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승 회장 중징계 금융위·금감원 손발 척척…차기 행장 인사 ‘정권 실세 개입설’ 솔솔
지난 2월 3일, 금융감독원은 손태승 우리은행 행장 겸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지난해 불거진 DLF 불완전판매에 대해서다. 금감원의 중징계 결정에 우리금융은 물론 금융권도 크게 당황했다. 우리금융그룹의 지배구조가 통째로 바뀔 수 있는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 사진=최준필 기자
우선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회장은 오는 3월 주총에서 회장 연임에 도전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권 전체를 놓고 봐도 당국의 중징계를 받은 CEO(최고경영자)가 경영을 이어간 사례는 없다. 물론 행정소송 등을 통해 회장직을 유지하는 방법도 있지만, 부담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우리금융은 손 회장이 지주회장과 은행장을 겸하고 있는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 별도 행장을 선임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 결국 회장과 은행장이 한꺼번에 바뀌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사실 금융권에는 올해 초부터 심상찮은 기색이 감지됐다. DLF 관련 첫 제재심의위원회를 하루 앞둔 지난 1월 16일, 금감원은 뜬금없이 지난해 열린 분쟁조정위원회 회의록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분조위 회의는 그동안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져왔고, 회의록 공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분조위 회의록에는 우리은행이 DLF 판매를 할 당시 초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면서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고 분별이 어두운 고령자에게도 상품을 파는 등 불완전판매가 심각했다는 사실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제재심 바로 전날 전례 없는 회의록 공개가 이뤄진 것을 두고 금융권에서는 “뭔가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금융권은 손태승 회장의 중징계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 회장이 중징계를 받더라도 연임엔 문제가 없을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금감원의 징계안에 대한 금융위원회의 최종승인이 회장 선임안을 표결하는 3월 정기 주주총회 이후에 이뤄지면 3년 동안은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융위는 금감원의 징계안이 나오자 곧바로 찬성의 뜻을 내비치며 “3월 초까지 모든 절차를 끝내겠다”고 예고했다. 사실상 손태승 회장의 자진사퇴를 압박한 셈이다.
서울 중구 소공로 51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사. 사진=박정훈 기자
금융권은 손발이 척척 맞는 금감원과 금융위의 행보를 두고 그간 떠돌던 ‘시나리오’가 현실화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금융권은 우리금융에 일어날 다음 장면은 ‘낙하산 투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장과 은행장에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선임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만약 손태승 회장의 신변에 변화가 생길 경우 우선 회장직은 외부 수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우리금융 내부에는 차기 회장 후보로 나설 만한 후보군이 마땅치 않다. 다른 금융그룹에선 전·현직 은행장이 경영승계 코스를 밟지만 우리금융은 손 회장이 행장을 겸하고 있어 ‘2인자’가 없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낙하산이 내려앉기 안성맞춤인 구조가 짜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대목은 손태승 회장의 중징계 결정 이전부터 진행되던 은행장 선임 작업이다. 현재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는 권광석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와 김정기 집행부행장, 이동연 우리FIS 대표로 좁혀져있다.
금융권이 우려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그림자는 여기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당초 차기 우리은행장으로는 김정기 부행장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런데 3명의 숏리스트가 만들어진 후 의문스런 소문이 퍼지고 있다. ‘현 정권 실세와 동향인 한 후보가 유력한 차기 회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우리은행 안팎에서는 특정 후보자를 두고 ‘현 정부 고위 인사와 친분이 있다’, ‘정권 실세가 밀어주고 있다’ 등의 소문이 파다하다.
정권 실세 입김설의 주인공은 권광석 새마을금고 신용공제 대표로, 청와대 핵심 인사가 그를 밀고 있다는 풍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권 대표는 울산 학성고를 졸업했는데, 올해 초 청와대 조직개편에서 핵심 보직에 오른 인사가 그의 학성고 후배다. 심지어 이미 숏리스트에서 탈락한 한 후보를 놓고도 ‘정치권 인맥을 등에 업고 차기 회장 후보에 거론되고 있다’는 설도 돌고 있다.
금융권의 ‘합리적 의심’을 부르고 있는 정황은 또 있다. 우리금융은 당초 올해 1분기 정부 보유 지분 매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우리금융의 최대주주는 지분 17.2%(약 1억 2460만 주)를 보유한 예금보험공사다. 금융위는 지난해 1월 지주사로 전환한 우리금융의 완전 민영화를 위해 2022년까지 두세 차례에 걸쳐 예보 주식을 매각키로 하는 지분 매각 로드맵을 발표했고, 올해 상반기를 첫 매각 시점으로 잡았다. 실제로 예보는 올해 지분 매각 착수에 대비해 지난해 11월 우리금융과 공동으로 미국, 홍콩, 싱가포르 자산운용사를 상대로 투자설명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DLF 사태와 경영공백 우려 등으로 주가가 떨어지면서 지분 매각의 대전제인 공적자금 회수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지자 ‘지분 매각을 늦추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우리금융의 주가는 1만 원을 간신히 웃도는 수준이다. 정부의 공적자금 원금 회수를 위한 주가 마지노선은 1만 3800원이다. 최소 이 금액 이상에서 처분해야 정부가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지난해 6월 우리금융 지분 매각 계획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주가가 1만 4000원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주당 3000원가량의 손해를 감수하고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 추후 ‘헐값 매각’ 논란이 일면서 책임 추궁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이는 예보 입장에서는 “주가가 낮아 지금은 매각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금융권은 오비이락처럼 맞아 들어가는 우리금융 안팎의 사정을 곱지 않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도 금융권 낙하산은 늘 있었지만 이번엔 정도가 좀 심하다. 당시엔 내부인물 중에서 입맛에 맞는 사람을 고르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현직을 내쫓고 새 사람을 앉히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우리금융지주 이사회는 손태승 회장 체제를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은 2월 6일 배포한 자료를 통해 “우리금융 이사회는 이날 이사회 간담회에서 기관에 대한 금융위의 절차가 남아 있고 개인에 대한 제재가 공식 통지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견을 내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그룹 지배구조에 관해 기존에 결정된 절차와 일정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다만 소송 등 여부는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