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 출신 글쓰기 재능 “외모·학벌 콤플렉스 보여”…낮엔 자원봉사, 밤엔 성착취 ‘두 얼굴’
3월 25일 아침 검찰로 송치돼 종로경찰서를 나서며 취재진 앞에선 조주빈이 스스로를 ‘악마’에 빗대 화제가 됐다. 그렇지만 옳지 않은 표현이다.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하루 전인 3월 24일 긴급지침을 발표하며 기사에서 ‘짐승’ ‘악마’ 등의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표현이 가해 행위를 축소하거나 가해자를 비정상적 존재로 타자화해 예외적 사건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조주빈은 악마가 아니다. 20대 청년 범죄자 조주빈일 뿐이다. 그가 ‘박사’임을 몰랐다면 우리도 평범한 이웃으로 알고 지냈을 터다. 과연 그는 지금껏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주변에서 본 조주빈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3월 25일 아침 검찰로 송치되면서 취재진 앞에선 조주빈. 사진=고성준 기자
우선 가정환경부터 살펴보면 어머니 없이 아버지, 누나와 함께 살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봉사단체 관계자는 MBN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일찍 집을 나갔대요. 중학교 전으로 들은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학창 시절 조주빈은 밝은 성격의 학생이었다고 한다. 인천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조주빈은 고교 시절 교사나 친구들과 원만한 관계였다고 한다. 조주빈의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은 MBN과의 인터뷰에서 “학교에서 운영하는 봉사나 교육에 잘 참여했다”며 “결석은 한 번도 없어 3년 개근할 정도로 착실한 학생이었다”고 조주빈을 회상했다.
온라인에서는 조주빈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이가 한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됐었다. 글을 올린 동창은 “인간관계는 평범했고 말이 많았다”면서 “활발하고 농담 잘하던 애라 친구들도 그럭저럭 많았다”고 밝혔다. 조주빈과 동창이라고 밝힌 또 다른 네티즌은 “조주빈은 친구고 많고 말도 진짜 많던 놈이었다”면서 “수학여행 때 다른 애한테 말로 까불다가 맞고 이 부러진 적이 있다. 기사에서는 평소 조용한 애였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시끄러운 애였다”는 글을 남겼다.
그렇지만 고교 시절 친구들과의 인연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 같지는 않다. 조주빈의 고등학교 담임교사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졸업 후 조주빈과 연락하는 반 친구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고교 시절 온라인에서 성폭력·음란물 상담사로 활동
고교 시절 말 많고 교우관계도 왕성했던 것으로 알려진 조주빈에게는 또 다른 모습도 있었다. 바로 ‘온라인 상담사’다. 중학교 2학년(2009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2013년)까지 네이버 지식인 코너에서 성폭력·음란물 상담을 해온 것이다. 연애 상담까지 해주는 등 무려 478개의 조언 글을 달았다.
‘음란물 다운로드 처벌 여부’를 묻는 글에 “아동·청소년 음란물만 아니면 된다”라고 조언한 그는 ‘미성년 음란물을 다운 받아 걱정된다’는 글에선 “단속에 걸리면 잡혀갑니다. 그래도 걸릴 확률 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성추행’을 당한 것 같다는 고민엔 “믿을 만한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 답변했는데 친인척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에선 친인척 간 성폭행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언급한 뒤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한다”고 답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조주빈의 고교 동창이라고 밝히며 글을 올린 이들은 그를 “활발하고 농담 잘하던 애” “말 진짜 많던 놈” “우리 반에서 가장 시끄러운 애” 등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심지어 ‘당사자 허락 없이 SNS에 사진을 올리는 행위가 처벌 대상인지’를 묻는 질문에 “도용해서 올리거나 비방 목적으로 올려서 명예를 실추시켰다면 가능하다”며 “요청해도 내리지 않는다면 고소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여성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한 뒤 성관계를 가진 사람을 신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여성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라면 신고 가능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런 답변 글을 남기던 고교생이 훗날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핵심인 ‘박사’가 된 것이다.
#일베 회원? 정치 성향 두고도 논란 가열
조주빈의 고교 동창들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린 글에서 가장 강조한 대목은 그가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 회원이었다는 점이다. 한 동창은 “조주빈은 일베가 맞다”며 “일베하는 애들끼리 반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애들을 찾아가 ‘김대중 노무현 개XX 해봐’ ‘말 못 하면 좌X 홍어 빨X이’라며 놀리고 다녔다. 2012년에 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조주빈 동창이면 조주빈이 일베인 걸 모를 수가 없다. 평소에 전라도 욕하고 다니던 놈이 일베가 아니면 뭐냐”고 주장했다. 조주빈의 졸업앨범 사진을 함께 게재했던 이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또 다른 동창이라고 밝힌 네티즌 역시 “걔 일베충이었다. 내가 그래서 싫어했다”고 언급했다.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된 이후 온라인에서는 그가 일베라는 증거를 찾아내는 네티즌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조주빈이 학보사 시절 사용한 바이라인의 이메일을 일베 회원정보 찾기 시스템에 입력했더니 같은 이메일 주소를 쓰는 회원이 확인됐다”며 인증 사진을 게시했다.
