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지키기’에서 ‘치고 나가기’로 전환…통합당 선택과 집중 속 대여공세 수위 조절
‘코로나 블랙홀’이 정국을 덮치면서 총선 정국도 시계 제로에 빠졌다. 예비후보들의 선거운동은 사실상 올스톱됐다. 대면 선거운동 대신 유튜브 등 사이버 대전이 총선 변수로 격상했다. 특히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총선 투표율에 초비상이 걸리면서 여야 모두 지지층 결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앞서가던 여당도, 뒤처졌던 야당도 선거전략 변화가 불가피한 셈이다. 향후 한 달 보름, 돌풍과 역풍이 뒤섞인 한 편의 반전 드라마가 시작된다.
이해찬 대표가 2월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해찬발 선거전략 시프트의 핵심은 ‘치고 나가는 선거’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민주당 전략은 ‘지키는 선거’에 방점을 찍었다. 그간 당 내부에선 큰 실수만 없다면, 질 수 없는 선거라는 기류가 파다했다. ‘진문(진짜 문재인) 공천’이 밖으로 터져 나오기 전까지 ‘기승전 안정’에 방점을 찍었다. 친노(친노무현)계 좌장 이해찬 대표, 친문(친문재인)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최재성 의원의 삼각 라인이 펼친 인재영입과 공천 과정의 잡음 역시 지키는 선거가 낳은 부작용이다.
“5∼6%포인트는 줄어든 것 같다.” 여권 관계자의 얘기다. 코로나19 사태 전 10%포인트 격차를 벌렸던 수도권 한 지역구의 최근 여론조사를 돌려보니, 미래통합당 후보 추격세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 지역구의 예비후보는 친문계 현역 의원이다.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통합당 출범과 코로나19 사태, 당 공천 잡음 등이 한데 섞인 결과였다. 민주당 지지층을 형성했던 중도·무당층은 이탈한 반면, 숨죽이던 ‘샤이 보수(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는 보수 유권자)’는 통합당 출범 이후 깨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지역구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 일각에선 “이러다가 제1당을 뺏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파다하다. 20년 집권을 외쳤던 민주당이 총선 국면에서 맞닥뜨린 첫 번째 위기인 셈이다. 이에 민주당 일부 예비후보들은 ‘문재인 마케팅’보다는 바닥 민심을 훑는 ‘저인망식 선거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2연승(19∼20대 총선)을 하는 데 기여한 전략이다. 정세균 의원실에서 몸담았던 한 보좌관은 “저인망식 선거운동은 20대 총선 당시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주자로 꼽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이긴 결정타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예비후보들이 제아무리 저인망식 선거운동을 펼쳐도 중앙당에서 소위 ‘사고’를 치면 말짱 도루묵이다. 2012년 19대 총선 막판 중도층 표심을 갉아먹었던 ‘김용민 사태’가 대표적이다. 서울 노원갑 야권 단일후보였던 김용민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는 과거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을 두고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결국 자진 사퇴했다. 민주당(127석)도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152석)에 과반을 내줬다.
코로나 정국에서도 ‘설화 리스크’는 어김없이 발발했다. 홍익표 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이 2월 26일 대구·경북(TK)을 방문하기 직전 ‘TK 최대 봉쇄’를 언급, 파장이 일었다. 홍 전 수석대변인은 구설 하루 만에 사퇴했지만, 이재정 대변인은 당 의원 단체 채팅방에서 “봉쇄라는 표현은 전혀 없었다”면서 “언론이 잘못 쓴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이해찬 지도부의 ‘임미리 칼럼 고발’ 사태와 ‘진문 공천’ 논란 역시 중도층 이탈을 부르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이해찬 역할론’이다. 핵심은 이 대표의 ‘전방 배치냐, 후방 배치냐’로 요약된다. 이 대표 효용 가치는 강대강 국면에서 스피커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가 ‘제1당이 되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고 하자, “대선 불복”이라고 맞받아친 게 대표적이다. ‘TK 최대 봉쇄’ 설화를 일으킨 홍 전 수석대변인을 겨냥해선 “말 한마디 실수가 코로나 대응 전선에 구멍을 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수세적 선거운동 대신 직진을 택한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이 대표는 당 차원의 공식 사과 대신 묵묵부답으로 일관, 당 안팎에선 “이해찬 리스크가 가장 클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총선 투톱인 ‘이해찬·이낙연’ 중 누구를 전진 배치할지도 관심사다. 강서갑 공천 과정에서 터졌던 ‘조국 대전’이 다시 불거진다면, ‘이해찬 후방배치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 한 보좌관도 “총선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전 후보들이 이낙연 전 국무총리에게 SOS를 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분기점은 당 공천 논란과 함께 문 대통령 지지도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40% 선 유지 여부가 될 전망이다.
