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금에 발목 잡혀… “날 갖고 놀지 말라”
기성용은 이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직전 소속팀 뉴캐슬과 기존 계약을 합의하에 해지했다. 사진=뉴캐슬 유나이티드 페이스북
#K리그 이적시장에 던져진 폭탄
예년에 비해 뜨겁게 진행되던 국내 축구 스토브리그에 ‘폭탄’이 던져졌다. 스코틀랜드 프리미어십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거치며 유럽 무대에서 12시즌을 활약한 기성용이 국내 복귀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해외에서 다년간 활약한 스타가 국내로 복귀해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모습은 흔치 않았다. ‘레전드’ 차범근과 홍명보가 그랬고 박지성, 이영표 또한 해외에서 커리어를 마감했다. 이 같은 상황을 겪었기에 팬들은 기성용의 복귀 시도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복귀 행선지가 전북 현대로 떠올랐기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기성용이 프로 무대에 데뷔한 친정팀이자 유럽 진출 이후로도 꾸준히 연을 이어온 팀은 FC 서울이었다. 이전까지 언젠가 기성용이 국내로 돌아온다면 당연히 서울의 품에 안길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기성용 역시 오랜 유럽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서울 구단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아왔다. 유럽 시즌이 끝나는 여름이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옛 동료들이 있는 친정팀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기성용은 10여 년간의 유럽 생활 중에도 틈틈히 경기장을 찾는 등 친정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사진은 차범근, 차두리 부자와 함께 서울 홈경기를 지켜보는 기성용(왼쪽). 사진=연합뉴스
#성사되지 못한 금의환향
그렇지만 기성용의 K리그 복귀는 무산됐다. 최초 친정팀과 협상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진전이 없었다. 이에 K리그에서 가장 막강한 자본력을 자랑하는 전북과도 협상에 돌입했지만 계약에 이르지 못했다. 전북행이 무산된 이후로도 서울이 재차 협상을 시도했지만 결국 기성용은 해외 무대로 눈을 돌리게 됐다.
이 과정에서 기성용의 국내 복귀를 염원하는 팬들의 지탄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서울이 기성용의 재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기성용이 에이전트사 C2글로벌을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선의로 타진했던 K리그 복귀가 양 구단을 비롯한 K리그 전체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사태로 번지고 있다고 인식했다”면서 협상 종료를 선언할 정도였다.
자금력에 한계가 있는 서울과 달리 전북 입단 무산에는 다소 독특한 장애물이 작용했다. 2010년 기성용이 스코틀랜드 셀틱 FC로 이적할 당시 서울 구단과 맺은 별도의 계약이 걸림돌이 된 것이다. 국내로 복귀한다면 서울과 우선 협상을 해야 하고 국내 타구단으로 이적한다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는 내용이 계약에 담겼다. 전북 관계자가 “기성용 영입에 관심이 있지만 위약금을 지불할 수는 없다”고 밝히며 위약금의 실체가 드러났다. 20억 원이 넘는 거액으로 알려졌다.
#타구단 이적 발목 잡는 ‘위약금’
기성용의 행선지로 잠시나마 떠올랐던 전북은 기성용이 직전 소속팀인 뉴캐슬 유나이티드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금액의 연봉(약 20억 원)을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결국 위약금의 존재가 발목을 잡았다. 전북 측은 “무리해서 영입을 할 수는 있지만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면서 협상에서 발을 뺐다. 또 다른 스타가 국내로 들어올 때 매번 위약금을 지불하는 선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기성용은 당초 오는 6월까지 뉴캐슬과 계약이 돼 있었다. 하지만 2019-2020시즌 들어 팀내 입지를 급격히 잃었고 다른 팀을 물색하고자 구단과 합의하에 이번 겨울 이적시장서 계약을 종료시켰다. 해외 유명 이적정보 사이트에서도 그의 상태는 ‘Without Club’, 소속팀이 없어 자유롭게 계약을 할 수 있는 선수(FA) 신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성용의 자유는 국내에서 제한됐다. 2010년 당시 서울 구단이 셀틱에서 받은 이적료 일부를 기성용에게 지급하며 ‘서울로 돌아와야 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례적인 계약이지만 기성용의 사례가 최초는 아니다. 1999년 서정원의 수원 삼성 입단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98년 당시 안양 LG 소속이던 서정원은 프랑스의 RC 스트라스부르로 진출했지만 1년 만에 국내로 돌아오게 됐다. 서정원의 선택은 친정팀이 아닌 수원이었다. 기성용의 경우와 유사한 위약금 문제가 걸려 있었지만 선수와 수원 구단이 계약을 강행했다. 결국 선수 개인과 구단 간 소송전이 벌어졌고 서정원은 패소해 당초 구단이 요구한 7억 원 중 일부를 지불했다.
2019년에는 국가대표 출신 수비수 윤석영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 전남 소속으로 뛰던 윤석영이 2013년 퀸즈파크레인저스(잉글랜드)로 이적하며 ‘한국 복귀 시 전남이 최우선협상권을 가지며 이를 위반할 경우 15억 원을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5년만인 2018년, 윤석영은 국내로 돌아오며 전남이 아닌 서울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이에 전남은 위약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기성용은 복귀 시도가 사실상 무산된 이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의미심장한 글을 남겨 눈길을 끌었다. 사진=기성용 인스타그램 캡처
K리그 무대는 제도적으로 이면계약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연맹이 윤석영, 기성용과 같은 경우에 제재를 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연맹 관계자는 “K리그 구단과 선수가 계약을 하면 연맹이 제공하는 표준 계약서를 이용해야 하고 그 외의 계약은 ‘이면계약’으로 간주하고 징계를 받게 된다”면서도 “기성용의 위약금 문제는 K리그 선수로서 계약이 아닌 해외 진출을 하면서 일어난 구단과 선수 간 일종의 ‘합의’다. 이면계약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연맹에서 제재할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기성용 에이전트사는 공식입장문에서 “기성용은 K리그 복귀 무산에 상당히 상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축구계 인사는 “기성용이 이번 협상 과정에서 크게 상처를 입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기성용이 ‘선의’로 추진했던 K리그 복귀는 결국 실패했다. 그는 또 다시 해외로 발길을 돌리며 소셜미디어에 의미심장한 문구를 남겼다. “거짓말로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나는 진실로서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나를 가지고 놀지 말라. 내가 대응한다면 당신도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내용을 영어로 적었다. 축구 스타의 복귀를 기대한 축구팬들에게 2020년 겨울은 씁쓸한 기억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