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중국 지원 위해 물량 선점 논란…“취약계층 지원 목적, 물량 관여 안해” 해명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는 2월 3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마스크가 품절된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1월 28일 남편의 임직원 몰에서 마스크를 주문한 A 씨(38)는 이튿날 구매업체의 일방적인 주문 취소 통보를 받았다. A 씨는 “난 현재 임신부이고 집에는 두 돌도 안 된 아이가 있다. 예방 차원에서 A 사 KF94마스크를 구매했는데 일방적으로 주문이 취소됐다. 취소 이유를 물으니 ‘제약회사에서 온라인 몰에 주기로 한 물량을 정부가 영세민부터 공급한다고 통제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바이러스가 돈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가려가며 걸리는 것도 아닌데 국민한테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제 오늘 결제한 마스크가 다 취소당해서 너무 화가 난다”고 말했다.
판매업체는 소형 유통사였다. 이 업체 관계자는 “우리는 제약사 OOOO에서 물건을 받는데 제약사와 식약처가 협의를 거쳐 정부 쪽 물량이 먼저 나가게 됐다. 중국이랑 독거노인 등 취약 계층에 먼저 나가다 보니까 OOOO 입장에서는 거부도 못하고 생산 물량을 정부 쪽으로 돌렸다. 공무원이 요청하는 거고 또 좋은 일이라고 하니까 대기업은 거부할 수 없다. 대부분의 마스크 업체가 그런 상황이다. 최소 한 달, 최대 두 달 뒤에나 물건이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각 기관이 밝힌 확보 물량 및 취약 계층 등에 지원 예정 물량. 자료=자체 취합
일반 시민의 마스크 확보에 비상이 걸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가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주요 마스크 업체에 공문을 보내 “보건용 마스크 재고량, 출하량, 입고량 등 일일 현황 자료를 조사 중에 있으니 적극 협조하라”고 일렀다. 2월 1일 결과가 나왔다. 이날 정부는 “식약처 품목 허가를 받은 마스크는 1062종이며 생산기업 123곳, 하루 생산 물량 800만 장, 현재 국내 재고 약 3100만 장”이라고 했다.
재고가 3100만 장이라고 확인됐지만 시장에서 마스크 구하는 어려운 상황이 지속됐다. 마스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정부가 이미 재고의 3분의 1에 달하는 물량을 선점했다고 확인됐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확보했다고 밝힌 마스크 수량은 총 1094만 장으로 집계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1월 29일 이래 취약 계층에 마스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알리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1월 29일부터 지하철과 버스 등에 마스크 총 156만 장을 배치했다고 알렸고 경기도 화성시는 마스크 36만 5000장을 재난 취약 계층인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등에게 배부한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여러 지자체가 함께했다.
취약 계층에 지원하는 마스크에 대해 별다른 불만은 제기되지 않았다.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건 정부가 중국에 마스크 등을 지원하겠다고 알린 이후다. 1월 28일 정세균 총리 주재로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정부는 마스크, 방호복 등 의료구호 물품을 전세기편으로 중국에 전달하는 등 협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중국 먼저 챙기는 정부를 향해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자 외교부는 이틀 뒤인 1월 30일 보도자료에 ‘민관’이란 단어를 집어넣었다. 보도자료에는 “민관이 협력해 일반 마스크 200만 장, 의료용 마스크 100만 장을 중국에 지원한다”고 했다. 민간에서 마스크 등을 구비해 정부가 배송을 했다는 취지였다. 정부가 나서서 했다는 이틀 전 입장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스크 300만 장을 보내는 데 앞장선 단체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사단법인 중국경영연구소로 나타난 까닭이다. 중국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연구소의 기획에 따라 중국유학총교우회와 중국우한대총동문회가 마스크 200만 장과 의료용 마스크 100만 장, 방호복·보호경 각 10만 개 등을 구매할 32억 원을 모았다. 더군다나 두 단체의 수장은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두 단체의 지원이 정부의 도움을 받아 중국으로 잘 갈 수 있도록 길을 트는 역할을 했다.
2월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대량의 보건용 마스크 반출을 막기 위해 세관원이 외국인 관광객의 가방을 검사하고 있다. 사진=박정훈 기자
정부는 아직까지 시장에 마스크가 풀리지 않은 원인으로 유통업계의 매점매석과 국외 밀반출을 지적했다. 정부는 “생산은 정상적으로 되고 있지만 유통 과정의 문제”라며 “매점매석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했다. 관세청은 아예 수출 제약 조건을 내걸었다. 노석환 관세청장은 “2월 6일부터 300장을 초과하는 마스크 국외 반출은 간이 수출신고를 거쳐야 하고 1000장을 초과하면 정식 수출신고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7일 저녁까지 대량의 매점매석 행위나 밀반출은 적발되지 않았다. 정부가 언론을 거쳐 공개한 국외 대량 반출 사례는 마스크 2200장에 불과했고 매점매석 사례도 4만 2000여 장에 그쳤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는 2월 7일 아예 민간의 마스크 생산을 신고제로 바꾸는 긴급수급 조정조치를 내렸다.
홍남기 부총리는 “긴급수급 조정조치는 물량을 제한하거나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출하·재고량을 식약처에 신고토록 하는 것”이라며 “신고 의무는 부과되지만 정부가 물량에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