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열풍 꺼져가는데 정부가 안 도와줘”…“군이 연예인 원한다” 색다른 분석도
그렇지만 연예인이 포함되지 못한 예술·체육 분야 대체복무요원의 정원은 줄어들지 않았고 논란이 됐던 ‘단체 종목 경기출전자 편입 인정 조항’이 삭제돼 단체 종목 스포츠 선수들의 혜택은 되레 늘었다. 연예계에서는 “또 연예인만 안 된다는 결론” “연예인은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어도 국위선양이 아니라는 얘기” 등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2019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uv)를 선보이고 있는 방탄소년단(BTS). 사진=연합뉴스
“만약 BTS 같은 인기 아이돌 그룹이 한두 팀만 더 있었어도 상황이 달랐을 것이다. 논의 과정에서 계속 BTS만 언급되다보니 오히려 BTS 멤버들과 소속사만 난처해졌다. 정작 그들은 병역특례를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마치 군에 가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비칠 수 있어 BTS와 소속사는 소극적인 행보만 보였다. 이건 BTS가 아닌 한류 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BTS 같은 한류 스타들은 국위선양을 해 국가 품격을 제고하고 국민 사기도 진작하고 있다. 나도 축구를 좋아하고 태극전사들을 응원하지만 한류스타라고 그들만 못한 건 아니다. 군에 가고 안 가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한류 스타들이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할 부분을 외면당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연예인(대중문화 예술인)이 이번에도 체육·예술 분야 대체복무 대상자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한 한 가요관계자의 탄식 섞인 반응이다. 연예관계자들의 공통된 반응이 바로 이 대목이다. 연예인이 ‘딴따라’로 불리던 시절부터 청소년 희망 직업 1위가 된 지금까지 변함없이 연예인이 제대로 된 사회적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이번 결정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현실적인 부분에선 모호한 ‘기준’이 많이 언급됐다. 체육 분야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국제 대회 성적이 기준이고 고전음악 등 문화예술계는 국제 콩쿠르 등에서의 수상경력이 기준이 된다. 반면 연예계는 그런 기준이 없다. BTS처럼 전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한류스타일지라도 인기라는 개념은 기준치를 두고 측정하기 힘든 영역이다. 빌보드 차트 순위 등이 대안으로 언급되기도 했지만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일요신문 인터뷰에서 “병역특례를 주는 기준은 공정성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성악과 판소리에 특례를 주는데 왜 대중가수는 해당이 안 되는가”라고 반문하며 “만약 대중가수가 빠지면 같은 부류인 음악 계통은 다 빠져야 맞다”고 주장했다(관련기사 [인터뷰] “병역특례 필요하지만 공정해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하 의원은 이번 결정을 두고 ‘예술계 이익집단의 입김’을 언급했다. 정부가 예술체육계의 뿌리 깊은 적폐세력에 휘둘리고 있다고 지적한 것.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연예계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결국 ‘힘’에 밀렸다는 얘기다. 한 중견 연예기획사 임원의 얘기다.
“한 세대 정도 지나고 나면 연예인들도 병역특례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문화예술계는 대학을 기반으로 탄탄한 힘을 키워왔으며 대부분 집안도 좋다. 그들의 힘이 워낙 탄탄하니 대체복무요원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상황에서도 예술·체육 분야 대체복무요원의 정원은 유지되고 있다. 요즘엔 좋은 집안 출신 연예인 지망생들도 많다. 한 세대 정도 지나서 잘나가는 집안 출신 연예인들이 많아지면 우리도 대체복무를 바라보게 될지 모른다. 요즘 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내년 총선에 연예인이 많이 출마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온다. 연예인이 국회의원이 돼서라도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국회의원의 힘으로 뭐 이상한 걸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BTS의 한류 열풍이 국위선양이라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11월 2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이남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이 병역 특례 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예인은 이번에도 체육·예술 분야 대체복무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사진=연합뉴스
연예관계자들은 ‘한류의 위기’라는 큰 틀에서 이번에 병역 대체복무제도에 연예인이 포함됐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요즘 한류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BTS는 이제 대한민국이 아닌 전세계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성장했다. 그렇지만 ‘포스트 BTS’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보면 한류는 오히려 위기에 접어들고 있다. 어렵게 만든 한류 열풍이 꺼져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힘을 실어 줬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아이돌 그룹 여러 팀을 관리했던 한 대형 연예기획사 관계자의 말이다.
