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안전·복지 분야 이행률 높아…집무실 이전·사면권 제한 등은 사실상 파기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0일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 개혁안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이다. 이를 실현하려는 민주당과 반대하는 야당 사이에선 충돌이 계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2020년 1월 13일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핵심이다. 경찰의 1차 수사 재량권을 대폭 늘리고, 검사 지휘 없이 독자적으로 수사하도록 했다.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특정했고, 나머지 수사 권한은 경찰로 넘어가게 된다.
앞서 2019년 12월 30일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이 통과된 바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는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주요 골자다. 문 대통령이 내걸었던 검찰 개혁 공약은 완수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 선거제도 공약으로 ‘선거 연령 18세 인하’ ‘국회 구성 비례성 강화’ ‘결선 투표제 도입’ ‘정치 자금법 개편’ ‘행정부처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심사 강화’를 내세웠다. 이 중 2019년 12월 27일 선거법 개정안으로 선거 연령 18세 인하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통과돼 일부 이뤄졌다.
문 대통령 이행 공약 중엔 주로 적폐청산과 국민안전, 복지 분야가 많았다. 우선 적폐청산의 경우 ‘역사교과서 다양성 보장을 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금지’, ‘문화예술 지원심사의 투명성 확대’, ‘방위산업 부당이득에 대한 징벌적 가산금’ 등이 이행됐다. 국민안전을 위해 내걸었던 ‘소방청 독립’, ‘해양경찰청 독립’,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가 재난 컨트롤 타워 역할’ 등도 대표적 공약 이행 사례로 꼽힌다.
복지에서는 문재인 케어를 통해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보장했다. 회생신청 시 돈이 없는 경우 지원해주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공약도 ‘패스트트랙’ 제도를 마련해 이행했다. 또 ‘여성 건강 기본계획 마련’ 공약을 위해 2018년 부처별 성평등 실행목표를 마련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거나 아예 파기된 공약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고위 공직자 임용 기준 강화,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정부청사 이전, 사면권 제한 등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병역면탈,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 5대 비리 관련자는 고위공직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고위 공직자 임용기준 강화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낙연 전 총리의 위장전입 사례가 나왔던 1기 내각 때부터 사실상 파기됐다는 평가다.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정부청사 이전도 2019년 1월 4일 청와대가 보류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자문위원은 ‘집무실을 현 단계에서 광화문 청사로 이전하면 청와대 영빈관·본관·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기능 대체부지를 광화문 인근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하며 무산됐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공약을 처음 봤을 때 경호 등의 어려움으로 인해 현실성 없다고 봤다”며 “다만 그 정도로 국민들과 소통하겠다 정도의 비전이자 의미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사면권 제한 공약도 2019년 12월 30일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공성진, 신지호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을 사면하면서 사실상 파기로 판단된다. 당시 청와대는 “대가성이 없어 뇌물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지만, 10만 달러를 받았다고 해 유죄가 확정된 이 전 지사가 대가성이 없냐는 논란이 일었다.
주요 공약이었던 액티브X, 공인인증서 폐지도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공약이 이행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전 세계를 따져 봐도 많지 않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위법성 조각 사유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도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의 구제를 지원하기 위해 기금을 설치하겠다는 공약도 감감 무소식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실 공약 이행률은 썩 중요하지 않다. 역대 대통령 모두 대부분 이행률 20% 선이었다. 취임 이후 현실적으로 다시 판단했을 때 중요하지 않다면 약속했어도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파기하는 것도 필요하다. 중요한 건 공약이 일종의 비전이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집권 이후 어디로 갈지 방향성을 보여준 다는 게 공약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