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당시 기부채납 약속 받았지만 소유권 이전 안돼…토지주 20년 만에 권리 행사하자 민원 폭주
왼쪽 건물 담벼락부터 우측 아파트 담벼락까지에 해당하는 도로는 사유지이지만 토지주는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금재은 기자
동대문구 청량리동 미주아파트는 재건축 호재가 있어 투자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미주아파트는 10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다. 그런데 동대문구청에는 최근 미주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아파트 진입로가 사설주차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진입도로가 좁아지고, 주민들이 잠시 주정차를 할 수 있던 공간이 시간당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개인사업장으로 바뀌었다.
미주아파트 상가 재건축을 맡고 있는 건설사도 불만이 많다. 건물을 짓는 동안 공사차량과 인부 등 통행량이 많은데 도로 일부가 주차장으로 활용돼 불편함이 크기 때문이다. 상가 건설을 맡고 있는 미주개발도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문제가 된 건 미주아파트 진입 도로와 양측 인도부지 2000여 평이다. 해당 도로는 단지 중앙을 관통하는 데다 청량리역 로터리 우회도로로 사용된다. 도로 양측에는 세무서, 상가, 아파트 등이 접해있다. 단지 내 상가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사유지를 거쳐야만 한다. 청량리세무서 문을 나서자마자 밟는 땅도 사유지다.
땅 주인도 불만이 많다. 자기 땅을 20년 가까이 사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유지에는 주민과 통행인이 불법주차와 불법통행을 일삼고 있는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토지에 대한 상하수도와 가스 관련 세금은 지불해야 해 더 분통이 터졌다.
참다못한 토지주는 2017년 전 도로를 활용해 주차장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차장 사업을 하기 위해 도로 바깥쪽 차선에 주차선을 긋고 사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국세청에서 사업자등록이 발급되지 않았다. 국세청은 해당 토지가 1972년 건설부고시에 의해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됐고, 1999년 5월에는 동대문구 구도 노선으로 인정된 점을 들어 사설주차장 설립이 불가하다고 봤다. 하지만 2년 뒤인 2020년 국세청은 결국 주차장사업에 대해 사업자등록증을 내줬다.
토지주는 1월 가까스로 법인 설립 허가를 받고, 컨테이너박스를 세워 주차관리소로 이용했다. 하지만 동대문구청은 다시 토지주에게 도로에 세운 컨테이너를 철거하라는 행정지시를 내렸다. 구청과 국세청 간 행정이 반대 행보를 보이며 혼란은 가중됐다.
단지를 관통하는 2000여 평의 도로가 공용도로로 사용되는 사유지다. 사진=토지주 제공
주택단지 내 실질적인 공용도로가 어떻게 사유지로 남게 됐을까. 미주아파트는 1978년 신흥건설재벌로 불리던 라이프주택이 시공했다. 당시 기부채납하기로 했던 공용도로는 지자체로 소유권이 제대로 이전되지 않았다. 행정누수다. 이후 라이프주택이 경영악화 탓에 부도로 넘어가면서 기부채납됐어야 하던 땅이 경매로 넘어가게 됐다. 게다가 토지는 문서상 지목이 대지로 설정되어 있다.
토지주 측은 “지목이 대지로 설정된 땅을 2002년 매입했는데 세금은 내고, 아무런 권리도 주장할 수 없어 답답하다. 더군다나 최근 재건축하는 상가에는 청량리동 복합청사가 입주하는데 공공기관이 입주한다고 해도 사업지 입구가 바로 내 토지인데 토지사용승낙도 없이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해관계자들의 불만은 커져만 가는데 사태의 해결은 요원하다. 동대문구청에는 단지 내 도로부지를 기부채납받았다는 공문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1999년 구에서 발행한 구보 공보에 해당 도로가 ‘구도’라는 점이 적시됐을 뿐이다. 시비를 가릴 공문서가 남아있지 않아 법적 다툼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대문구 관내에는 도로와 관련한 또 다른 분쟁도 있다. 학교법인 경희학원과 구의 갈등이다. 동대문구는 1960년대 말부터 경희대로에 수도 및 전기관을 매설해 공공도로로 사용해 왔다. 2012년 경희학원이 동대문구청을 상대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갈등이 불거졌다. 경희학원은 경희대학교 진입로 부지 부당이득금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2016년 대법원은 “구청이 경희학원에 사용료 14억 원을 지급하고, 매년 1억 400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도 동대문구는 토지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1970년대 행정자료 가운데 남아있는 공식 자료가 없다. 다만 이해관계자들의 민원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관계되는 부서별로 사안의 쟁점을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며 “경희학원 문제는 다른 사안도 얽혀 있어 협의를 통해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