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고용 늘리기? 그 정치적 구호 자체가 문제…전체 고용 늘어야 청년 고용도 늘어”
심요한 감독(35)이 청년 정치인을 다룬 영화 ‘비례대표(가칭)’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서핑 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로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쥔 충무로 예비 스타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 영화 신예 발굴 프로젝트 S#1(씬 원) 아카데미 1기로 선정돼 내년 2월까지 ‘비례대표’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일요신문은 심 감독과 청년 정치인의 만남을 주선해 청년 정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
[일요신문] 우린 진짜 청년 정치인이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있어 봐야 비례대표다. 젊은이 표 좀 끌어들이겠다며 만들어진 비례대표 제도가 거의 유일한 청년의 정치 진입로가 됐다. 좁아도 대부분의 정치 지망생에겐 소중한 진입로다. 하지만 그 길을 거부한 배포 큰 청년 정치인 둘이 등장했다. 청년 정치인 이기인 바른미래당 성남시의원(35)과 이준석 전 바른미래당 최고위원(34)은 “청년 딱지 같은 거 굳이 필요 없다”고 외쳤다.
11월 14일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이기인 시의원을 인터뷰하는 심요한 감독. 상에는 ‘대선’, ‘진로’, ‘좋은데이’가 올랐다. 사진=이종현 기자
바른미래당 청년 정치인 투톱과 심요한 감독이 11월 14일 오후 6시 30분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포크댄스’에서 만났다. 진짜 청년 정치인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정치 구조가 궁금해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된 심 감독에게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이기인 시의원은 오랜 연구 대상이었다.
정당에서 청년 할당을 받아 비례대표가 되는 여타 청년 정치인과 달리 바닥부터 다져 온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지역구에서 계속 도전하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현재 웬만한 국회의원보다 영향력이 크다. 일부 언론사는 기사를 작성하며 이 전 최고위원을 ‘의원’으로 적는 실수를 할 정도다. 이기인 시의원은 2014년 지방선거 때 바른미래당 후보로 지역구에서 유일하게 당선됐다.
둘의 공통된 생각은 ‘청년 딱지의 불필요성’이었다. 이기인 시의원은 “난 청년 팔이 자체를 매우 싫어한다. 청년 비례대표라고 뽑아놨지만 그들이 청년의 대표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이어 “할당제 등으로 청년에게 공천을 보장한다거나 어떤 특권을 주는 정치권의 행동은 청년을 포용한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명한 “내가 직접 나서겠다‘ 칼잡이 액션을 흉내내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 사진=이종현 기자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정치권에서 늘 청년, 청년 그러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다. 큰 그림으로 보면 구조적인 문제에 있어서 청년 문제만 떼어놓고 해결하려는 건 정상적인 접근 방식이 아니다. 취업만 하더라도 사회 구조 자체가 피라미드로 돼 있는데 청년만 늘린다고 그들을 임원 시키고 부장 시킬 순 없는 노릇이다. 청년 고용을 늘리겠다는 정치적 구호 그 자체가 문제라곤 왜 생각 안 하나 모르겠다. 고용 자체가 늘어야 청년 고용이 느는 거지 청년 고용만 딱 늘리는 방법은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일단 청년 비례대표로가 뽑힌 사람들 경력을 잘 따져 보면 대체 저 사람들이 뭘 했길래 정치를 한다고 나섰나 싶다. 하는 행동도 문제가 많다. 지금 청년 비례대표라고 뽑아놓은 사람들은 기성 정치인 하는 짓을 따라 무슨 예쁜 정책 제안 같은 걸 한다. 그런 뒤 청년 여럿이랑 사진 찍고선 ‘난 청년한테 인기가 좋아’하며 자기 위로를 한다. 진짜 그걸 청년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며칠 지나면 그 청년들은 사진 같이 찍은 행동이며 그 정치인 이름조차 다 까먹는다. 청년 비례대표의 큰 착각이다. 선거 나와 봐라. 다른 세상이다. 그걸 다들 모르니까 비례대표 끝나고 정치경력 이어가는 청년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둘의 정치 시작은 일상이라는 ‘바닥’에서 얻은 경험 때문이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정치를 시작하게 된 건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병역특례로 복무하면서 ‘배나사(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활동을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이었는데 모든 과정을 끝낸 한 여학생이 날 불쑥 찾아와 치마를 올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며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더니 ‘이것 좀 보라’더라. 핏빛으로 물든 허벅지가 보였다. 의자에 묶인 채로 맞으며 온 삶을 학대당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부모와 분리해 시설로 이끌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시설이 내리 폭력으로 돌아가는 곳이었다. 그때 사회 구조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생기며 뭔가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기인 시의원. 사진=이종현 기자
그들에겐 비례대표 같은 급행열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정치인이 되고 싶었던 이기인 시의원은 그냥 무작정 자신이 살던 곳 지역구 국회의원 이종훈 전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을 찾아갔다. ”돈도 필요치 않으니 그냥 일만 시켜 달라“고 했다. 석 달 뒤 공석이 생긴 인턴 자리는 그의 몫이 됐다. 밑바닥 정무를 맡아 달린 지 1년, 그에게 경기 성남시의원 선거 제안이 왔다. 그는 바로 선거에 뛰어 들었다. 2014년 지방선거 때 바른미래당 후보로 지역구에서 유일하게 당선된 인물이 됐다. 벌써 재선이다.
