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공정위 조치·민사소송 예고 따른 ‘몸 사리기’ 해석…LG전자 “자발적 리콜 제공할 것”
LG전자는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의류건조기 집단 분쟁 조정 신청자들에게 위자료 10만 원씩을 지급하라는 결정을 거절했다. LG전자에는 공정거래위원회라는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모습. 사진=연합뉴스
소비자원은 지난 11월 20일 “LG전자가 의류건조기 집단분쟁 신청인들에게 위자료를 10만 원씩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소비자원이 위자료를 10만 원으로 결정한 것에 비교적 약하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실제 기능과 광고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만 받아들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LG전자가 무상 수리를 이행하고 있다는 점과 인체에 해롭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은 점도 액수 결정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제품 기능상에 결함이나 하자는 없지만 수리로 인해 겪었을 불편함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지난 12월 18일 “품질보증책임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신청인들에게 위자료 10만 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은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거부한 후 “고객이 요청하면 (그동안) 제공해 왔던 콘덴서 자동세척 기능 강화, 개선 필터 등 성능과 기능을 개선하는 무상서비스를 확대해 찾아가는 ‘자발적 리콜’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원의 권고사항은 법적 강제성이 없는 ‘조정 결정’이기 때문에 LG전자가 이 조정안을 반드시 따를 의무는 없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송사까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비자원이 중재의 역할을 해온 만큼 LG전자의 위자료 지급 거절에 아쉬움이 제기되기도 한다.
일각에선 LG전자가 궁극적으로 ‘위자료 1450억 원’을 큰 부담으로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았다. 1450억 원은 LG전자가 올해 9월까지 판매한 건조기 145만 대의 구매자들에게 일괄적으로 10만 원씩 지불할 경우의 총 액수다. 이 금액은 LG전자 H&A사업본부 1년 영업이익의 10%에 달하는 액수다. 현재 소비자원이 말하는 보상의 대상은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한 247명뿐이다.
업계에선 LG전자가 위자료 10만 원 지급 조정안을 수락하지 않은 것에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보고 있다. 가전제품 업계 관계자는 “10만 원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들은 지속적으로 다른 요구를 할 것”이라며 “때문에 LG전자는 10만 원 지급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현재 소송은 박상수 법률사무소 선율 변호사와 성승환 법무법인 매헌 변호사가 각각 준비 중이다. 성승환 변호사 “위자료 10만 원 지급에 대해 피해자들 95%는 반대하고 있고, 찬성한다 할지라도 재산적 손해를 이유로 민사소송을 원하는 피해자들이 93%”라며 “정신적 손해의 ‘위자료’가 아니라 미흡한 서비스에 관한 재산적 손해까지 청구하는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상수 변호사 역시 “미국의 경우 한 제품의 소비자 1명이 대표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으면 이 제품을 구매한 모두가 함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 제도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며 “소비자원이 이번에 비슷한 내용의 결정을 내려줬는데 우리는 이를 기회삼아 집단소송 제도의 개선을 위한 공동소송에 나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의 의류 건조기 ‘듀얼 인버터 히트펌프’. 사진=LG전자 유튜브 영상 캡처
피해자들이 민사소송을 예고한 만큼 이번 위자료 지급 결정의 건이 향후 LG전자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실제 소송이 진행되면 LG전자가 법정에서 패소할 명분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자료 지급을 거부했을 것으로도 해석된다.
LG전자가 소비자원의 결정에 따르지 않은 또 다른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거론된다. 현재 공정위는 LG전자 의류건조기 콘덴서 자동세척 ‘광고’의 표시광고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수 변호사는 “LG전자는 소비자원의 결정보다 공정위가 더 무서울 것”이라며 “최근 기업에 부과되는 공정위의 과징금 규모가 상당히 커졌고, 이로 인해 공정위의 각종 규제가 시작되는 것이 더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원의 위자료 지급 조정결정은 강제성이 없지만, 공정위가 부과하는 과징금은 법적 효력이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앞의 업계 관계자 역시 “공정위는 한참 전부터 LG전자 건조기에 대한 인지조사를 시작했다”며 “소비자원의 위자료 지급 조정결정에는 불응했지만, 공정위에서 어떠한 조치가 내려질까봐 LG전자도 조심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소비자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 역시 “기업들은 당연히 소비자원보다 공정위 같은 힘 있는 기관의 눈치를 본다”며 “소비자원 결정을 따른다면 향후 공정위에 가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원 조정 결정에 따른 위자료 지급이 향후 공정위 조사에서 과실을 인정한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인철 참조은경제연구소 소장은 “미국의 경우는 기업들이 소비자원의 압력과 시민단체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인데 우리나라 기업은 공정위의 눈치를 더 보는 경향이 있다”며 “소비자원의 지급 조정 결정 사항에 대해 눈 감는 한편, 공정위에 비위를 맞춰가는 것이라면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