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부 강한 의지에도 “총선 후엔 머릿수가 권력인데…” 시선
총선이 다가온 가운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무소속 당선자들의 복당 불허’ 방침을 밝혔다. 사진=박은숙, 박정훈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월 16일 ‘무소속의 난’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표는 “우리 당에서 4·15 총선 출마를 준비하다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무소속 출마할 경우 영구 제명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 발언은 공천 결과에 반발한 뒤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민병두 의원과 문석균 전 경기 의정부갑 지역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민 의원은 서울 동대문을 현역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 동대문을 지역구를 ‘청년 우선 공천지역’으로 선정했다. 그 결과 2017년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정책특보를 역임했던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도시교통특별위원장이 공천을 받았다. 민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지며 공천에 반발했다.
민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지면서 동대문을 선거 판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오히려 지지세가 약했던 이혜훈 미래통합당 후보가 반사이익을 보는 상황이 됐다.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로 ‘지역구 세습 논란’에 휩싸였던 문 전 부위원장은 1월 23일 불출마를 선언한 뒤 3월 12일 입장을 번복했다. 문 전 부위원장은 경기 의정부갑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로 했다. 문 전 부위원장 무소속 출마로 경기 의정부갑 역시 동대문을과 마찬가지로 3파전 양상을 띠게 됐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무소속의 난’이 불러올 후폭풍을 경계하고 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무소속 출마자들에 대한 영구제명을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표 발언을 두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란이 불거졌다. 이 대표 본인이 20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원대복귀한 전력이 있는 까닭이다. 당시 이 대표는 세종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박종준 새누리당 후보와 문흥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꺾고 국회로 컴백했다. 20대 국회에 무소속으로 입성한 이 대표는 집권 여당의 수장으로 임기를 마치게 됐다.
민병두 의원의 무소속 출마로 대혼전 양상에 접어든 동대문을 지역구. 왼쪽부터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혜훈 미래통합당 후보, 민병두 무소속 후보. 사진=연합뉴스
민주당뿐 아니다. 미래통합당 역시 무소속 출마자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래통합당도 무소속의 난을 진압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3월 30일 무소속 당선자 복당 불허 방침을 밝혔다.
황 대표는 “무소속 출마는 국민 명령을 거스르고 문재인 정권을 돕는 해당행위”라면서 “당헌·당규를 개정해서라도 (무소속 당선자의) 입당을 영구히 불허하고, 무소속 출마자를 돕는 당원에게도 해당행위로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경고했다. 황 대표는 3월 23일에도 “무소속 출마는 표를 갈라먹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박형준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황 대표 발언에 힘을 보탰다. 박 위원장은 3월 30일 인천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무조건 복당을 받아주던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면서 “(무소속 당선자 복당 불허 방침은) 당의 윤리적 기준을 바꾸는 혁신임을 분명히 말한다”고 했다.
미래통합당 처지는 민주당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대구 수성을)를 비롯해 김태호 전 경남지사(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권성동 의원(강원 강릉) 윤상현 의원(인천 동·미추홀을) 등 중진들이 공천 결과에 반발해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를 결정했다.
서상기 전 의원(대구 달성)과 조일현 전 의원(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 역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 복귀를 노리는 상황이다.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가 철회한 이정현 무소속 의원도 영등포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황 대표의 ‘복당 불허 방침’과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홍 전 대표는 3월 30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당 대표라는 자리는 종신직이 아니라 파리 목숨”이라면서 “그 선거(종로) 지면 그대도 아웃”이라고 황 대표를 겨냥했다. 그러면서 홍 전 대표는 “탄핵 때 당을 배신하고 나갔던 분들도 모두 복귀하고 공천도 우대받았다”면서 “그것이 정치”라고 했다.
윤상현 의원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래를 위해 통합으로 가자고 해놓고, 싸워서 돌아오겠다는 당원을 막겠다는 것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 의원은 20대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경력이 있다.
