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연봉삭감 소식에 KBO 술렁…모기업 지원 줄면 FA 찬바람 불가피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세계 모든 스포츠가 사실상 ‘올 스톱’ 상태다. 심지어 2020 도쿄올림픽이 연기되는 일이 벌어졌다. 올림픽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고 4년을 준비해 온 각국, 각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코로나19 여파로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취소되고 개막이 연기되면서 선수들의 훈련만 이어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집단 감염 위험성이 점점 커지면서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조기 종료를 결정하는 아픔을 겪었고,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도 출범 이후 처음으로 개막을 늦추기로 했다. 사태가 얼마나 장기화할지 알 수 없어 아직 정확한 개막 날짜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이뿐만 아니다.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NC 다이노스, 롯데 자이언츠, 키움 히어로즈 등에서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보이는 선수가 나오면서 발견 당일 훈련을 즉시 중단하고 다음날 훈련까지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장 3월 27일에도 한화 이글스 2군 선수 한 명이 발열 증세를 보여 구단이 즉시 서산 전용 훈련장을 전면 폐쇄하기도 했다. 그 선수들 가운데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으로 여겨질 정도.
야구계는 숨죽인 채 이 같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19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선수단과 팬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라는 데에 모두 뜻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리그와 야구단을 운영해야 하는 KBO와 구단 프런트 입장에선 중계권료, 관중 수입, 선수단 연봉을 비롯한 산업·경제적 측면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다. 국내 프로스포츠 시장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인기가 높은 야구는 리그 중단 시기가 길어질수록 손해가 더 막대해질 수밖에 없다.
#경기 수가 축소되면 메이저리그는 연봉을 깎는다?
최근에는 각자 기약 없는 팀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을 잠시 술렁이게 한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역시 개막을 연기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연봉 지급 유예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KBO와 연봉 지급 체계가 다른 메이저리그는 개막 이전까지 월급을 주지 않고, 개막 이후 캠프 기간의 연봉을 소급해 함께 지급한다. 최악의 경우 리그 일정이 축소된다면, 연봉 지급이 너무 늦어지거나 연봉이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국가 비상사태에는 선수 연봉 지급을 중지할 수 있다”고 했다. 향후 선수 노동조합과 본격적인 갈등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이번 사태와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1995년 선수 노조 파업으로 경기 수가 축소되자 단축된 기간만큼 전 선수의 연봉이 줄어든 사례도 있다.
선수들의 불안은 여기서 발생했다. 메이저리그의 이 같은 움직임이 KBO 리그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현재로선 개막일이 뒤로 밀렸을 뿐 경기수 축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어서다. 8월 중순 열릴 예정이던 도쿄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올림픽 기간에 리그를 중단해야 할 필요가 없어진 점도 144경기를 모두 소화하는 데 호재로 작용한다.
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는 한 베테랑 선수는 “선수들이 자의로 개막을 연기한 것도 아니고, 모두 그 누구보다 경기에 뛰고 싶지만 사회적인 재난 사태와 건강의 중요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리그를 시작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라며 “혹시 경기 수가 축소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원하거나 요구한 일이 아니었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어서 연봉은 원래 계약서대로 받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로야구 경기 수 축소 시 옵션 축소 등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KBO 관계자는 “일정이 확정된 뒤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KBO 이사회 현장. 사진=연합뉴스
#KBO 리그 실무자들, “연봉은 어떤 상황이든 정상 지급” 한목소리
2020년 야구 규약 제9장 연봉 72조 ‘연봉의 지급’을 보면, ‘구단은 연봉을 10회로 분할하여 참가활동기간(2~11월) 동안 매월 1회 일정한 날을 정하여 월별로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제 73조 ‘연봉의 증액 및 감액의 규정’에 부상과 질병, 사고 등으로 인한 감액과 관련해 상세히 규정하고 있지만, 외부 요소로 인해 경기가 열리지 않았을 경우에 연봉을 감액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이에 따라 각 구단은 2월과 3월 연봉 지급을 이미 마쳤다.
물론 일부 야구 관계자들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여기서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향후 충분히 고민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144경기가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못하면 중계권 수입과 관중 수입, 마케팅 수입이 모두 축소돼 구단 살림살이가 어려워질 것이 불 보듯 뻔해서다.
