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MC’ 아닌 신인 트로트 가수 변신 “제일 높은 자리서 가장 낮은 자세로” 제2의 전성기 평가
요즘 유재석을 바라보는 여론과 언론의 시선이 달라졌다. 2018년 초 12년 동안 방송되던 MBC ‘무한도전’이 끝난 뒤 그의 위기를 진단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과연 유재석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국민 MC’ 유재석이 KBS 1TV ‘아침마당’ 생방송에 신인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출연했다. 사진=‘아침마당’ 방송 화면 캡처
#‘무한도전’ 없는 유재석?
2018년만 해도 “유재석 위기”라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무한도전’의 빈자리가 컸다. 그의 역량을 가장 크게 발휘할 수 있는 놀이터가 사라진 셈이었다. KBS 2TV ‘해피 투게더’와 SBS ‘런닝맨’을 진행하고 있지만 “전성기가 지난 프로그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해피 투게더’ 시청률은 3%대를 전전하고 있고, ‘런닝맨’도 최근 반등했지만 6% 안팎에 그치며 전성기 때와 비교하면 ‘사세’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유재석이 새롭게 선보인 프로그램도 통 힘을 쓰지 못했다. 그와 넷플릭스가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범인은 바로 너’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SBS ‘미추리 8-1000’은 시즌 1, 2가 방송됐지만, 현재 이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대중은 많지 않다. JTBC ‘요즘 애들’, tvN ‘일로 만난 사이’ 역시 그동안 유재석의 위상에 걸맞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유재석의 하락세는 강호동과 비교됐다. 지난 2011년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가 방송 복귀한 강호동은 ‘달빛프린스’, ‘별바라기’, ‘투명인간’을 비롯해 다시 진행을 맡은 ‘스타킹’과 ‘무릎팍도사’의 반응마저 지지부진해 슬럼프에 빠졌다. 그런 그가 ‘아는 형님’과 ‘한끼줍쇼’, ‘신 서유기’ 등으로 대중의 호응을 얻으며 다시금 정상의 자리에 복귀하기까지 약 3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강호동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유재석이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관측도 적지 않았다. ‘무한도전’이 주는 무게감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재석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편수가 많은 편도 아니다. 다양한 도전을 통해 그 중 성공하는 프로그램을 찾기보다는, 자신이 출연할 만한 프로그램을 취사선택하는 편이라 침체기가 길어질 것이란 전망도 줄을 이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유재석은 주로 장수 프로그램을 맡아왔다. 12년간 방송된 ‘무한도전’뿐 아니라 ‘해피 투게더’와 ‘런닝맨’ 역시 10년 안팎을 이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그램 하나가 끝났을 때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무한도전’ 이후 그가 선택했던 몇몇 프로그램이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막을 내렸기 때문에 이런 우려는 더 커졌다”고 말했다.
MBC ‘놀면 뭐하니’를 통해 릴레이 카메라라는 콘셉트로 유튜브에 도전한 유재석은 최근 유산슬로 트로트 도전기를 선보이며 화제를 양산하고 있다. 사진=‘놀면 뭐하니’ 공식 인스타그램
하지만 요즘 유재석은 또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괄목한 만한 것은 기존 그의 진행 패턴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로트 가수 도전이 대표적이다.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연출한 김태호 PD와 다시 손잡고 지난 7월 MBC ‘놀면 뭐하니’를 선보였다. 주로 TV를 기반으로 활동하던 그가 릴레이 카메라라는 콘셉트로 유튜브에 도전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시청률 면에서 보면 두 사람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유산슬로서 그의 트로트 도전기가 시작되며 상황은 사뭇 달라졌다.
기존 유재석은 무리를 이끄는 대장이었다. ‘무한도전’에서는 그를 중심으로 멤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기능했고, 이는 ‘런닝맨’도 마찬가지다. 스튜디오 예능에서도 그는 항상 가운데에 앉아 프로그램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진두지휘하며 중심을 잡았다.
하지만 ‘놀면 뭐하니’에서 고정 출연자는 사실상 유재석 혼자다. 그가 매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며 이야기를 펼쳐간다. 이를 통해 일명 ‘유재석 사단’이라 불리는 주변 게스트들과 함께하며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지적에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사이 ‘박토벤’이라 불리는 작곡가를 비롯해 신선한 얼굴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신인’으로 철저히 자신을 낮추면서 주위 사람들을 띄우는 전형적인 유재석식 진행 방식이다. 하지만 등장인물의 면면이 참신하니 대중의 반응도 한결 좋아졌다.
여기에 유재석의 진면목이 드러난 또 다른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그가 후배 방송인 조세호와 함께 전국 각지를 돌며 만나는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퀴즈를 푸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사실상 ‘유재석이기에 가능한 프로그램’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마주치는 누구든 알아볼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거부감을 없앨 수 있다. 즉석 만남을 통해 이야기가 시작되는 만큼 대본도 없다. 유재석과 마주앉는 이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을 무장 해제시켜 속내를 꺼내게 만들고, 그에 맞는 소통을 통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유재석만이 해낼 수 있는 진행이라 해도 무방하다.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유재석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자세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다. 스스로 신인 트로트 가수가 되고, 화려한 게스트가 아니라 길거리의 시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프로그램을 일궈낸다”며 “‘무한도전’이 끝난 뒤 모두가 걱정과 고민을 할 때 그는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냈다”고 평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