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겨냥 임종석 투입설 등 서울 요충지 5곳 지정…승률 낮은 데다 내홍으로 번질 수도
서울 광진을에 도전장을 내민 오세훈 전 시장.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오 전 시장의 대항마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부상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자객·표적 공천의 주 타깃은 각 진영이 반드시 탈환해야 하는 지역구다. 반대편의 차기 대권주자가 깃발을 꽂은 곳도 예외는 아니다. 경쟁자의 목숨을 끊어 자기 진영의 외연 확장·내부 결속을 하는 게 핵심이다. 킬러 본능에 불을 지핀 쪽은 여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4·15 총선의 최대 격전지인 서울 5곳을 자객·표적 공천 지역구로 사실상 정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지역구인 서울 광진을과 동작을(나경원 자유한국당), 서초갑(이혜훈 새로운보수당), 강서을(김성태 한국당), 관악을(오신환 새보수당) 등이다. 이 중 동작을과 서초갑, 강서을 등은 진보진영 ‘험지’로 꼽힌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도전장을 낸 광진을은 보수 거물급을 격추하기 위한 요충지다. ‘서울의 호남’ 관악을은 한동안 안방을 내준 곳이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는 청와대 이력서를 들고 출마하는 복수의 후보들을 전략공천 5곳에 투입, 내부 여론조사를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통합 논의로 공천 작업이 지연 중인 한국당도 민주당 거물급이 포진된 구로을(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서대문갑(우상호 민주당)·대구 수성갑(김부겸 민주당) 등에 자객 공천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설 연휴 직전 민주당이 깜짝 선보인 카드는 신 친문(친문재인)인 ‘임종석 카드’다. 지난해 11월 정계 은퇴를 선언했던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1월 21일 민주당 정강·정책 방송연설 첫 연설자로 나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래세대에 평화를 넘겨주자”며 당 지지를 호소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지 석 달 만에 정치 재개에 시동을 건 셈이다. 임 전 실장을 다시 등판시킨 것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였다. 여의도의 대표적인 선거 전략가인 이 대표는 그간 전방위로 임 전 실장을 설득했다. 이 대표는 당내 메신저를 통해 임 전 실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 대표뿐만 아니라 당 핵심 관계자들도 임 전 실장과 꾸준히 교류하며 ‘총선 역할론’을 주문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최대 출마·최소 지원유세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당에서도 임 전 실장을 광진을에 투입, ‘임종석 vs 오세훈’ 여론조사를 돌린 것으로 전해졌다. 오 전 시장의 표적 공천으로 ‘임종석 카드’가 부상했다는 얘기다. 광진을은 종로 등과 함께 ‘서울의 격전지’로 꼽힌다.
여당이 정계 은퇴를 한 임 전 실장까지 끌어들이며 광진을 사수에 나선 것은 보수진영 차기 대권후보 싹 자르기 일환이다. 광진을은 추 장관이 5선을 한 민주당의 텃밭이지만 오 전 시장의 여론조사 경쟁력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만에 하나 여당이 광진을 사수에 실패한다면 차기 대선판의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광진을과 동작을 등에 차출설이 거론되는 고민정 전 대변인. 사진=박은숙 기자
다만 임 전 실장이 총선에 출마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당직자는 “확답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임 전 실장뿐 아니라 이수진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의 광진을 투입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각에선 ‘원조 친노(친노무현)계’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차출설도 나온다. 광진을 공천 퍼즐은 임 전 실장의 다음 행보에 따라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동작을도 여당이 오랫동안 탈환 전략을 짠 총선 요충지다. 현 터줏대감은 나다르크(나경원+잔다르크)다. 정의당 한 당직자는 “동작을은 강남을 열망하는 지역주민과 호남, 대학생들이 혼재한 지역”이라며 “선거 전략을 짜기 쉽지 않은 지역구”라고 회고했다.