그럼에도 대부분 구단 단장 및 실무진의 생각은 또 다르다. KBO 규약에 따라 코로나19 사태로 경기수 축소 혹은 리그 중단이 결정되더라도 규약상 연봉 지급은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기 개최 여부와 관계없이 선수단은 이미 스프링캠프를 마쳤고, 개막에 대비해 팀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하면서 야구장에 ‘출근’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사안이고, 선수들이 경기 개최 혹은 출장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는 점도 이 같은 생각을 뒷받침한다.
A 구단 단장은 “KBO 규약상 (어떤 상황에서도) 월급은 정상적으로 지급하게 돼 있다”고 했다. B 구단 단장도 “올 시즌 연봉은 규정상 정상 지급될 것”이라고 했고, C 구단 단장 역시 “계약서에 보장된 부분”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또 D 구단 운영팀장은 “메이저리그에는 삭감과 관련한 규정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우리는 (관련 규정이) 따로 없어서 정상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고, E 구단 운영팀장도 “정상 지급은 연봉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못박았다.
다만 각 구단 단장들과 운영팀장들 대부분은 “구단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다. KBO의 결정이 필요하다”는 단서를 붙였다. C 단장은 “누구도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만일 리그 일정의 약 3분의 1만 소화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법률적 검토 및 선수협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수입이 대폭 줄어들면 구단 재정도 너무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D 팀장은 “연봉 축소는 구단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협의, 또는 강제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KBO에서 정리할 부분이다”고 강조했다.
#경기수 축소→선수 옵션 축소? 엇갈리는 찬반
연봉 외에도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일부 프리에이전트(FA) 계약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들이 맺은 인센티브(옵션) 계약이다. 보통 야수는 출장 경기 수와 타석 수, 안타 수와 홈런 수 등이 주요 지표로 활용된다. 투수는 출장 경기 수 혹은 투구 이닝, 승 수, 평균자책점 등에 따라 보장 연봉 외의 보너스를 받는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평균 수치를 집계하는 타율이나 평균자책점은 경기수 축소에 큰 영향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유리할 수 있지만, 나머지 기록은 경기 수가 줄어들수록 계약상 기준을 달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와 관련해선 각 구단의 입장이 다소 엇갈렸다. A 단장은 “경기수 축소가 확정되면 그때 가서 (인센티브 조항이 있는 각 선수들과)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고, B 단장도 “선수나 담당 에이전트가 ‘경기수 축소로 기록 달성이 어려워졌으니 재고해달라’는 요청을 하면 그때 고려해보겠다”며 유보적 자세를 취했다.
반면 C 단장은 “경기수 축소가 이뤄져도 인센티브 계약을 바꿀 수는 없다. 같은 문제로 구단 상황도 어려워지긴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D 팀장 역시 “인센티브 계약은 대부분 고액 연봉자들에게 적용된다.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경기 수가 적게 열린다고 계약 내용을 바꿔 기존과 비슷한 돈을 받아 간다면 팬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있다”며 “법적 분쟁 여지가 있겠지만, 경기수 축소가 구단의 귀책사유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인센티브 계약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KBO 입장은 정규시즌 개막일과 향후 일정이 확정된 뒤 모든 것을 상세히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다. KBO 고위 관계자는 “개막이 지연되면서 발생한 다양한 사안에 대해 여전히 여러 각도로 대안을 검토해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금전적인 문제는 섣불리 결정하면 큰 혼란을 끼칠 수 있는 부분이다. 입장이나 결정을 유보하고 추후 일정이 확정된 뒤 판단해야 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구단 운영에 미치는 악영향
KBO 리그는 키움 히어로즈를 제외한 9개 구단이 거대 모기업의 지원을 근간으로 운영된다. 구단별로 차이는 있지만 매년 평균 150억~200억 원의 지원을 받고, 이 돈이 각 구단 1년 수익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세계 경제가 심각하게 요동치면서 국내 대기업들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이번 사태로 모기업 의존도가 높은 각 구단들의 자생력에도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일부 관계자들은 “야구단 존립의 문제가 걸려 있는 시기”라고 표현할 정도다.
