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사 경선 앞두고 이재명 주변 탐문 정황…검찰 수사 민정수석실 전반으로 확대 가능성
2018년 4월 17일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자 경선 TV토론회가 진행된 서울 SBS 목동스튜디오에서 후보자들이 손을 맞잡고 공명선거 실천을 다짐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해철 양기대 이재명 후보.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검찰 압수수색 직후 청와대는 격앙된 모습이었다. 한 청와대 행정관은 “검찰이 갈 데까지 갔다. 윤석열 총장을 필두로 한 정치 검찰이 자유한국당과 손을 잡기로 작정한 것 같다”면서 “우리 쪽에서도 모든 수단을 강구해 대응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가 5선 중진 추미애 의원 법무부 장관 지명을 당초 예상보다 빠른 12월 5일 발표한 것도 검찰 견제용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검찰은 단호한 기류다. 그 중심엔 윤석열 총장이 있다. 윤 총장은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김기현 하명수사 의혹)과 서울동부지검(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수사 관계자들을 연일 독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세간의 비판이 많다는 것을 (윤 총장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윤 총장이 직접 그런 것에 개의치 말라는 메시지를 여러 번 전했다. 총장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으니 수사팀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검찰 재직 시절 윤 총장과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 압수수색을 보면서 윤 총장이 수사를 직접 챙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형적인 윤 총장 수사 스타일이다. 윤 총장 최측근으로부터 들은 바에 따르면 수사가 정치적으로 폄하되고 있는 것, 그리고 청와대를 공격하고 있다는 얘기 등에 대해 상당히 억울해한다더라. 민정수석실과 관련된 비위 혐의를 제대로 파헤치는 게 오히려 정권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검찰의 칼날은 조국 전 장관이 민정수석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벌어진 여러 석연치 않은 일들의 배후를 밝혀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 전 장관을 비롯해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호철 전 민정수석,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김경수 경남지사,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등이 관여돼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하다. 하나같이 친문 중 친문, 즉 ‘진문(진짜 친문)’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자유한국당이 최근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진문 농단 게이트’로 규정지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은 검찰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 총장 역시 가장 심각한 사안으로 판단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 전언이다. 그만큼 수사 속도도 빠르다. 검찰은 12월 5일 김 전 시장 비리를 접수한 것으로 알려진 문 아무개 전 청와대 행정관을 소환조사했다. 6일엔 문 전 행정관에게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이들을 상대로 첩보 생산 과정 전반에 대해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가 김기현, 유재수 외에 그동안 제기됐던 민정수석실 의혹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진=최준필 기자
자유한국당도 이 문제에 화력을 총동원하는 모양새다. 김성원 대변인은 “경찰에 공무원까지 동원된 부정선거, 역대급 막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 한 중진 의원은 “만약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훼손한 중범죄다. 문재인 정부는 그날로 끝”이라고 했다. 여권 내에서조차 “수사 결과에 따라 정권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파다한 상황이다. 여야 모두 김기현 전 시장 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김 전 시장 이외에 또 다른 선거 출마자를 상대로 첩보를 수집했던 정황이 포착됐다. 한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민주당 경기지사 경선을 앞두고 있던 3월경 이재명 후보(현 경기지사)와 관련해 몇몇 민정수석실 직원이 첩보를 수집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당시 이 후보자를 둘러싸고 여러 소문이 나돌았는데, 그런 부분들도 확인했다고 한다. 이 후보자 측근 비리, 성남시장 재직 시 여러 비위 등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업무에 밝은 또 다른 사정당국 관계자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이 관계자는 “개별 사정기관에서 올라온 첩보 이외에 청와대 쪽에서도 자체적으로 ‘이재명 파일’을 모았다고 한다. 이 지사 주변을 탐문하고 다녔다. 정식 보고서로까지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이 특정 후보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다녔다는 것 자체가 권한을 넘는, 부적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검찰도 지금 이런 부분들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던 2018년 3월은 본격적인 경기지사 경선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다. 비문계 이재명 지사와 핵심 친문 전해철 의원 간 맞대결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 지사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맞붙은 후 친문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아왔다. 경기지사 경선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친문 진영은 이 지사를 상대로 연일 십자포화를 쏟아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이 지사 첩보 수집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기현 전 시장에 대한 청와대 하명 수사 논란이 정치적으로 폭발력이 큰 이유는 문 대통령과 ‘30년 지기’이자 친문 실세들과 가까운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공권력이 동원됐을 가능성 때문이다. 이 지사 건 역시 일단 그 출발선상은 비슷하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의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검찰은 김기현, 유재수 외에 그동안 제기됐던 민정수석실 의혹 전반을 들여다보는 중”이라면서 “민정수석실의 이재명 파일 의혹은 예전부터 공공연히 제기됐던 것이다. 검찰도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