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3위’ 내주고 코로나19 사태로 IPO 차질…금융계열사 노조 협의회 출범 등 노사관계도 먹구름
현대카드는 2019년부터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추진해왔다. 그해 연말 현대카드는 IPO를 진행할 주관사로 NH투자증권과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을 선정하며 상장을 본격화했다. 특히 올해는 기업 공시자료 제출이 끝나는 3월 이후 대표 주관사와 향후 IPO의 절차 및 시기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현대카드 제공
지분 변동이 있은 뒤, 현대카드는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하나씩 밟아왔다. 2018년에는 20년 가까이 삼성카드가 독점하던 코스트코와의 제휴카드 계약을 따냈고, 2019년에는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화에 시동을 걸었다. 올해는 3월에 대한항공과 제휴카드도 출시했다. 또 빅데이터 기술을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 분석 툴인 D-Tag를 구축해 AI(인공지능)에 기반한 새로운 고객 맞춤형 시스템도 선보일 계획이다.
문제는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현대카드를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현대카드는 2000년대 초반 등장과 거의 동시에 빅3에 진입했다. 포인트 제도 등 전에 없던 시스템과 슈퍼콘서트 등 ‘정태영식 마케팅’으로 젊은 층의 시선을 사로잡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신선함이 점차 무뎌졌고 KB국민은행을 등에 업은 KB카드가 대대적인 물량공세로 약진을 시작하면서 발밑이 패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2018년 현대카드는 굳건해 보였던 카드업계 3위 자리를 KB카드에 내주고 4위로 내려앉았다.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격차는 조금씩 커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개인·법인카드 신용판매 취급액 기준 신한카드(21.9%), 삼성카드(17.5%), KB국민카드(17.4%)가 1~3위를 차지했다. 현대카드는 15.9%에 그쳤다.
현대카드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는 것은 KB카드의 약진에도 1, 2위인 신한카드와 삼성카드는 기존 점유율을 철옹성처럼 유지하고 있는 반면 현대카드를 비롯한 나머지 카드사들의 점유율이 야금야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간다면 신한·삼성·KB의 빅3 체제가 굳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IPO를 준비하던 현대카드 입장에선 비상이 걸렸다. 자칫하면 기대했던 수준에 못 미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돼서다. 해외 언론들은 현대카드의 기업가치를 대략 20억 달러(약 2조 2000억 원) 안팎으로 평가해왔다. 정태영 부회장의 기대치는 더 높았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미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 인터뷰에 나서 “언론이 보도한 기업 가치보다 아마 더 높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IPO 시기에 대해 “IPO에서 더 높은 가격을 받으려면 2021년까지는 상장을 연기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카드 이용액이 급감하면서 IPO 연기조차 무의미해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1일부터 23일까지 8개 카드사의 개인 신용카드 승인액은 28조 2146억 원으로, 1월 한 달 승인액 51조 3364억 원보다 무려 45%나 감소했다.
특히 확진자가 급증했던 2월 셋째 주 오프라인 승인액은 7조 2686억 원을 기록했다. 2월 둘째 주의 7조 9570억 원보다 8.65%가 감소한 수치다. 온라인 승인액은 8.1% 증가했지만 총 승인액이 오프라인의 4분의 1 수준인 2조 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타격이 크다. 특히 현대카드가 올해 야심차게 출시한 대한항공카드가 해외 항공권 이용 급감으로 사실상 기능정지 상태가 되면서 큰 이익을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카드가 올해 상반기 IPO를 진행한다면 목표 공모가만큼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반기로 상장일정을 미룬다 해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135일 룰에 따라 올해 1분기 실적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공모가 산정에서 여전히 불리하다.
이 와중에 노사관계에도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현대커머셜 노조는 현대차증권과 손을 잡고 ‘현대차그룹 금융계열사 노조 협의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정태영 부회장은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대표이사 부회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협의회는 상반기 안에 출범할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대카드·캐피탈·커머셜 노조는 정태영 부회장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현대차증권과의 연대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9월, 현대카드와 현대커머셜은 올해 2월 각각 노조를 설립했다. 현대차증권은 2014년 4월 노조를 만들어 상대적으로 경험이 많은 편이다. 이들 노조는 설립 당시 사측의 권고사직 강요, 일방적 인사이동, 부당 전출 등 인사 정책과 구조조정, 폐쇄적 조직 문화를 설립 이유로 꼽았다. 이와 함께 경영전략 실패에 관한 책임과 정년 보장, 직장 내 괴롭힘 등도 문제로 지적했다. 하나같이 정 부회장의 리더십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는 사안들이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최근 현대카드에서는 내부와 외부에서 여러 악재가 동시다발로 불거지고 있다. 아마 정태영 부회장으로서는 현대카드 설립 이래 최대 위기가 아닐까 싶다”면서 “특히 오너이면서 동시에 현대차그룹 수십 개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 중 한 명이라는 독특한 지위를 감안하면 시험대에 올랐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