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출신 대거 출격에 다른 후보들 불만…“근무 경력 어필 당연”vs“문재인 청와대 빼야”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위원, 청와대 보좌진과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을 참배하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최근 정치권에선 총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예비 후보자들이 청와대 이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갈등이 빚어질 조짐을 보인다. 당내 경선에서 청와대 경력을 기재할 수 있는지를 두고서다. ‘문재인 청와대’라는 표현을 허용할지, 또 허용한다면 어느 직급부터 이 단어를 쓸 수 있을지 같은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에 대해 한 청와대 근무 경력의 예비 후보자는 “여당 후보로서 청와대 근무 경력을 앞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 본인이 선택할 문제”라면서 “공천에서 특혜를 받는 것도 아니다. 여론조사 얘기를 하는데, 그렇다면 본선에서도 유리한 것 아니냐. 여론조사가 높게 나오는 후보에게 공천을 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청와대 출신 후보자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문 대통령 복심으로 통하는 윤건영 전 국정기획실장을 비롯해 주형철 전 경제보좌관 등 비서관 이상 고위직은 25명 정도가 출사표를 던졌다. 행정관급까지 합하면 총선에 출마할 예비 후보자 수는 7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비교해 봐도 그 수는 ‘역대급’이다. 청와대 프리미엄을 두고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 역시 이런 사정과 맞물려 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 출신들의 출마는 전략적으로 필요한 측면도 있다. 개인적으로 청와대 이력을 활용한다는 데 뭐라고 할 수도 없고”라면서도 “그런데 그 수가 워낙에 많다 보니 기존 후보들이 위협감을 느끼는 것 같다. 청와대 출신들에 대한 우대가 조직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도 높다”고 귀띔했다.
민주당 사무처 관계자는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문재인 정부 대변인 전원이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아무래도 많이 나온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 말처럼 박수현 전 대변인, 김의겸 전 대변인에 이어 고민정 전 대변인도 1월 15일 총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낸 바 있다. 고 전 대변인은 “이제 대통령의 입에서 국민의 입이 되려 한다”고 했다.
대변인뿐 아니라 국정홍보를 담당하는 춘추관장들도 모두 출마하게 됐다. 권혁기 전 춘추관장에 이어 유송화 전 춘추관장도 1월 15일 출마를 선언했다. 여기에 대변인실 30대 청년 참모들도 사표를 냈다. 선임행정관급인 여선웅 전 청년소통정책관과 김빈 전 디지털소통센터 행정관은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떠났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출마하면서 나머지 후보들 사이에선 위기감이 팽배하다. 더군다나 집권 4년 차로 접어든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조국 사태 등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줄곧 40% 중후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16년 총선의 진박 마케팅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결국 ‘문재인 프리미엄’이 얼마나 작용할지가 문제다. 2016 총선에서 소위 ‘진박’들이 TK(대구·경북)나 서울 강남에서 출마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대통령 프리미엄은 텃밭에서 먹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다른 지역보다는 호남에서 문재인 프리미엄이 결정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현재 호남에서 출마를 준비했던 예비 후보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 출신들이 경선 시작부터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한 예비 후보자는 “문재인 청와대 출신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면 당내 경선에서는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리라 본다. 문재인 대통령 이름만 들어가면 경선은 사실상 끝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최소한 ‘문재인 청와대’라는 말만 빼고 청와대 비서관 출신 정도로만 해줘도 경쟁이 가능하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부산에서 출마를 준비하는 한 예비후보는 여론조사 외에 다른 방법을 공천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내 경선을 실시할 때 여론조사만 할 필요가 없다. 다른 방법도 많다. 여론조사는 조사 특성상 인기투표 가능성이 높다. 당원들에게 정책을 설명할 기회도 없이 이름만으로 누구를 찍을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원전 폐기 등을 결정할 때 최근 적용된 공론조사(특정 사안에 대하여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표본 집단을 구성한 뒤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은 상태에서 1차로 의견 조사를 한 다음, 참가자에게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토론을 거친 뒤 2차 조사를 실시하는 여론조사 방법)를 경선에서 도입할 필요도 있다. 실제로 호남과 경기에서는 공론조사가 도입되기도 했었는데 이를 전국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청와대 프리미엄이 과연 본선에서 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당내 경선에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겠지만 본선에서는 효과가 확실치 않은 이상 본선에서 승리할 후보가 선출되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신율 교수는 “예선에서는 결정적인 변수겠지만 본선에서는 일부 지역 이외에서는 효력이 거의 없을 가능성이 높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 ‘진박들’도 결국 TK에 한정해 찻잔 속 돌풍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