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실 첩보 생산 초기부터 관여 정황…여권 “정상적 절차 따른 첩보 이첩” 반박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11월 2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이 경찰 수사를 받으면서 낙선했던 지난해 6·13 지방선거에 권력기관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지난해 6월 울산시장 지방선거에선 유독 많은 민주당 의원들, 특히 친문 인사들이 유세를 다녀갔다. 송철호 현 시장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변호사 출신인 송 시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30년 지기’다. 문 대통령이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인사로 알려져 있다. 2014년 울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송 시장을 두고 문 대통령은 “내 가장 큰 소원은 송철호의 당선”이라고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선거를 앞둔 2018년 2월 경찰이 김기현 당시 시장의 측근 비리 수사를 시작하자 지역 정가가 뒤숭숭했던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김 전 시장은 경찰 수사를 두고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도 야당 후보에 대한 표적 수사라며 2018년 3월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현 대전경찰청장)을 직권남용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고발했다. 혐의를 받던 김 전 시장 측근도 올해 3월 무혐의를 받은 뒤 황 전 청장을 고발했다.
최근 울산지검은 황 청장 고발 건을 서울중앙지검(공공수사2부)으로 이송했다. 검찰 측은 “사건 관계인 다수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어 신속한 수사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긴 힘들어 보인다. 검찰의 노림수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검찰 내부에선 황 청장보다는 조국 전 장관의 민정수석 시절에 대한 수사가 본류라는 기류가 강하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조국이 아니었다면, 굳이 서울중앙지검으로 가져올 사건은 아니라고 본다. 경찰이 청와대민정수석실로부터 첩보를 받아 수사를 시작했다는 것은 울산지검에서 진작 파악한 것이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서울중앙지검이 본격 수사를 하겠느냐. 조 전 장관, 그리고 조국이 이끌었던 민정수석실이 ‘타깃’이다. 그동안 검찰과 대척점에 서 있던 황운하가 걸려 있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다.”
김 전 시장 관련 첩보가 청와대에서 경찰청으로 전달된 것은 2017년 11월 무렵이다. 지방선거를 7개월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경찰청에서 울산경찰청으로 내려보낸 것은 2017년 12월 말이다. 그로부터 2개월 뒤 울산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경찰에 첩보를 이첩한 것으로 알려진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은 검찰 수사에서 “첩보 문건을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현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부터 받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 전 시장 수사가 시작된 후 9차례 청와대에 보고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근무 경력이 있는 한 전직 경찰은 “중요 사건을 청와대에 보고하긴 하는데 그 정도면 상당히 많은 횟수다. 그만큼 청와대가 관심을 두고 있던 사건으로 보인다”면서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장관이 모를 수는 없다. 또 경찰도 청와대 눈치를 살피면서 수사를 진행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 측은 11월 28일 브리핑을 통해 “중요 사건이나 언론 보도 사건은 (청와대와) 정보 공유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운하 대전경찰청장. 사진=임준선 기자
김 전 시장이 소속된 자유한국당은 이 사건을 ‘친문 농단 게이트’라고 규정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울산시장 선거가) 관권 부정선거였음이 밝혀졌다. 21세기에 벌어진 초대형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김 전 시장도 “헌정사상 유례없는 선거 감찰”이라면서 “배후에 조국 전 수석과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강력한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은 국정조사를 열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름이 거론되는 당사자들과 여권 인사들은 강하게 반박했다. 백원우 전 비서관은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안은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보고될 사안조차 아니다. 비서관실 간 업무분장에 의한 단순한 행정적 처리”라고 밝혔다. 그는 “황운하 현 대전경찰청장이 고발된 것은 벌써 1년 전 일이다. 검찰은 지난 1년간 단 한차례의 참고인, 피의자 조사도 하지 않고 있었다. 황운하 청장의 총선 출마, 그리고 조국 전 수석의 사건이 불거진 이후 돌연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하여 이제야 수사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황운하 청장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통상적인 첩보 이첩이었다. 출처가 어디인지는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런 수사를 하지 않는 게 정치적 판단이고 직무 유기”라고 했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김기현 첩보보고를 (경찰에) 이첩한 것은 전혀 문제없다. 청와대의 의무”라고 말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도 “청와대에 수많은 정보가 오고, 비리와 관련된 정보면 수사기관에 갈 텐데 이런 활동까지도 하명 수사라며 부당한 비리 의혹으로 가져가게 되면 청와대가 일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했다.
여권에선 정상적인 절차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사정당국과 법조계 시각은 다르다. 첩보 이첩 과정에 법적으로 하자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 목적이 불순했다면 직권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절차상 문제가 없으면 죄가 없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직권남용은 절차보다는 그 목적이 부당했는지 여부를 따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 역시 “첩보를 이첩했다는 사실을 수사하는 게 아니다. 왜 이첩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11월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울산시장 부정선거 등 친문게이트 진상조사위원회 1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 옆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 사진=박은숙 기자
백원우 전 비서관이 과연 어디서 김 전 시장 첩보를 얻었는지가 사건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첩보 이첩의 목적을 규명하기 위해선 우선 그 출처부터 파악해야한다는 얘기다. 검찰 역시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백 전 비서관이 시중의 풍문이나 외부 제보를 받아 박형철 비서관에게 전달했다면 그나마 문제가 덜하다. 원래 민정비서관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백 전 비서관이 누구로부터 첩보를 받았는지 따져보긴 해야 할 것”이라면서 “만약 정치권이나 다른 수사기관으로부터 받았다면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첩보 문건 생산에 청와대가 관여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직권남용을 넘어 한국당이 주장하는 선거중립 위반 논란으로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김 전 시장 수사 상황에 밝은 검찰 관계자는 “백 전 시장이 건넸다는 문건 원본을 분석한 결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협조 없인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면서 “민정수석실 직원들이 어느 정도 가담했는지, 또 그들은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등을 집중 수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검찰 및 민정수석실 전직 특감반원 등에 따르면 김 전 시장 첩보 생산은 경찰 출신으로 알려진 전직 특감반원을 비롯해 민정수석실 직원 두세 명이 관여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직 특감반원은 “김 전 시장을 둘러싸고 여러 소문들이 공공연히 나돌던 때였다”면서 “이 중 일부를 우리 쪽에서 울산으로 직접 내려가 자체 파악한 적이 있다. 박형철 비서관이 경찰로 넘겼다는 첩보 문건에 그 내용이 그대로 포함돼 있었다”고 말했다. 첩보 생산 초기부터 이들이 관여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또한 첩보가 넘어간 후에도 경찰 수사 상황을 알아본 뒤 상부에 보고했다고도 한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만나 “경찰이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것 외에 일부 청와대 특감반원들이 수사 내용 등을 별도로 확인하곤 했다. 사건이 검찰로 이송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앞서의 전직 특감반원도 “경찰 수사가 진행되던 중에도 민정수석실 직원이 김 전 시장 주변을 탐문하고 다녔다. 야당 정치인을 이런 식으로 하다간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내부에서 제기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에 따라 이번 사건이 문재인 정부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청와대가 선거 전에 유력한 야당 후보 비위 첩보를 수사기관에 하달했고,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과 친한 여당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번 사건을 ‘울산시장 부정선거’라고 칭한 뒤 “민정수석실이 사실상 선거대책 본부역할을 했다. 명백한 관권선거 부정선거이기 때문에 울산시장 선거는 무효를 선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