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보잉에 의존적인 구조, 갑을 뒤바뀌어…“에어버스로 바꿀 바에 창업하는 게 더 빨라”
미국 항공기제작업체 보잉사의 ‘B737NG’(사진)에서 기체 결함이 발견됐지만 국내 항공사들은 보잉사를 향해 이렇다 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나치게 의존적인 구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사진=보잉 홈페이지 캡처
문제의 시작은 ‘B737맥스’ 기종이다. 소프트웨어 결함 등의 이유로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와 올해 3월 에티오피아에서 B737맥스 기종이 추락 사고를 일으켰다. 세계 59개 항공사에서 387대 이상 운항하던 기종이다. 얼마 안 가 B737NG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항공기 동체의 날개 연결 부위에 균열이 발견된 것이다.
세계 각국 항공사들은 보잉의 결함 공지에 따라 즉각 점검에 나섰다. 점검에 들어간 B737NG 기종(600, 700, 800, 900, 900ER) 1133대 가운데 53대(4.67%)에서 동체 균열이 드러났다. 국토교통부도 우리나라에 도입된 B737NG 기종 150대에 대한 점검을 실시했다. 지난 11월 10일 100대에 대해 우선 점검을 실시했고, 이 중 13대에서 균열이 발견돼 즉시 운항 중지 조치했다. 대한항공 5대, 진에어 3대, 제주항공 3대, 이스타항공 2대였다.
이후 나머지 50대 항공기에 대해 지난 11월 25일까지 점검을 완료했고, 추가 균열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에서 문제가 발견된 B737NG는 모두 53대, 이 가운데 24%에 달하는 13대를 국내 항공사가 운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균열이 발견된 13대 가운데 진에어 1대와 대한항공 1대는 수리를 완료해 운항을 재개했고, 나머지는 수리를 기다리는 중이다.
수리 때문에 운항이 멈추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항공사에 돌아간다. 대부분 항공사는 항공기를 구매하기보다 운용리스로 대신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B737NG는 연식에 따라 한 달 운용리스 비용이 최소 2억~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유지비와 인건비 등을 포함하면 3억 원을 훌쩍 넘어선다. 리스로 들여온 비행기가 기체 결함의 이유로 운항하지 못하자 국내 항공사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도 이스타항공의 사정이 유독 어렵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2월부터 B737맥스 기종 2대를 리스로 들여왔다. 하지만 해당 기종을 운항하던 유럽의 LCC(저비용항공사) 라이언에어와 에티오피아항공이 각각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에서 추락 사고를 일으키면서 이스타항공이 들여온 항공기도 3월부터 운항이 중단된 채 주기장에서 9개월 동안 대기 중이다. 이스타항공은 또 지난 7월 B737NG 2대를 도입했으나 이마저도 균열이 발견돼 운항을 못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이 중 1대의 정비가 마무리됐지만, 이미 입은 타격을 만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이 각각 45대와 26대 보유한 항공기도 모두 B737NG 계열이다. 또 대한항공 31대, 진에어 22대, 이스타항공 21대 등 국내 항공사가 대부분 상당수 B737NG를 갖고 있어 이번 사태가 지속될 경우 경영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앞의 맥스 기종 2대는 아예 수리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보잉이 이스타항공의 맥스 2대에 대한 수리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갑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영업에만 신경 쓸 뿐 후속 처리에 적절한 대응을 해주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보잉과 항공사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로 구매자인 항공사가 우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상은 오히려 항공사들이 판매자인 보잉의 처사를 기다리고 있다.
이에 대해 보잉 측은 “근본적인 시스템과 MCAS(조종특성향상시스템)를 수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는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승인이 필요한 문제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소요됐다”고 해명했다.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격납고 내에서 보잉 B737NG 항공기 동체 수리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관계가 된 까닭은 국내 항공사들이 보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국내 항공사들이 대부분 에어버스보다 보잉 항공기에 시스템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의 관계자는 “에어버스와 보잉은 서로 면허와 면장, 조종사, 정비사, 자격증이 다 다르다”며 “에어버스로 바꾸려면 그에 맞는 조종사와 정비사를 구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어서 보잉에서 에어버스로 바꾸느니 차라리 새로 창업을 하는 게 더 빠를 수 있다”고 말했다. 비행기를 들여와야 하는 항공사 입장에선 되도록 기존 제작사의 같은 기종을 선호할 수밖에 없으며, 해당 면허를 가진 운항승무원과 정비사를 채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보잉의 항공기를 리스하는 항공사들은 임대사를 거쳐 논의해야 한다는 한계도 있다. 항공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임대사가 있다 보니 제작사와 직접 대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B737맥스의 추락사고 직후 러시아와 미국, 중국 등의 항공사들은 관련 소송을 제기했지만 국내에선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LCC들이 유독 보잉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 항공사들의 노선과 그에 맞는 효율성을 찾기 때문”이라며 “‘저가’라는 LCC의 특징에 맞는 기체를 구매하고 박리다매로 티켓을 판매하는 데 따라 최대한 여러 번 운항해 효율을 올리는 전략이 필요한데, 유독 B737NG가 짧은 노선을 주로 운항하는 국내 LCC 성격에 잘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희영 항공대학교 교수는 “보잉이 불량제품을 내놓은 꼴이며 이 때문에 하루에 수천만 원의 영업 손실을 내고 있는 항공사들이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오히려 항공사들이 에어버스와 보잉의 치열한 경쟁 사이에서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잉코리아 측은 “오히려 우리에게 ‘갑’은 항공사들이다. 최대한 고객사들과 긴밀하게 이야기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고, 입장도 전달받고 있다”며 “현재 문제가 된 부품은 대량생산이 아닌 주문생산이다 보니 신속하게 준비해 빠르게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이를 제삼자, 또는 당사자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함이 발견된 B737NG를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 항공사들은 보잉의 기체 수리 순서가 다가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앞의 항공사 관계자는 “일단 수리가 된 뒤 보상을 기다려야 한다”며 “보상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