조주빈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다. 조주빈과 함께 군복무를 했던 이를 인터뷰한 중앙일보는 조주빈이 일베 회원으로 알려졌지만, 군 복무 시절엔 일베를 혐오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또한 조주빈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 때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를 일베로 보기 힘들다는 주장도 있다.
2014년 조주빈은 인하공전 정보통신과에 입학해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편집국장까지 지냈다. 조주빈의 주민등록 사진이다. 사진=서울지방경찰청 제공
2014년 조주빈은 인하공전 정보통신학과에 입학한다. 대학 시절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가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편집국장까지 지냈다는 것이다. 조주빈은 학보에 학내 성폭행 예방 관련 기사를 작성했으며 교내 성교육 강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조주빈은 교내 독후감 대회에서도 1등을 했는데 그만큼 글쓰기에 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학보사 후배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주장이 강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막무가내 같은 느낌”이라고 조주빈을 기억했다. 학보사 편집국장 자리는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보직 해임됐는데 교수의 검토나 승인 없이 무단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학 성적은 우수했다. 평균 학점이 4.0을 넘어 장학금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6년 조주빈은 군에 입대해 강원도 양구 소재의 육군 보병부대에서 복무했다. 당시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이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조주빈이 군 시절 책을 많이 읽었다”고 밝혔다. 특히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위대한 개츠비’의 저자 스콧 피츠제럴드의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책만큼이나 컴퓨터도 좋아해 ‘사이버 지식 정보방(사지방)’에 있는 시간도 많아 ‘사지방 죽돌이’로 불렸을 정도라고 한다. 사지방은 군부대에 설치된 PC방을 일컫는 말이다. 또 “외모와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한 것 같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봉사활동 활발…장애인지원팀장까지
군에서 전역한 직후인 2017년 10월부터 조주빈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3월까지 인천 계양구 소재의 자원봉사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 그는 1년 정도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지난해 3월부터 다시 그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2018년 2월 대학을 졸업한 직후 봉사활동을 1년 정도 중단했던 것인데 그 기간 조주빈은 키를 늘리는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주빈이 활동을 한 자원봉사 단체는 위기 아동과 청소년, 다문화 가정,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 계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조주빈은 당시 장애인지원팀장을 맡았다. 재활원, 보육원, 요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조주빈은 지난해 11월 한 보육원에서 열린 운동회에도 참여했다. 그 모습이 한 매체를 통해 보도됐는데 당시 인터뷰에서 조주빈은 “여러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다 군 전역 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며 “웃고 떠들며 부대끼다 보니 어느새 봉사자와 수혜자가 아닌 형과 동생, 오빠와 동생이 되어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군에서 전역한 직후인 2017년 10월부터 조주빈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3월까지 인천 계양구 소재의 한 자원봉사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 그는 1년 정도 연락을 끊고 지내다가 지난해 3월부터 다시 그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사진=자원봉사 단체 홈페이지
당연히 조주빈과 함께 활동했던 자원봉사 단체 관계자들은 그가 ‘박사’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다만 1년 정도의 공백기를 거친 뒤 지난해 3월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다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는 반응도 있었다. 경찰 추정 조주빈의 텔레그램 성착취 범행이 시작된 것은 2018년 12월이다. 결국 자원봉사 단체를 떠나 있던 1년 동안 조주빈은 키를 늘리는 수술로 외모(키)가 달라졌으며 비밀리에 텔레그램 ‘박사’ 계정의 운영자가 돼 본격적인 범죄의 길을 걷기 시작한 셈이다.
여기까지가 주변 사람들이 아는 조주빈의 평소 모습이다. 그렇지만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핵심 인물로 ‘박사방’을 운영한 ‘박사’ 조주빈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그는 부정하게 모은 개인정보와 사생활을 협박 수단으로 사용해 피해 여성들에게 음란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했다. “이것만 하면 탈출시켜 주겠다”고 마지막의 마지막을 약속하며 피해자들을 괴롭혔다.
조주빈과 직접 접촉한 경험이 있는 디지털 장의사업체 이지컴즈의 박형진 대표는 3월 2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의심이 많고 성격이 급했다”며 “욕설을 많이 했고 일베 용어도 많이 썼다”고 말했다. 또 “텔레그램 안에서 자신을 정말 독보적인 신 같은 존재로 생각하더라. 자부심이 많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박사’ 조주빈과 ‘n번방’ 운영자 갓갓이 올해 1월 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는 더욱 참담하다(관련기사 [단독] 조주빈 vs 갓갓, 대화방서 ‘누가 더 대단한가’ 대결 펼쳤다).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해 조주빈은 “여자는 돈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피해 여성들을 노예라 불렀고 “정상적이고 도도할 것 같은 애들이 박살날 때의 쾌감을,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환호할 때 나는 느낀다”고 말했다. 또 “갓갓은 가학에만 빠져 있다”며 “나는 과거에는 아티스트였으나 현재는 상업을 추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경찰에 잡힐 수가 없다”고 단언했던 그는 결국 경찰에 체포돼 구속됐으며 3월 25일 검찰로 송치됐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다 아는 박사의 협박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이제는 조주빈이 반대로 신상공개 대상이 됐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