“때가 돼 BTS가 군대를 가면 후배 아이돌이나 가수들이 그 공백을 채우면 된다. 그런데 요즘 가요계에는 BTS의 공백을 메울 연예인이 아직 없다. 워낙 BTS가 출중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지금 가요계 전반의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가 예전 같지 못한 데다 YG엔터테인먼트는 지금 풍전등화다. 적어도 이 세 회사에서는 꾸준히 세대교체를 일궈낼 신인을 발굴해줘야 하는데 그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 한류의 원동력이던 인큐베이팅 시스템도 많이 무너졌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잔인하지만 이번에 연예인이 체육·예술 분야 대체복무에 포함됐을지라도 BTS 이후에는 더 이상 그 혜택을 받는 한류스타를 배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연예계가 어렵게 한류 열풍을 이어가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정부가 너무 안 도와주는 것 같아 아쉽다.”
또 다른 힘이 작용했다는 의견도 있다. 바로 군이 연예인을 원한다는 주장이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연예인 출신 군인의 군 복무 실태’ 자료를 보면 2016~2018년 사이 입대한 연예인 16명 가운데 13명이 일반 병사의 평균 휴가일수보다 많은 휴가를 받았다. 심지어 100일 이상의 휴가를 받은 연예인도 4명이나 됐다. 평균적으로 보면 연예인 출신 병사의 휴가일수가 일반 병사에 비해 최대 2.08배나 많았다.
연예인이 이처럼 많은 휴가를 누리는 까닭은 그들이 군 내부 행사들에 차출되는 경우가 많아 ‘행사금’ 명목의 ‘휴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군 복무 중 휴가를 많이 받은 연예인이 비난의 대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만큼 군 행사를 많이 소화하며 더 적극적으로 복무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각종 행사에 연예인을 활용하고 싶은 군이 연예인의 대체복무를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조재진 프리랜서
뜬금없이 불거진 ‘스티브 유 책임론’ 다소 엉뚱해 보이긴 하지만 정부의 이번 대중문화 예술인 체육·예술 분야 대체복무 대상자 배제 결정 이후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에 대한 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스티브 유로 인해 연예인 병역비리가 사회적인 문제로 급부상했고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대중은 연예인의 군 문제를 색안경을 낀 시선으로 바라본다. 인기 연예인이 정당하게 ‘대체복무’를 말할지라도 세인의 시선은 ‘군 면제에 혈안이 돼 있다’로 받아들이곤 한다.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의 말이다. 2005년 스티브 유(한국명 유승준)가 중국 북경수도공항으로 입국하는 모습. 과연 그가 한국에도 입국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다른 부분은 모르지만 연예인 병역 논란만큼은 스티브 유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정당한 사유로 군 면제를 받은 연예인에게도 의혹 어린 시선이 집중되곤 하는 배경에는 스티브 유를 통해 대중이 갖게 된 편견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 중요한 시기에 스티브 유가 한국 비자를 발급해달라고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스티브 유의 한국 입국 길이 열렸다는 사실이 크게 화제가 되며 여론을 크게 요동쳤다. 그것도 하필이면 정부가 병역 대체복무제도 개선계획을 발표하기 직전에 말이다.” 이런 책임론은 스티브 유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BTS(방탄소년단)보다 먼저 한류스타로 큰 인기를 누렸던 연예인들이 물의에 휘말리며 국민 여론을 자극한 부분도 후배 한류스타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이돌 그룹 빅뱅이다. 이미 탈퇴한 승리는 ‘버닝썬 게이트’의 주역이고 대성은 자신의 건물을 둘러싼 유흥업소 논란에 휘말렸다. 최근 전역한 지드래곤은 군 복무 도중 잦은 휴가와 면회, 그리고 군 병원 1인실 입원 특혜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뿐만 아니다. 한류스타들이 대거 연루된 ‘정준영 단톡방’ 사건과 ‘집단 성폭행’ 사건도 있었다. 정준영을 비롯해 FT아일랜드 출신 최종훈, 하이라이트 출신 용준형, 씨엔블루 출신 종현 등이 여기 연루됐다. 조재진 프리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