황교안 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 선거 전략의 재조정도 변수다. 단순화하면 ‘핵심 지지층의 결집이냐, 중도 외연 확장이냐’로 좁혀진다. 통합당도 마찬가지다. 이는 총선 투표율과 직결한 문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투표율 저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돌입했다. 최근 4번의 총선 투표율은 ‘17대 60.6%→18대 46.1%→19대 54.2%→20대 58.0%’로 집계됐다. 이 중 여당은 투표율이 55% 이상이었던 17대와 20대 총선에서 각각 152석과 123석을 얻으며 승리했다.
반면 통합당은 투표율이 55% 미만이었던 18대와 19대 총선에서 153석(한나라당)과 152석(새누리당)으로 과반 승리를 거뒀다. 이번 총선도 55% 기준으로 여야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키는 ‘집토끼(지지층) 잡기’에 달렸다. 남은 선거 기간에는 검찰 개혁을 비롯한 제2의 조국 대전과 대통령 탄핵 이슈 등 양극단을 달리는 이슈가 난무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여권 위기론을 돌파할 국면전환 카드도 변수다. 일부 지역에서 거대 양당의 격차가 줄어들자, 여당에선 위성정당인 ‘비례 민주당’ 창당에 군불을 때고 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현 미래한국당(통합당 비례대표 정당)의 지지도를 놓고 계산하면, 사실상 제1당 사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례 민주당이 수면 위로 부상한 분기점은 ‘강서갑발 조국 대전’과 ‘코로나19 사태’였다(관련기사 꼼수 따라하다 제 발등 콱? 민주당 비례정당 설립 딜레마).
‘조국 대전’ 역풍에 화들짝 놀란 당 지도부가 강서갑 교통정리를 끝내자, 여권 내부에선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는 요청이 빗발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24일과 25일 하루 시차를 두고 나온 “민병대들이 비례정당 만드는 건 상상할 수 있다(민병두 의원)”, “반칙 행위를 상대방이 하고 있는데 그대로 당할 수 없다는 의견이 비등할 수밖에 없다(송영길 의원)” 등의 공개 발언도 이 같은 기류 직후 터져 나왔다.
민주당이 치고 나가는 선거로 시프트를 건다면, 통합당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수위 조절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일단 통합당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문재인 책임론’을 전면에 내걸고 정권 심판론 띄우기에 나섰다. 황교안 대표는 문 대통령이 TK를 다녀간 지 이틀 만인 2월 27일 대구행에 몸을 실었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협조하되, 현미경 심사를 통해 총선용 예산은 삭감하겠다는 전략도 세웠다.
하지만 대여 공세 수위를 놓고는 딜레마에 빠졌다. 국가적 위기를 정쟁에 이용한다는 역풍에 휩싸일 수 있어서다. 심재철 원내대표가 민주당 이해찬·이낙연 투톱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한 2월 20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탄핵’을 주장했다가 일주일째 관련 발언을 삼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역풍 우려와 무관치 않다.
다만 통합당 내부에서는 ‘남는 장사를 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20만 명 수준이던 ‘문재인 탄핵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은 여당 발 대구·경북(TK) 최대 봉쇄 발언 이후 이틀 만인 2월 27일 100만 명을 돌파했다. 통합당 의원들이 군불을 지피면, 보수 지지층이 최전방에 나서는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탄핵 역풍은 최대한 피하면서 반문(반문재인) 심리를 통해 정권 심판론을 띄우는, 이른바 ‘일석이조 전략’이다.
통합당 딜레마는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블랙홀’은 총선 이슈 ‘실종 사태’로 이어졌다. 이는 통합당이 내세우고 있는 정권 심판론 등이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한국당으로선 총선 초반 열세였던 구도를 뒤집으려던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이는 ‘총리 대전’에 나선 황 대표도 마찬가지다. 한국당 한 관계자는 “황 대표가 종로 판세를 뒤집지 못하면, 전국적 선거가 어려워진다”고 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