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차례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올라…‘가격·수요 잡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장면② “규제는 영원하지 않잖아요.” 지난 12월 19일, 서울 강남에 집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 A 씨가 방송 뉴스를 보며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 뉴스를 보면서도, 자신과 같은 다주택자들이 세금 폭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을 들으면서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A 씨는 “내는 세금이 늘어나도 서울 집값은 그 이상으로 올라요. 이건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라고 무심한 듯 말했다.
#장면③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낡은 아파트에 사는 B 씨는 그곳의 ‘터줏대감’이다.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내년부터는 갓 태어난 손녀를 돌봐줄 계획이다. 그는 재개발 기대는 일찌감치 거뒀다고 했다. 그래도 이곳을 떠날 생각은 없다. B 씨는 “몇 번 나가려고 했었죠. 그런데 아이들 키우고 학교 보낼 생각하니 서울 어디에도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면서 “낡은 건 고치고 새로 들이면 된다”고 했다.
A 씨는 정부의 ‘규제 대공습’ 속에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가격이 떨어진다 해도 규제로 인한 것인 만큼 잠깐 지나가는 일 정도라고 여긴다. 그는 ‘강남 불패’라는 굳건한 믿음 아래 ‘부동산 투자는 멘탈로 한다’는 격언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다. B 씨는 강남 재건축 시장을 정밀 타격한 분양가 상한제에는 관심이 없다. 집이 낡아 쓰러지든, 가격이 얼마나 오르든 강남 아파트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앞서의 세 장면은 2019년 끝자락을 앞둔 한국 부동산 시장의 모습을 대변한다. 매번 강도를 높인 부동산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 정부의 바람과 시장의 상황은 늘 어긋나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한 평가도 극과 극이다. 한쪽은 그동안의 정책이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지만 시장은 보란 듯이 뜨겁다.
서울 강남일대 아파트 전경. 사진=고성준 기자
#”어쨌든 집값은 오른다“ 꺾이지 않은 기대감
이번 정부는 2017년 5월 출범해 임기 절반인 2년 6개월을 보내는 동안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사활을 걸었다. 취임 다음달부터 쏟아낸 부동산 관련 정책은 강도 높은 규제 4차례와 개별 후속 조치 등을 더해 모두 18차례에 달한다. 서울 부동산 집값 상승의 근원인 강남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고, 대출을 어렵게 했으며 세금을 늘렸다. 정부는 앞선 정책들의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올해 시장이 안정화 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달랐다. 부동산114가 2017년 1월부터 올해 12월 10일까지 서울 아파트 실거래건수 24만 1621건을 반기별로 전수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올해 하반기 서울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격은 8억 2376만 원으로 2017년 상반기 5억 8524만 원과 비교해 40.8%(평균 2억 3852만 원) 올랐다. 또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정부가 12·16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날에도 서울 아파트값은 0.2% 올랐다. 강남구가 0.36% 상승했는데, 지난해 9월(0.51%)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이번 정책 영향이 시장에 반영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적어도 시장이 앞선 정부 부동산 대책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정책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9·13 대책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부동산 가격 하락세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7월 국토부 집계를 보면 올해 상반기(1~6월) 전국 주택매매거래량이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6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가격 변화도 눈에 띄었다. 국토부 실거래가 기준으로,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매매가는 지난해 9월 20억 원에서 올해 초 17억 원으로 3억 원가량 떨어졌다. 잠실 주공 5단지도 같은 기간 19억 원에서 17억 원으로 내렸다. 정부 안팎에서 ’부동산 시장이 안정화 되고 있다‘, ’정책 효과가 가시화 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하지만 기간을 더 넓혀보면, 집값이 ‘떨어졌다’고 표현하기는 어렵다. 은마아파트는 2016년 1월엔 10억 원, 2017년 1월에는 12억 원에 거래됐다. 잠실 주공5단지 역시 2016년 1월 11억 8000만 원, 2017년 1월 13억 원이었다. 가격이 떨어졌다는 올해 초와 비교해도 각각 7억 원, 4억 원이 높다. 가격 하락이라기보다는 가파른 급등세가 잠시 조정된 셈이다.