무소속 출마자들은 공통적으로 “살아 돌아오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거대 양당이 무소속 출마자들을 향해 강력한 ‘복귀 불가’ 의사를 표명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한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는 “‘돌아오겠다’는 말이 당 지도부의 심기를 건드려 괘씸죄를 적용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월 20일 미래통합당 공천 면접에 참여했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한 미래통합당 당직자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불거진 ‘무소속의 난’ 상황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라고 했다. 그는 “추후 원대복귀 가능성과 관계 없이 당 지도부가 ‘우리가 공천한 후보를 밀어달라’며 강력한 내부 단속 의지를 보였다고 해석하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거대 양당의 ‘무소속 당선자 원대복귀 불허 방침’과 관련해 공허한 메아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한 정치권 인사는 “총선 전에야 무소속 출마자를 강력히 단속할 필요성이 있지만, 총선 후에는 머릿수가 곧 권력이다. 무소속 당선자들이 돌아올 길은 어떻게 해서든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무소속 당선자들이 비례정당에 먼저 입당한 뒤 당대당 합당 과정에서 원대로 복귀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21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는 124명이다. 가장 많은 지역은 영남이다. 영남 지역 무소속 출마자는 44명으로 부산 7명, 대구 10명, 울산 4명, 경북 14명, 경남 9명이다. 호남 지역 무소속 출마자는 23명(광주 5, 전북 10, 전남 8)이다. 수도권 무소속 출마자는 38명으로 서울 18명, 경기도 15명, 인천이 5명이다. 충청권에선 무소속 후보 9명(대전 2, 세종 2, 충북 1, 충남 4)이 출마했다. 강원과 제주 지역에선 각각 7명과 3명의 무소속 출마자가 선거 운동을 진행 중이다.
거대 양당이 아닌 제3지대에서 무소속 출마를 한 현역 의원들도 눈에 띈다. 모두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소속으로 당선된 이들이다. 2019년 8월 민주평화당을 탈당한 김경진(광주 북갑) 정인화(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 이용주(전남 여수갑) 의원은 호남에서 무소속 당선을 노린다. 2월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던 김성식 의원(서울 관악갑)과 김관영 의원(전북 군산) 또한 자신들이 터를 다져놓은 지역구에서 각개전투를 펼치고 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18대 총선에선 25명이나…역대 ‘무소속 각개전투’ 생환자는? 유승민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그간 ‘무소속의 난’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유력 정치인은 누가 있을까. 먼저 20대 총선에선 11명의 무소속 출마자들이 당선을 거머쥐었다. 특히 보수 진영 무소속 출마자의 생환 비율이 높았다.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과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을)이 대구에서 무소속으로 살아 돌아왔다. 인천에선 윤상현(인천 남을) 안상수(인천 중·동·강화·옹진) 의원이 생환했다. 장제원(부산 사상), 이철규(강원 동해·삼척) 의원도 보수 진영의 무소속 생환자들이다. 경북 울주 강길부 의원은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가 바른정당으로 당적을 옮긴 뒤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복잡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강 의원은 2018년 5월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뒤 21대 총선에서 다시 한번 무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20대 총선에서 무소속 당선자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의원은 2명이다. 세종시에서 생환한 이해찬 의원과 대구 북구을에서 당선된 홍의락 의원이었다. 울산 북구에서 당선된 윤종오 전 의원과 울산 동구 김종훈 의원은 선거를 마친 뒤 민중당을 창당했다. 윤 전 의원은 2017년 민중당 창당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았다. 19대 총선에선 무소속 생환자가 3명뿐이었다. 당시 유성엽 의원이 전북 정읍, 박주선 의원이 광주 동구에서 무소속으로 살아남았다. 김한표 의원은 경남 거제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김 의원은 당선 이후 새누리당에 합류해 20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18대 총선은 ‘무소속의 난’이 가장 극심했던 선거였다. 무소속 당선자만 25명이었다. 영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친박 무소속’들의 바람이 거셌던 까닭이다. 무소속 당선자 2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13명이 영남에 기반을 둔 이들이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김세연 미래통합당 의원 역시 18대 총선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이력이 있다. ‘불사조’라 불렸던 이인제 전 의원은 18대 총선에서 충남 논산·계룡·금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최저 득표율(27.67%)로 당선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동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