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거절 등 비대위원장 맡을 거물 안 보여…호남계 집단 반발 시 공중분해 불 보듯
안철수 전 의원과 회동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다음 날인 1월 28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바른미래당은 중도 성향 안철수 전 의원과 중도 보수의 유승민 새보수당 의원이라는 두 축으로 이뤄져 있었다. 안 전 의원이 한국을 떠나 있던 사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갈등을 빚던 유 의원이 탈당하면서 한 축이 무너졌다. 안 전 의원도 손 대표와의 신경전 끝에 탈당한 뒤 1월 29일 신당창당을 선언했다. 창업주이자 최대주주였던 둘이 동시에 떠나면서 당 미래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앞서의 당 핵심 관계자는 “안 전 의원이 이런 식으로 곧바로 탈당할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면서도 “당을 박차고 떠난 안 전 의원 앞날도 어둡다고 보지만 바른미래당 상황도 매우 어렵다. 총선에서 전국구 득표 3%조차 넘을 수 있을지도 어렵다고 본다”면서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을 두고 손 대표 측은 안 전 의원 스타일을 문제 삼는다. 손 대표 측근으로 꼽히는 한 관계자는 안 전 의원 정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은 긴 성토를 털어놨다.
“손 대표가 안 전 의원이 외국에 있을 때 끊임없이 연락을 했지만 전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시하고 있던 안 전 의원은 들어오자마자 손 대표에게 대표직 내려놓으라고 했다.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최소한 내려놓을 명분이나 퇴로는 열어줬다면 여기까지 왔겠나. 막말로 어차피 실권은 안 전 의원이 갖고 있으니 손 대표가 당을 맡은 상태로 선거를 치를 수도 있지 않나. 오자마자 당 대표 내려놓으라고 하더니 곤란한 기색을 내놓자 곧 바로 탈당하는 법이 어딨나.”
이에 대해 안 전 의원 측은 손 대표가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안 전 의원 측근 의원은 “손 대표가 당 대표 된 이후 지킨 약속이 전혀 없다. 유승민계 탈당도 그 때문에 일어난 일 아닌가. 손 대표가 당 대표를 내려놓지 않은 상태에서, 확실한 실권을 쥔다는 보장도 없이 어떻게 안 전 의원이 당을 살리고 재단장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1월 29일 안 전 의원 탈당 기자회견에 당원 대표로 참석했던 오미선 씨는 “우리는 당 대표에서 물러날 뜻이 없다고 선언한 손 대표의 노욕 어린 궤변과 각종 핑계들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며 “국민과 당원의 불신을 키운 손 대표는 우리와 함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당원 없는 당 대표가 무슨 소용인가”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손 대표가 약속을 지켜왔든 안 지켜왔든 그건 별개 문제다. 안 전 의원이 마치 회사 대주주처럼 손 대표에게 나가라고 요구했고 나가지 않자 탈당했다. 이건 누가 봐도 안 전 의원이 실수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안 전 의원은 새정치의 신선함을 잃었다. 지역기반이었던 호남 지지율 이탈에 바른미래당도 버렸다. 앞으로 미래가 밝아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안 전 의원이 당을 떠나면서 손 대표도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당장 현재 바른미래당 주류가 된 호남계 의원들의 집단 반발이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게 당 안팎의 설명이다. 손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영입한 뒤 2선으로 후퇴하든지 아예 자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1월 30일 손 대표는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당 재건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이 나이에 일선에 나서지 못한다”며 거절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
바른미래당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솔직히 지금 당의 상황을 보면 누구라도 맡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다. 김종인 전 위원장도 당 상황을 보고 판단한 것 아니겠나”라면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거물급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2월 초 안에 손 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구하지 않으면 호남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어 “그나마 자금력이 있다는 장점을 살려 이 귀한 돈을 미래세대 청년 정치인을 발굴하고 이들의 정치 실험에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바른미래당 내부에선 결국 당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바른미래당보단 차라리 무소속으로 나오는 게 유리할 것이란 말도 뒤를 따른다. 실제로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김경진 의원은 광주 북구갑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당선되고 민주당으로 합류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당원들 사이에선 당적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당이 과연 존재할 가치가 있느냐는 한탄만 떠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