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주춤’ 선거개입·사법농단·조국일가·라임사건 등 여권 승패 따라 수사·재판에 영향
민주당은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연루된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대전 중구에 공천했다. 청와대 ‘하명’으로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을 수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민주당은 공천을 결정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기소됐지만, 멈춰버린 재판들
코로나19로 인해 ‘중요 사건’이 아니면 기일을 잡지 않고 있는 법원. 자연스레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일정이 미뤄졌다. 울산 사건이 법원에 접수된 것은 1월 29일. 벌써 40여 일이 지났지만 재판부는 아직 공판준비기일도 잡지 않았다. 통상 기소 후 2주 내에 공판준비기일을 잡고 본격적인 재판을 위한 증인 선정 등을 하는데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미뤄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부분도 생각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울산 사건 재판이 시작되면 청와대 출신 등 기소된 여권 인사들은 피고인 또는 증인으로 법정에 서야 한다. 또한 공소장에 담기지 않은 구체적인 범죄 혐의와 이에 대해 검찰이 확보한 증거 등도 재판 과정에서 공개될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들이다. 코로나19가 주된 이유겠지만 총선을 앞두고 ‘불필요한 개입 여지’가 있는 재판을 억지로 진행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형사 재판 경험이 많은 판사는 “정치 사건의 경우 재판 진행 과정에서 알려질 부분도 고려한다”며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면, 일방적인 검찰이나 피고인 주장만 나오게 하느니 아예 선거 끝나고 하는 게 더 맞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특히 기소됐지만 공천돼 선거에 나서는 피고인들도 적지 않아, 선거 후 재판 진행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은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 연루된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을 대전 중구에 공천했다. 청와대 ‘하명’으로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을 수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지만, 민주당은 공천을 결정했다. 황 전 청장과 함께 기소된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민주당 전북 익산을에 공천됐다.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핵심 증인으로 출석이 불가피한 임동호 전 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민주당에서 울산 중구 공천을 받았다. 임 전 최고위원의 경우 “불출마 조건으로 한 전 수석 등으로부터 고베 총영사를 제안받았다”고 밝혔다가 “불출마 조건으로 제안 받은 건 아니었다”고 입장을 번복한 바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역시 비례로 국회의원 출마가 점쳐진다. 최 비서관은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였던 2017년 10월, 조 전 장관 아들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 그의 대학원 입시에 도움을 줬다는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됐다. 기소 후에도 청와대 비서관직을 유지하던 그는 기소 2개월여 만인 3월 16일, 돌연 사직의 뜻을 밝혔다. 이를 두고 총선 30일 전, 즉 비례대표에 출마하는 공직자의 사퇴 마감일(지역구 출마는 90일 전)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역시 비례로 국회의원 출마가 점쳐진다. 사진=최준필 기자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자연인으로 재판을 받는 것과 국회의원의 돼서 재판을 받는 것은 진행하는 입장에서도 다른 무게감이 있다. 선거 결과가 난 뒤 재판의 진행 속도와 방향을 설정하는 게 판사 입장에서도 편하다”면서도 “코로나19가 선거 직전에 맞물려 확산된 게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럽게 재판을 선거 후로 연기한 모양새가 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도 영향 미칠 것”
거꾸로 진행 중인 재판은 다시 공판이 시작된 상황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및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재판은 공판이 열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처럼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도 4·15 선거 결과는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과 관련된 한 법원 관계자는 “선거에서 여당이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서 재판 결과도 50% 이상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그는 “유무죄가 바뀌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양형 등에서는 충분히 바뀔 여지가 있다. 특히 법원이 판사들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재판이기 때문에 선거 결과가 재판장들에게는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보석을 결정한 데 이어 핵심 쟁점인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성립 여부에 대해 구체적으로 따져보겠다고 나섰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러면서 검찰 측에 “재판 사무에 관한 사법행정권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내용이 무엇인지 밝혀 달라. 또 법원행정처 차장과 기획조정실장에게 재판사무에 대한 직무감독권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 밝혀 달라”고 요구했다. 앞서 임 전 차장의 보석을 결정한 데 이어, 검찰 측의 기소 내용에 대해 ‘직권 남용 존재 여부’부터 따지겠다는 것이다.
법원의 다른 관계자는 “법원은 독립된 삼권 중 하나지만, 민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최근 잇따라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대해서 무죄가 나고 대법원도 직권남용을 엄격히 봐야 한다는 기준을 정립하면서 법원 내 분위기도 조금 변했다. 아마 선거에서 여당이 완승을 거두지 않는 한 재판부도 더더욱 법을 바탕으로 소신 있게 판단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분위기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현재 라임자산운용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 외에는 ‘검찰이 거의 쉬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라임 사건 확대 여부도 선거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대검찰청은 투자손실 규모가 1조 원을 넘어가는 등 피해가 크다며 수사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고 보고 추미애 장관이 이끄는 법무부에 추가 파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이를 거절했다. 수사 초반이고 다른 검찰청도 사정이 어려운 만큼 수사 경과를 좀 더 지켜본 뒤 파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 역시, 선거를 앞두고 ‘청와대’를 겨눈 라임 사건이 가진 파급력 때문이라는 평이다. 청와대에 파견으로 근무하던 경제수석실 행정관(현재는 금융감독원 복귀)이 라임 사건 관련 정보를 빼내거나 무마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의혹이 투자 피해자들로부터 제기됐다. 청와대 측에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윤석열 검찰총장은 “확실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관련 녹취록 등을 분석 중인 상황이지만, 선거 결과에 따라 청와대를 향한 대대적인 수사 확대 가능성도 점쳐진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결국 재판도, 수사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거나 설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선거에서 여당이나 청와대가 ‘이겼다’고 볼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윤석열 총장의 검찰은 더더욱 기세를 몰아 수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