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법리 검토 끝 ‘문책경고’ 중징계 결정…불복·수긍 뭐든 두 은행 차기 회장 구도 변화 불가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이 대규모 원금손실을 빚은 DLF(국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 제재를 받았다. ‘DLF/DLS 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0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하는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30일 오후 유광열 수석부원장 주재로 제3차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열고 지난해 발생한 DLF 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에게 각각 ‘문책경고’ 결정을 내렸다. 금융회사 임직원 제재는 ‘주의-주의적경고-문책경고-직무정지-해임권고’ 순이다. 문책경고부터 중징계다. 징계가 확정되면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은 남은 임기는 마칠 수 있지만 3~5년간 금융권 취업을 할 수 없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26일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에 대해 각각 문책경고를 사전통보했다. 사법 절차에 빗대면 사전통보는 검찰의 구형이고 제재심 판단은 법원 선고와 비슷하다. 제재심은 금융감독원장의 자문기구로 심의 결과 자체가 법적 효력은 없지만 문책경고까지는 금감원장 전결로 징계가 확정된다. 최근 윤석헌 금감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제재심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선 이번 제재심 결정대로 징계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은 경영진 제재와 함께 우리·하나은행에 업무 일부 정지 6개월(기관 제재)과 200억 원의 과태료 부과를 의결했다. 당초 업무정지는 3개월로 예상됐는데, 징계 수위가 더 올라갔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은 지난 1월 30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받았다. 사진=최준필 기자
#치열한 공방 벌어진 제재심 무슨 얘기 오갔나
금감원 제재심은 지난 1월 16일과 22일, 30일 총 세 차례 열렸다. 금감원 검사국과 우리-하나은행 측이 동석해 동등하게 진술 기회를 갖고 제재심의 위원들이 질의하고 답변하는 ‘대심제’ 방식으로 진행됐다. 제재심은 금감원 내부인사 4명, 외부 인사 5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됐는데, 외부 인사는 대부분 법학 교수나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로 채워졌다.
최고경영자들의 거취가 달린 만큼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금감원은 징계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고,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회장이 세 차례의 제재심에 모두 출석해 직접 소명하는 등 방어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제재심의 최대 쟁점은 손태승 회장과 함영주 부회장에 대한 제재 여부였다. 구체적으로 “내부통제 부실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제재할 수 있느냐”였다. 금감원은 은행 본점 차원의 과도한 영업 압박과 내부통제 부실이 DLF 불완전판매로 이어졌다는 점을 제재 근거로 내세웠다.
실제 일요신문이 DLF 분쟁조정위원회 조정결정서 6건을 종합해보니, 우리-하나은행은 상품심의 생략, 과도한 판매실적 압박, 불완전판매 등 총체적인 내부통제 부실을 드러냈다. 조직적으로 DLF 판매를 유도하고(2019년 1월 우리은행 WM그룹), 상품 선정 과정에서 지난해 3월 6일과 11일 원금손실과 불완전판매 개연성이 높다는 취지의 내부 경고가 나왔지만 판매를 강행했다.
