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포폴’ 에토미데이트, 마약류 아닌 전문의약품…대체 수요 몰려 오남용 심각
2019년 1월 서울 강남의 한 모텔에서 20대 여성이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이후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서울 강남 소재의 한 병원이 아예 문을 닫고 에토미데이트를 불법적으로 투여해주다 적발되기도 했다. 사진 제공=서울 강남경찰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휘성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연예인 한 명이 마약 논란에 휩싸이는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개인의 사정일 뿐이니. 그렇지만 에토미데이트는 다릅니다. 이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몇 년 전 박근혜 정부 청와대를 둘러싸고 에토미데이트가 화제에 올랐을 때도 조마조마했던 연예관계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나마 당시에는 연예계에서 터진 일이 아닌 데다 청와대 관련 뉴스라 어찌어찌 잘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유명 연예인이 상가 화장실에 쓰러져 있고 그 옆에서 에토미데이트가 발견됐으니까요.”
이 같은 얘길 들려준 중견 연예기획사 대표는 프로포폴이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된 이후 연예계가 뒤숭숭했던 시절을 언급했다. 에토미데이트는 이미 프로포폴이 마약류로 지정 직후부터 자주 거론돼 온 약물이다. ‘제2의 우유주사’로 불릴 정도였다.
2011년 프로포폴이 마약류로 지정된 이후 대체 수요가 몰리기 시작한 에토미데이트가 매스컴을 통해 그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2년여 뒤인 2013년이다. 2013년 4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가 프로포폴을 불법 투여한 의료기관 및 상습 투약자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심지어 병원 문을 닫고 1박 2일 동안 프로포폴만 투여해주는 의료기관까지 적발되면서 ‘포폴 데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사건이다. 당시 적발된 한 병원장이 에토미데이트까지 불법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언론이 ‘프로포폴 대용 전신수면마취제’인 이 약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에토미데이트 오남용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프로포폴처럼 마약류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그리고 몇 년 뒤 에토미데이트가 엄청난 화제를 양산한다.
2016년 11월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비아그라, 에토미데이트 등의 약품을 다량 구매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는 2014년 11월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 10밀리리터 용량’ 20개, 이어 2015년 11월 10개를 구입했다. ‘에토미데이트리푸로주’는 에토미데이트의 상품명이다.
당시 청와대는 “에토미데이트는 프로포폴 성분이 전혀 아니”라며 “신속 기관 삽관을 위한 응급 약품으로 의무실장이 항상 휴대하고 다닌다. 초응급상황에서 기관을 삽관할 때 근육 긴장을 푸는 일종의 근육 진정제”라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이미 에토미데이트가 제2의 프로포폴 내지는 제2의 우유주사라 불리고 있었고 의료계에선 프로포폴과 유사한 효과가 있음에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지 않아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거듭되고 있었다. 에토미데이트 역시 마약류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에토미데이트를 마약류가 아닌 전문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있어 외국과의 연계성이 문제가 됐다. 프로포폴 역시 대부분의 국가에서 마약류로 지정하지 않고 있다.
휘성이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기 전 누군가에게 에토미데이트 약물을 구입하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 검정 봉지 안에 에토미데이트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MBN 뉴스 화면 캡처
이후 잠잠해졌던 에토미데이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휘성을 통해 다시 커지고 있다. 연예계에서 에토미데이트를 주목하는 이유는 마약류가 아니어서 은밀히 투약하고 있는 연예인이 꽤 많은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프로포폴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로포폴이 마약류로 지정되면서 상당수의 연예인이 투약을 중단했지만 몇몇은 몰래 투약하다 적발됐다. 이번 이슈 역시 프로포폴 사태와 비슷한 양상을 띨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지배적이다.
의료계에선 더 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에토미데이트 오남용이 연예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프로포폴과 유사한 효과로 인해 접대여성 등 유흥업계 종사자들 가운데에도 암암리에 에토미데이트를 불법 투약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서울 강남의 한 모텔에서 20대 여성이 에토미데이트를 투약한 이후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또한 서울 강남 소재의 한 병원이 아예 문을 닫고 에토미데이트를 불법적으로 투여해주다 적발되기도 했다. ‘포폴 데이’ 등 프로포폴 불법 투여 적발 당시와 유사한 형태다.
게다가 재계 인사들이나 대기업 사주 일가 가운데에도 에토미데이트 불법 투약 혐의로 적발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서울 강남 소재의 병원 관계자들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