나 의원이 동작을에 터를 잡은 2014년 7·30 재·보선 당시 맞상대는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이었다. 나 의원 승리 요인은 강남 편입에 대한 동작구민의 뜨거운 열망이 한몫했다. 나 의원은 당시 ‘강남 4구 일류 동작’이란 슬로건으로 주부 표심을 파고들었다. 동작의 명품도시화를 선거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셈이다. 나 원내대표가 동작과 서초를 잇는 서리풀터널(정보사령부 부지 터널) 개통을 적극 추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동작을을 이루는 흑석동과 상도 1동, 사당 1∼5동의 핵심 이슈는 ‘재건축·재개발’이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2018년 7월 25억 7000만 원에 상가주택을 매입한 것도 흑석동(재개발 9구역)이었다. 김 전 대변인은 지난해 이 상가주택을 34억 5000만 원에 매각했다. 6년 전 재보선 당시 49.9%를 득표한 나 의원은 20대 총선에서도 43.4%로 2연승을 거두면서 새로운 동작을 여왕으로 등극했다. 앞서 18대와 19대 총선에서는 거물급인 정몽준 전 의원이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간판으로 출마, 54.4%와 50.8%로 연승했다.
민주당은 18대 총선 당시 전북의 맹주였던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41.5%)를 ‘정몽준의 표적 공천자’로 내세웠지만, 참패했다. 18대 총선 이후 총 4번(재보선 포함)의 선거에서 민주당은 한국당 계열 후보에게 전패했다. 21대 총선을 앞둔 민주당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 역할을 했던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을 나다르크 대항마로 내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 전 대변인의 경우 광진을 차출설도 오르내린다. 민주당은 나 의원 서울대 동기 이용우 전 카카오뱅크 대표 등에 대해서도 여론조사 경쟁력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이 기댈 곳은 ‘호남’과 ‘2030 표심’이다. 동작을은 원래 호남선 종착지인 영등포구였다. 1973년 관악구로 분구된 후 1980년 비로소 동작구로 재탄생했다. 17대 총선 때까지 민주당이 우위를 점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13대(40.8%)와 14대(40.7%) 총선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만든 새천년민주당 창당 인사인 박실 전 의원이 연승을 거뒀다. 17대 총선에서는 이계안 전 열린우리당 의원(50.0%)이 승리했다. 3개(중앙대·숭실대·총신대) 대학이 밀집한 이 지역의 2030세대 비율은 서울 평균을 웃돈다.
딜레마도 있다. 이른바 표적·자객 공천의 역설이다. 18대 총선 당시 정동영 의원의 표적 공천은 사실상 ‘셀프 공천’ 형태였다. 2014년 7·30 재보선 땐 기동민 민주당 의원을 꽂으려는 당과 이에 반발하는 허동준 전 동작을지역위원장 간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진보진영 전체가 흔들렸다. 민주당의 현 지역위원장은 강희용 전 민주당 정무조정실장이다. 강 전 실장은 추미애 대표 시절 비서실 부실장을 지냈다. 허영일 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정책보좌관도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당 안팎에선 ‘동작을 전략 공천의 저주’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관악을 지역도 여권이 사활을 건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이해찬 대표가 13∼17대까지 내리 5선을 한 곳이다. 최근 2번(2015년 4·29 재보선과 20대 총선)의 선거에선 오신환 새보수당 의원이 43.9%와 37.1%의 득표율로 연거푸 이겼다. 여당에선 문 대통령 측근인 정태호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이 뛰고 있다.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도 도전장을 냈다. 서초갑과 강서을 역시 청와대 이력서를 손에 쥔 주형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과 진성준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출마 채비를 마쳤다.
여권의 전략이 들어맞을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직전 총선만 봐도 전략 공천의 승률은 높지 않았다.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이한구 당시 공천관리위원장의 킬러 공천을 둘러싼 갈등으로 극심한 내홍에 휩싸였다. 제1당까지 민주당에 내줬다. 민주당도 천정배 대안신당 의원 지역구인 광주 서구을에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를 내세웠지만, 벽을 넘지 못했다. 국민의당도 ‘수구 진박(진짜 박근혜)·친노(친노무현) 패권·무능 운동권’에 대한 표적 공천을 단행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여야가 설 이후 전략 공천을 둘러싼 갈등을 재연한다면, ‘국회 심판론’이 부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