그래픽=장영석 기자
부동산 정책이 시장을 붙잡아 둔 시간마저도 채 1년이 되지 않았다. 지난 7월부터 덮어뒀던 시장 열기가 규제를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 12월 현재까지 25주 동안 서울 집값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올랐다. 그동안 수요를 억제했던 규제에 따른 불확실성이 해소된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규제 직후 변화를 지켜보던 시장이 다시 움직였다는 것이다.
정부 의도와 다른 지점에서 시장이 반응하기도 했다. 투기수요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발표한 2017년 8·2 대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다주택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으로 둔갑했다. 정부는 투기과열지구 지정, 양도소득세 강화에 다주택자 금융 규제라는 카드까지 꺼내들었지만 임대사업자에게 주는 세금 감면 혜택이 문제가 됐다. 부동산 투기와 시장 과열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전환하면 각종 세금을 깎아주고 대출 규제도 완화해줬다. 시장은 이를 ‘다주택자가 투자할 돈을 빌리기 더 쉬워졌다’는 시그널로 읽었다.
시장에 나오는 매물이 줄어들자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규제로 인해 시장에 매물이 나오지 않자 ‘공포 프리미엄’이 붙었다. 재건축 규제와 양도세 중과, 임대 사업자 등록 등으로 시장에 나오는 집은 17만 채가 줄었다. 분당 전체 주택수인 10만 채를 넘는 수치다.
반면 정부가 12월 현재까지 내놓은 공급 대책은 총 3개다. 주거복지로드맵, 도시재생뉴딜사업, 3기 신도시 발표 외에는 모두 투기 수요 억제 정책이었다.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불안해진 수요자들이 추격 매수에 가세했다. 익명을 원한 한 부동산 연구원은 “집 주인들이 가격을 올려도 매물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퍼져있어 집을 사려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대기자들까지 추가로 가격을 더 올리면서 시장에 뛰어들었다. 집값이 오늘보다 내일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은 꺾이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누르면 누를수록 부동산은 귀해진다
이번 12·16 대책은 기존 종합 대책과는 차원이 다른 초고강도 대책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벌써부터 지금까지의 규제-집값 상승 사이클을 볼 때, 초고강도 규제라도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기적으로 공급과 교육 인프라 등 직간접적인 집값 상승 요인들이 동시에 해소되지 않는 이상 의미 있는 정책 효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관계자는 “그동안 버티던 일부 다주택자들이 집을 토해낼 가능성이 있고, 때문에 실거주용이 아닌 투자용도의 집들이 일시적으로 시장에 쏟아질 수 있다. 다만 이번 대책은 지난 9·13 대책이나 8·2 대책과 달리 기존 규제를 강화하는 측면이 강해 가격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은성수 금융위원장, 홍 부총리,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현준 국세청장. 사진=연합뉴스
집값 상승의 대표적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저금리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것도 부동산 정책과 엇박자를 낸다. 앞서 정부는 12·16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면서 “풍부한 시중 유동성이 주택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과열이 재현됐다”며 “저금리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7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저금리가 차입비용을 낮춰 주택 수요를 높이는 하나의 요인이 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올해 두 번의 금리 인하 시기에 금융안정보다 경기와 물가에 더 중점을 둬야 할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한은 내부에서는 추가로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올해 국내 통화정책은 지난 11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공개하면서 마무리됐는데,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낸 금통위원은 두 명이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금통위원은 총 7명으로, 소수의견이 2명이면 사실상 금리 인하는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시장에선 내년 금리가 추가로 내릴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부가 지금의 부동산 정책을 완화하거나 바꾸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집값 안정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규제 강도는 더 세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앞으로 새 규제를 지속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라면 ‘가격 잡기’나 ‘수요 억제’보다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규제가 강화되고 세금이 높아지면 시장은 집을 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귀하게 여긴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부동산 연구원은 “한국 부동산 시장은 가격이 올라야 더 잘 팔리는 특이한 구조다. 역대 정부에서 이 구조를 깬 전례는 없다”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오래 유지될 수 있는 정책이 나오고,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수 있는 대책이 나온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지만 현재로선 꿈같은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