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려도 집행유예나 벌금 내면 그만…환자 ‘도촬’ 의사 오늘도 진료 중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관련 범죄는 최대 유통망인 웹하드에서만 사라졌을 뿐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일요신문은 웹하드 업체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재 가장 유명한 웹하드 사이트 5곳의 성인 코너를 살펴봤다. 여전히 제목만 보면 리벤지 포르노처럼 보이는 파일이 종종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 국내 에로비디오인 정식 제휴 콘텐츠였다. 2019년 초반에만 해도 웹하드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 리벤지 포르노나 몰카가 발견되곤 했지만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웹하드 카르텔과의 전쟁은 승리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가 무서운 까닭은 일반인 피해자가 양산되며 그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다는 점이었다. 몰래 찍혔건, 촬영 과정에서 동의했지만 나중에 유출됐건 피해 여성 입장에선 자신의 가장 민감한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게다가 한 번 유출된 영상을 온라인에서 깨끗하게 지워버릴 방법이 없다는 게 더욱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가장 대중적인 유통 경로인 웹하드에서 그런 불법 콘텐츠가 사라졌다는 것은 크게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난 9월에는 한 여성이 집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전남 순천의 한 종합병원 직원으로 몰카 범죄 피해자였다. 이 병원 직원 A 씨는 7월 한 마트에서 몰카를 촬영하다 체포됐다. 경찰이 디지털 포렌식으로 확인한 결과 A 씨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 탈의실에 몰카를 설치해 동료 여직원들을 몰래 찍은 사실도 드러났다. 병원 내 피해 여성은 모두 4명으로 이 가운데 한 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게다가 피해 여성은 2020년 1월 결혼 예정이었다.
문제는 이런 범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최대 유통망인 웹하드에서만 사라졌을 뿐이다. 여전히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관련 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누구나 손쉽게 몰래 촬영을 할 수 있다. 이런 사건사고는 2019년에도 끊이지 않았다.
불법 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석할 당시의 정준영. 사진=박정훈 기자
2019년 초반 한국 사회를 달군 ‘정준영 단톡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몰카를 찍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통해 공유했다. 웹하드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 유통하진 않았지만 단체대화방을 통해 지인들끼리 공유했다.
‘대구 스타 강사 사건’도 화제가 됐다. 대구 수성구 학원가의 유명 스타강사가 페라리 등 고급 수입차를 끌고 다니며 수십 명의 여성들을 유혹해 성관계 장면 등을 불법으로 촬영한 혐의로 징역 4년과 취업제한 5년을 선고 받았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스타강사의 컴퓨터에는 900기가바이트나 되는 관련 동영상이 저장돼 있었다. 무려 영화 400편 분량이다. 여기서 얼굴이 확인된 여성은 30명이 넘는다.
병원 탈의실, 대학 화장실, 영화관 화장실 등에서 몰카를 촬영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거듭 발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몰카를 찍은 이들이다. 소방관, 공무원, 대학교수, 의사, 심지어 뉴스 앵커 출신 언론인도 있었다.
문제는 피해 여성이 겪는 피해에 비해 가해자의 처벌 수위는 매우 낮다는 데 있다. 몰카 사건의 경우 10건 가운데 9건가량이 벌금형 내지는 집행유예다. 주민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여직원의 몰카를 촬영한 공무원이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병원에서 환자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의사 역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나마 몰카 혐의를 받은 공무원은 파면 또는 해임되지만 의사는 의사면허가 박탈되지 않아 계속 진료 행위를 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산부인과 의사는 진료실과 간호사 탈의실 등에 몰카를 설치해 불법 촬영한 혐의로 2012년 벌금형을 받았다. 이후 의사로 계속 근무하며 같은 몰카 범행을 저질러 2015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여전히 몰카는 어딘가에서 찍히고 있다. 상호 동의하에 촬영된 성관계 동영상이지만 ‘지우겠다’는 약속을 어긴 채 지워지지 않고 있는 동영상도 분명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그러다 연인 관계가 끝나 언제라도 리벤지 포르노로 돌변할 영상들이 누군가의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다. 웹하드 카르텔의 붕괴로 최대 유통 경로인 웹하드에서 이런 동영상들이 사라졌을 뿐이다. 다크웹(특정 브라우저에서만 접속 가능한 비밀 웹사이트) 등을 통해 여전히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는 유통되고 있지만 아직 웹하드만큼 대중적이지 않을 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웹하드같이 강력한 유통망이 다시 구축된다면 또 다시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의 위력이 되살아날 수 있다. 강력한 처벌 등을 통해 몰카와 리벤지 포르노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를 방지하는 게 절실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