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 가져와라” 무전, 형사계장 아닌 파출소장 주장도…유가족 “묻힌 위치라도 알고 싶다”
2019년 11월 경찰 과학수사대 인원들이 피해자 김 아무개 양이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야산을 수색하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춘재 초등생 살인사건은 1989년 7월 7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생 2학년 김 아무개 양이 이춘재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애초 김 양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실종사건으로 분류됐었다. 이후 이춘재가 자신의 범행이라고 밝히면서 다시금 주목받았고 결국 살인사건임이 드러났다.
비난의 화살은 이내 당시 수사 형사들에게 넘어갔다. 당시 수사 형사들이 김 양의 가방, 속옷 등 유류품을 발견하고도 30여 년 동안 김 양의 가족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심지어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계장은 김 양의 유골로 추정되는 뼈를 찾은 뒤 부하 직원에게 “삽 가져오라”는 무전을 보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사건을 재조사하는 경기남부경찰청은 당시 형사들이 유골을 어딘가에 숨기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당시 형사계장과 형사 1명 등 두 명을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입건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다만 입건된 당시 형사는 이미 사망했다. 30년이 넘도록 이 사실을 모르고 살았던 김 양의 가족은 1월 30일 당시 형사계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범인도피·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특수직무유기)·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
#방범대장 “줄넘기에 묶인 뼈 발견했었다“
당시 민간인으로 화성 일대를 순찰하는 방범대 대장이었던 A 씨는 형사계장 B 씨와 줄넘기에 묶인 뼈를 함께 발견한 인물이다. A 씨는 B 씨가 부하 형사에게 무전으로 “삽 하나 가져와라”라고 말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2월 9일 일요신문과 전화 통화에서 A 씨는 이를 부인했다.
A 씨는 “당시 형사계장 B 씨에게 전화가 와서 김 양 유류품이 발견된 장소에 순찰을 가자고 했다. 각자 차를 타고 그 지점에서 만났다. 둘이서 순찰을 돌다가 우연하게 길쭉한 뼈 두 조각을 발견했다.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뼈는 줄넘기에 묶여 있었다. 사람 뼈인지 동물 뼈인지 모른다. 나는 다른 할 일이 많아서 거길 바로 벗어났다. 그 뒤엔 어떻게 됐는지 전혀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B 씨가 누군가에게 무전을 하는 건 봤지만 무슨 내용인지 못 들었다. 경찰에 그렇게 진술한 적도 없는데 삽 가져오라고 했다는 보도가 왜 나왔는지 알 길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경기남부경찰청 관계자는 방범대장 A 씨의 진술을 녹음하거나 녹화했느냐는 질문에 “수사 상황에 대해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답했다.
#“삽 가져와라”라고 한 인물은 과연 누구?
수사 관계자 C 씨는 “당시 태안파출소장 D 씨가 평소에 자기가 김 양의 유골을 묻었다는 얘길 하고 다녔다. 방범대장 A 씨가 순찰 중에 김 양의 손목뼈를 발견하고 D 씨에게 연락하자 D 씨가 ‘삽 하나 가져와라’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형사계장 B 씨가 아닌 태안파출소장 D 씨와 방범대장 A 씨가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 인물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당시 태안파출소장 D 씨는 “삽 가져오라는 무전을 한 적은 있지만 김 양의 사건 때가 아닌 다른 사건에서 한 무전이다. 무전을 받은 의경이 기억에 혼선이 온 것 같다”며 “기분이 나쁘다. 가시나무에 걸린 김 양의 속옷과 가방을 내가 발견하긴 했지만 김 양의 손목뼈를 본 적은 없다”고 답했다. D 씨는 일요신문과 통화한 다음 날인 2월 7일 방범대장 A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 확인됐다.
김 양의 유류품이 발견된 건 1989년 12월 19일이었다. 경찰 기록에 따르면 이틀 뒤인 12월 21일 김 양의 손목뼈가 발견됐다.
#“형사계장 B 씨가 김 양 제사를 지냈다”는 증언도
형사계장 B 씨가 김 양의 제사를 지냈다는 증언도 나왔다.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였던 E 씨는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형사계장이 김 양 제사를 지내는 걸 직접 보진 못했지만 들어서 알고 있다. 당시 쉬쉬하면서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는 화성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화성에서 공인중개사를 30년 넘게 해온 F 씨는 “형사계장에게 직접 듣진 못했지만 전해 들어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형사계장 B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경로로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B 씨는 2019년 12월 자신이 다니던 골프 연습장에 찾아온 MBC 기자에게 “얘기나 마나 나는 모른다니까. 몰라요, 나는. 나는 모른다니까”라고 말했다.
#“처벌 원하는 게 아니다. 동생 묻힌 위치라도 말해줬으면”
피해자 김 양 가족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김 양이 실종됐다고 믿고 살았다. 경찰에게 들은 김 양에 대한 소식은 없었다. 초기 5년 동안 김 양의 가족은 사방팔방 김 양을 찾아다녔다. MBC 실종 아동 찾기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했다.
2019년 11월 경찰의 김 양 수색 작업 현장에 놓인 꽃. 김 양의 오빠는 동생이 묻힌 위치만이라도 알고 싶다고 호소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김 양 오빠인 김 아무개 씨는 “MBC를 통해 전국에 방송이 나갔을 때도 경찰은 아무 말도 안 해줬다”면서도 “당시 형사들의 처벌을 원하는 게 아니다. 고발을 한 이유는 동생이 묻힌 위치를 알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당시 형사들은 입 다물고 잘 살 거라고 생각했다”며 “그저 동생이 묻힌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아는 걸 더 말해달라는 의도다. 마지막 희망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 씨는 “서울에서 목축업을 하겠다고 내려온 아버지가 자신이 딸을 그렇게 만들었다며 자책을 많이 하고 지냈다”며 “30년도 더 지난 사건이지만 진실을 꼭 알고 싶다”고 전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