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DLF 제재로 금융그룹 수장들 위기 속 초대형 악재 ‘라임 사태’까지
지난 연말, 금감원은 DLF 사태와 관련된 일부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 가능성을 사전 통보했다(관련기사 DLF발 ‘금감원 칼날’ 우리·하나은행 경영권까지 흔드나). 금감원은 1월 안에 이들에 대한 징계 수위 결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문책경고를 받게 될 경우 남은 임기는 마칠 수 있지만 향후 3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올해 3월 주주총회 전 문책경고가 확정되면 연임이 불가능해지는 CEO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가처분신청 등을 통해 제재의 법적효력을 중지시키고 우격다짐으로 자리를 지킬 수는 있지만, 금융당국의 결정에 사실상 ‘항명’을 하는 셈인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나마 DLF사태는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라임 사태’는 올 한 해 금융권을 뒤흔들 초대형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과 관련한 의혹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이다.
원종준 라임자산운용 대표이사가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연기 관련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라임 사태와 관련해 펀드 운용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회사 측의 방만한 운용과 의도적인 수익률 부풀리기, 투자자 기만 등 의혹이 짙어지면서 ‘희대의 금융사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또 펀드 판매 과정의 불완전판매 주장이 제기되는 한편, 사태를 막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부각되면서 금융권 전반의 신뢰도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관련기사 ‘라임’ 먹고 체한 신한금투 ‘공범’ 의혹 쏟아지는 내막).
라임자산운용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속한 성장세를 이어가며 한국형 헤지펀드 1위 운용사로 발돋움했다. 2015년 12월 자기자본금 338억 원으로 영업을 시작한 라임은 국내 다른 펀드들보다 높은 수익률을 내세워 수탁고를 늘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 회사의 전체 사모펀드 설정액은 지난해 7월 말 5조 9000억 원까지 불어났다.
그런 라임이 지난해 10월 9일 처음으로 6200억 원 규모의 펀드 자금을 환매 중단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불과 5일 뒤인 14일에는 2436억 원 규모의 무역금융펀드 환매도 추가로 중단했으며 총 환매 중단 금액이 1조 3363억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혀 시장을 발칵 뒤집어 놨다. 이마저도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금융감독원이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는 라임의 환매중단 규모 추정치가 1조 5587억 원으로 더 커졌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의 동요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은 당시만 해도 라임 사태가 코스닥시장 침체로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의 가치가 급락해 발생한 유동성 문제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CB나 BW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채권으로, 주가가 오르면 주식으로 전환해 초과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제값을 받기 위해 만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즉, 주가하락으로 CB와 BW 가치가 떨어져도 만기가 되면 원금은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도 지난해 10월 국회의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유동성 리스크와 관련된 부분에서 라임자산운용이 실수했다고 파악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 역시 “일단 기다려보자”며 관망했다.
그러나 한 달 뒤인 11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코스닥 상장사 리드에서 벌어진 800억 원대 횡령 사건에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던 라임 부사장 이 아무개 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불응한 채 잠적하면서 의혹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라임이 기업사냥꾼들과 결탁해 코스닥기업의 무자본 인수·합병(M&A)에 자금을 대 부당이득을 챙기고 임직원용 펀드를 따로 굴렸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문제는 라임의 펀드 운용 방식이 이렇게 불투명한데도 어떻게 은행과 증권사의 판매망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금융당국의 움직임이다. 금감원은 라임의 펀드 수익률 돌려막기·CB 편법거래 등 의혹이 제기되자 지난해 8∼10월 첫 검사를 벌이고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라임자산운용 사건은 우리나라 금융 역사의 희대의 사건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번 일이 실수가 아닌 사기극일 가능성을 시사한 셈이다.
실제로 이번 사태는 펀드를 판매한 은행, 증권사와 금융당국 등으로 일파만파 확산하고 있다. 특히 라임 펀드를 개인들에게 집중적으로 팔았다는 점이 문제를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라임의 전체 펀드 판매잔액은 지난해 7월 말 기준 우리은행이 1조 648억 원을 차지하는 등 은행권에 34.5%가 집중됐다. 이 때문에 우리은행을 주축으로 라임 펀드를 판매한 16개 은행·증권사는 공동대응단을 꾸려 라임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눈길은 싸늘하다.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이런 사태가 나기까지 운용사, 판매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렇듯 라임사태는 올해 최대의 이슈가 될 전망이지만 다른 이슈들까지 뒤섞여 있어 금융권의 대응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대형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은행들은 채용비리 관련 선고가 코 앞이고, 보험과 카드 쪽은 수익성 하락 때문에 이미 패닉 상태”라면서 “자산운용과 수익창출 등은 뒷전이고 리스크 관리하다 올 한 해가 다 가게 생겼다”고 푸념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