2011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등용됐다는 이유로 ‘박근혜 키즈’라고 낙인찍힌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한창 주목을 받던 시절 비례대표가 될 기회가 많았다. 그는 포기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하려면 할 수 있었다. 2012년 총선 때 당에서 ‘비례대표 다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넌 어떠냐’고 해서 그냥 그러라 했다. 별로 관심 없었다. 큰 정치를 하던 사람은 비례대표를 하거나 자기 유리한 선택만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을 오래한 것도 아니었다. 생각해 보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 1.5번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1.5번 했다. 큰 그림 보고 가는데 선거 몇 번 떨어지는 건 내게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둘은 더 큰 곳을 바라본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일단 두 번이나 떨어진 자신의 지역구에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앞날이 흐리다. 바른미래당 상황이 풍전등화인 까닭이다. 자칫 이 전 최고위원이 다져 놓은 바른미래당 지역구가 날아갈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는 뱃심 주며 말했다.
”난 뭐래도 상관없다. 고향 믿고 공천 받아서 국회의원 배지 대충 달려는 사람 지역구 찾아가 무소속으로 붙으면 된다. 이길 자신 있다.“
셋이 모인 곳은 ‘얼룩돼지’ 전문점이었다. 아직 생소한 얼룩돼지는 우리가 가장 흔히 먹는 돈육 삼원교배종과 영국 버크셔종의 장점을 교배로 뽑아낸 돈육계의 샛별이다. 흔하게 정권을 잡았던 새누리당과 우연히 닿아 나란히 정치 생활을 시작한 두 젊은 정치인은 기성 정치인과 달리 ‘진짜 바닥’과 교배되는 과정에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베리코를 비롯해 얼룩돼지 등 더 매력 있는 맛의 돈육을 찾는 소비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소비자 마음이나 유권자 마음이나 매한가지인 법이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심요한 감독은 누구? 심요한 감독은 최근 충무로에서 주목 받는 영화감독이다. 1984년생인 그는 2011년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대형 광고 기획사에서 4년 정도 근무했다. 회사원 가운데 가장 자유분방한 광고업계도 그에게는 답답했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영화쟁이 꿈을 버릴 수 없었다. 2014년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 2016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으로 향했다. 11월 14일 이준석 전 최고위원과 이기인 시의원을 인터뷰하는 심요한 감독. 사진=이종현 기자 낭중지추, 그가 주머니를 뚫고 나온 건 2016년 일이었다. 그가 연출한 영화 ‘훌륭한 영화’가 2016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국제경쟁 본선에 진출했다. 이듬해 서핑광인 그는 한국에서 생소한 서핑 영화 만들기에 착수했다. 그렇게 탄생한 독립영화 ‘어서오시게스트하우스’는 201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코리안 판타스틱 관객상을 거머쥐었다. 독립영화지만 배우 손종학과 신재훈 등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10년도 더 된 기아 레토나를 스스로 정비해 몰고 다니는 그는 영화진흥위원회 씬 원 아카데미 1기에 발탁돼 현재 영화 ‘비례대표’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내년 2월 완성될 이 시나리오는 그의 첫 상업영화 도전작이 될 예정이다. 최훈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