우리‧하나은행 계열 금융경영연구소들이 각각 금리 하락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냈지만, 은행들은 PB(프라이빗뱅커) 대상 교육 자료에 반대로 ‘금리가 반등할 것’이라는 내용을 쓰거나 시장 상황에 따른 리스크 등을 영업점에 거의 제공하지 않았다. 특히 하나은행의 경우, 오히려 판매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직원 성과 지표에 펀드 신탁 수수료 수익 등의 배점을 높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본점 차원의 내부통제 부실이 발생했고, 역대 불완전판매 분쟁 사상 최고 배상비율(20~80%)까지 인정된 만큼 최고경영자들도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금감원 입장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제재심에서 법리적으로도 현행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시행령을 근거로 삼아 최고 경영자 징계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은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시행령에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감원은 은행들이 내부통제 장치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최종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제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금감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를 위해 그동안 다수 회사 관계자와 법률대리인, 검사국 진술과 설명을 듣는 한편 제반 사실관계와 입증자료 등을 확인했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지난 1월 16일 첫 제재심을 앞두고 “은행 측과의 법리 다툼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법리 검토를 많이 했다”고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 역시 문책경고를 받았다. 사진=최준필 기자
반대로 두 은행 쪽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의 관련 조항은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것을 적시한 것일 뿐, 구체적인 징계 및 처벌 규정이 없어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맞섰다. 또 내부통제 기준은 이미 마련돼 있고, 설령 기준이 부실했다 하더라도 하부 위임이 돼 있는 만큼 최고 경영자까지 제재하는 건 과하다고 주장했다. 최고 경영자가 DLF 상품 판매의 의사결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두 은행은 손실 발생 직후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를 개선했고, 지난 1월 16일 첫 제재심이 시작되는 동시에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 결정에 따라 피해 고객 상당수에게 보상을 해주고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실제 우리금융은 고객과 합의가 되면 다음날 곧바로 입금을 해주는 등 적극적으로 보상에 나서고 있다. 피해 고객 가운데 70% 이상이 보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제재심은 금감원 쪽의 손을 들어줬다. 제재심 위원들 간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특히 내부통제 기준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최고 경영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다수 위원들이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과거 단순 실무자 실수가 아니라 내부통제 미비에 따른 것으로 판단해 경영진을 중징계 제재한 전례(2018년 삼성증권 배당오류 사태)가 있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하나은행 차기 회장 구도 변화 불가피
손 회장과 함 부회장에 대한 징계가 ‘문책경고’로 확정됨에 따라 앞으로 두 은행의 차기 회장 구도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우리금융 쪽의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지난해 12월 30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을 차기 회장 단독 후보로 선정했다. 오는 3월 열리는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회장 연임이 확정될 예정이었는데, 이 결정을 그대로 유지할지 새 회장을 뽑는 방향으로 바꿀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금융은 지주사로 전환하고 인수·합병(M&A)으로 회사를 급격하게 키우는 상황에서 손 회장의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했다. 그룹 내부에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 ‘플랜 B’를 마련해 뒀다는 말도 나오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추가 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우리금융에 중징계가 공식 통보되는 시점이 금융위원회 승인 등 절차상 문제로 인해 3월을 넘길 수밖에 없는 만큼 손 회장이 연임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금감원 쪽은 “이미 결정은 났는데 절차상 통보가 늦었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며 일축하는 분위기다.
서울 중구 소공로 51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금융권 일각에선 아직 ‘변수’가 남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중징계가 금융위원회에서 표류하는 경우다. 금감원 제재 효력은 ‘제재안이 금융회사에 통보된 날’로부터 발생한다. 문책경고는 금감원장 전결 사항이지만 기관에 대한 제재는 금융위원회 최종 의결이 필요하다. 통상 금융위 의결(기관 제재)와 개인 제재를 합쳐 하나의 검사서로 전달하는 게 일반적이다. 제재안이 금융위를 거치면서 3월을 넘긴다면 손 회장은 제재 효력 발생 전에 연임을 확정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다른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위와 협의를 했다. 2월 중에 금융위 의결이 마무리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2월 안에 의결이 나올 경우 은행들의 이의신청 기간을 고려해도 3월 주주총회 전까지는 징계가 최종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주총 전에 징계가 확정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법원에 제재안에 대한 효력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만약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 3월 주총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이후 진행되는 재판 등에서 금감원이 승소하더라도 손태승 회장은 새 임기(3년)를 시작한 상황이라 사실상 제재를 피해갈 수 있다.
다만 금융사 입장에서 금감원과 ‘전면전’을 펼치며 대립각을 세우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금감원 중징계를 받고 자리를 지킨 전례도 없다. 다른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손태승 회장의 경우 법적 대응을 통해 연임을 이어가더라도 ‘2기 경영’ 체제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조직 차원에선 ‘실익’ 여부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제재심의 여파는 차기 우리은행장 선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금융은 지난 1월 31일 그룹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를 발표하기로 했으나 이를 연기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은 오는 연말 부회장직 임기가 만료된다. 함 부회장은 2021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후계자로 거론돼왔다. 중징계가 확정되면 함 부회장은 최소 3년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하고, 이에 따라 하나금융그룹의 차기 회장 구도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과 하나금융 쪽은 공식적으로 “제재가 확정된 건 아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결정된 건 없다”라며 말을 아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