험지 출마론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거세지는 쇄신 요구에 황 대표가 꺼내든 돌파 카드는 보수통합론이다. 황 대표는 11월 6일 “자유 우파의 모든 뜻있는 분과 함께 구체적인 논의를 위한 통합협의기구 구성을 제안한다”며 보수통합, ‘보수 빅텐트’ 등을 공론화했다. 황 대표는 11월 2일과 3일, 주말 동안 통합론 마련에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격 제안을 통해 보수통합 논의는 불이 붙는 모양새지만, 결국 인재영입 논란과 인적쇄신 요구 등으로 마주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황 대표 측은 “보수대통합 제안은 미리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위기 돌파를 위해 급조된 안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권준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