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야구 개막 연기, 프로농구·배구는 일정 강행, “건강 우선” 핸드볼리그 조기 종료
코로나19 확산의 여파는 프로 스포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농구와 배구 등 겨울 스포츠는 무관중 경기로 리그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L
대표적인 실내스포츠인 프로농구(KBL)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월 27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와 부산 KT의 경기에서 KT 소속 2명의 외국인 선수가 모두 본국으로 귀국 의사를 밝혀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이유는 코로나19의 위험이었다. 앞서 지난 26일 앨런 더햄이 KT 측에 계약 파기를 요청했다. 뒤이어 ‘남아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바이런 멀린스도 더햄과 같은 의지를 이튿날 표명했다. 경기를 눈앞에 두고 있던 터라 KT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날 KT는 SK에 20점 이상의 차로 패했다. 전력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가 모두 빠진 KT로선 어쩔 수 없는 패배였다. 이날 패배로 5위였던 순위도 한 계단 하락했다. 6강 플레이오프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KT의 앞날은 알 수 없게 됐다. 고양 오리온스도 외국인 선수 보리스 사보비치가 짐을 싸며 같은 어려움을 겪게 됐다.
반면 SK는 두 명의 외국인 선수가 모두 잔류해 승리를 이끌었다. 그 배경에는 KBL 12년차, 국내 최장수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가 있었다. 헤인즈는 KBL 첫 시즌을 맞은 자밀 워니에게 오랜 한국 생활 경험을 설명하며 다독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상황의 심각성은 다른 종목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농구와 함께 또 하나의 대표적인 겨울 실내스포츠인 배구(V리그)는 일찍부터 무관중 경기 개최를 결정했다. 관중과 응원단의 함성소리는 찾아볼 수 없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목소리만 경기장을 채우고 있다. 중계방송 마이크로 들려오는 코칭스태프의 또렷한 지시에 해설위원이 설명을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K리그(축구)는 2월 29일 예정한 개막을 연기했고, KBO 리그(야구)는 오는 14일부터 일정이 잡혀 있던 시범경기를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감염자 확산을 우려한 일부 구단들의 개막 연기나 시범경기 취소 요청이 있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특히 K리그의 개막 연기 결정은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앞서 지난 2월 중순부터 일부 K리그 구단들은 시즌 일정을 시작했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가 개막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코로나19 확산이 진행 중이었다. 이에 각 경기장에서는 문진표를 작성해야 출입이 가능했고 체온 측정도 이뤄졌다.
지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때 대부분의 축구 팬들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기장을 찾았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리그 개막 날짜가 다가오면서 대구지역에서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 대구 FC 구단에서는 개막전 연기를 요청했고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대구와 포항 스틸러스의 개막전만 먼저 연기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자 결국 전체 개막 일정 연기를 결정했다. 연맹은 긴급이사회를 개최한 후 “국민과 선수단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정부가 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점, 지자체들이 모임이나 행사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는 점 등이 고려됐다”고 발표했다.
경기가 취소된 각 구단들은 감염 방지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직원들을 재택근무 하게 하는가 하면 선수단은 숙소와 훈련장을 제외한 장소 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KBO 리그는 전 구단이 해외 훈련 중이지만 두려움에 떨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무관중경기’로 일정을 강행하는 농구와 배구리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야외스포츠인 축구와 야구도 일정을 연기하는 마당에 오히려 실내스포츠인 농구와 배구가 리그 일정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아예 리그 일정 중단 또는 종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다.
비록 무관중 경기지만 경기장을 찾는 인원은 선수단뿐 아니다. 구단과 각 연맹 관계자, 심판위원, 중계방송사 관계자, 언론사 취재진 등을 포함하면 100명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단 단속에 철저하더라도 외부인을 통한 감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선수들이 경기 전 몸을 풀 때는 마스크를 착용하지만 실제 경기에 임할 때는 마스크를 벗는다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 26일 SK와 KT의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경기 전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코트에서 몸을 풀었지만 경기가 임박하자 마스크를 벗었다. 실내스포츠인 점을 감안하면 감염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셈이다.
KBL 관계자는 “모든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대비를 하고 있다”면서 “하루에도 두세 차례 10개 구단과 연락을 취하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정부와 각 지자체의 조치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경우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리그 전면 중단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리그 중단 없이 무관중 경기를 치르고 있어 상황이 유사한 WKBL(여자프로농구), V리그와도 긴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꿔 말하면 이들 중 한 리그가 중단되면 연쇄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관중과 스포츠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생각하면 선수들 입장에서도 무관중경기는 흥이 날 리 만무하다. 관중의 함성과 응원소리 등이 없으니 진정한 스포츠의 맛을 느끼기도 부족하다. 이 때문에 ‘무관중경기’는 많은 스포츠종목에서 ‘징계’의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KBL과 V리그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실내스포츠인 데다 종종 징계 수단으로 사용되는 무관중경기를 스스로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선수들 입장에서 보면, 아무 잘못도 없는 선수들은 감염 위험이 높은 실내에서 무관중경기라는 ‘징계’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핸드볼코리아리그는 선수 등 관계자의 건강을 고려해 조기에 일정을 마무리했다. 사진=대한핸드볼협회
반면 또 다른 실내스포츠인 핸드볼에서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핸드볼협회에서 운영하는 핸드볼코리아리그는 리그 조기 종료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당초 지난 18일 구단 관계자 회의와 20일 이어진 이사회를 거쳐 남자부와 여자부 각 1라운드씩 축소할 예정이었다.
핸드볼협회 관계자는 “핸드볼이 조기 종료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남녀부 14개 구단 관계자와 감독님들이 적극 동의해주셨기 때문이다. 협회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따라줬다. 물론 일부 팀들은 현재 성적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선수들과 팬들, 관계자들의 건강이 우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지는 다른 프로 종목과 달리 핸드볼은 한 지역에 모든 팀이 모여 일정 기간 리그를 치른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 명의 확진자만 발생하더라도 치명적일 수 있다. 빠른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도 전했다.
당초 리그 축소 계획대로라면 핸드볼리그 남자부의 경우 3월 1일 리그가 종료되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지난 2월 22일을 마지막으로 리그가 막을 내렸다. 경기가 열리던 강원 삼척시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탓이 컸다. 협회 관계자는 “3라운드로 일정을 마무리하려 했지만 삼척지역에 확진자가 발생했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면 리그 구성원들도 감염될 수 있기에 빠르게 리그 종료를 결정했다. 남자부 구단들도 뜻을 함께해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리그 중단과 관련된 발언을 함구하던 KBL 구성원들도 이제는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 2명을 동시에 잃은 서동철 KT 감독은 지난 27일 경기 이후 “내 가족과 우리 선수들은 안전한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애써 덤덤함을 드러내던 헤인즈도 “한국을 떠난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래도 나는 남아서 시즌을 치를 것”이라면서도 “혹시나 KBL 내부에서 확진자가 나온다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