당장 다음 시즌부터 모기업이 야구단 지원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 A 단장은 “내년부터 모기업의 지원이 감소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며 “KBO 리그는 모기업의 지원 없이 수익을 내거나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고 했다. B 단장도 “세계 경제가 점점 불확실한 방향으로 접어들고 있다. 앞으로 더 가혹할 것 같다”며 “모기업에서 구단 경영 효율화를 강조하며, 지원을 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C 운영팀장도 “모기업의 경영 상황을 고려하면, 야구단 지원과 광고가 줄어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라고 점쳤다.
여기에 각 구단이 자체적으로 벌어들이는 돈까지 줄어들 위기다. 리그 개시 시점과 향후 경기수 축소 여부에 따라 중계권료와 입장 수익, 마케팅을 비롯한 기타 관련 수입이 모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무관중 경기를 하느니 차라리 경기 수를 줄여 달라”는 현장이나 야구팬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KBO와 각 구단이 경기수 축소를 결사반대하는 이유다.
이미 일부 구단은 경제적 리크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를 시작했다. A 단장은 “경기 수가 줄어들 경우 올해 구단 수익과 재정이 얼마나 줄어들지 여러 상황을 고려해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다. 결국 광고와 중계권 수익에서 가장 큰 손해가 나더라”며 “이 수익이 줄어들면 내년부터 긴축 경영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것이고, 끝내는 구단 존립 문제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B 단장 역시 “(게임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NC 다이노스를 제외하면 야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모기업들의 경영 상태가 향후 1~2년간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C 운영팀장은 “모기업 경영이 흔들리는 구단은 더 타격이 클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갈등은 현실이 될까
그런 상황이 오면 결국 선수단 지원과 관련된 비용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매년 각 구단이 선수 연봉으로 쓰는 돈을 고려하면, 선수단 규모 자체를 줄이는 게 1순위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즌이 끝난 뒤 방출당하는 선수들이 그만큼 많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을 먼저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또 2월 해외 스프링캠프를 떠날 수 있는 선수단 규모 역시 연쇄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구단들이 최대한 많은 선수를 캠프에 데려가 숨은 진주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면, 이제는 출발 전부터 해외 캠프에 참가해도 될 만한 즉시 전력감 선수들을 최소한으로 추리느라 골머리를 앓게 될 듯하다.
B 단장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구단의 1년 예산 중 선수단 관련 항목이 약 70%다. 지출을 줄인다면 선수단 관련 예산밖에 없다”고 했고, C 운영팀장도 “운영비의 나머지에 해당하는 약 30%는 대부분 (무조건 써야만 하는) 고정비용이다”며 “이 부분을 줄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연봉 협상 갈등이 내년 초 KBO 리그에서 재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C 운영팀장은 “극 중에서 구단주대행이 새 단장에게 전체 선수단 연봉 총액의 30% 삭감을 지시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때만 해도 30%는 너무 과장된 수치라고 생각했다”며 “대부분 구단도 연봉 협상을 시작하기 전, 전체 총액에서 일정폭의 인상 혹은 감액 범위를 정해놓는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 초에는 전체의 10%, 나아가 20% 삭감 방침까지 내려올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걱정했다.
FA 시장도 다르지 않다. 첫 해인 2000년 총액 24억 2500만 원으로 출발한 FA 시장은 2013년 242억 6000만 원, 2014년 523억 5000만 원으로 몸집을 불린 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700억 원을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대어급 선수가 점점 줄고 준척급 선수들의 이적이 어려워지면서 2018년 631억 500만 원, 2019년 492억 원, 올해 395억 2000만 원으로 가파르게 규모가 감소했다.
우승을 노리던 일부 구단들이 한때 과열 경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풀면서 FA 몸값이 치솟았지만, 이후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많은 팀이 동시에 내부 유망주 육성 기조로 방향을 전환했다. 코로나19는 이런 FA 시장의 하락세에 더 가속도를 붙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올 시즌이 끝난 뒤에는 주전급 FA들이 지난 2년보다 훨씬 많이 쏟아져 나올 예정이라 더 관심이 쏠린다. B 단장은 “구단 운영비 절감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고액 FA 영입에 대한 부담은 당연히 더 크다”며 “아마도 내년 FA 시장은 ‘역대급’ 찬바람이 불고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하는,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조심스레 예측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