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회장 자녀 소유 물류사 ‘제때’ 일감 증가 예상…빙그레 “물류망 정해진 것 없다”
2007년 12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사진) 장남인 김동환 씨와 장녀 김정화 씨, 차남 김정만 씨가 ‘제때’ 지분을 각각 33.3%씩 인수했다. 사진=빙그레
빙그레가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하면서 빙그레 냉동제품의 물류를 담당하는 회사 ‘제때’에도 시선이 쏠린다. 제때는 2000년대 초반부터 빙그레의 물류대행업무를 맡아왔다. 2007년 12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 장남인 김동환 씨와 장녀 김정화 씨, 차남 김정만 씨가 제때 지분을 각 33.3%씩 인수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빙그레 오너 일가가 인수한 2007년 제때의 매출 324억 원 중 약 90%에 해당하는 290억 원이 빙그레에서 발생했다. 2008년에도 매출 341억 원 중 89.28%인 304억 원을 빙그레에서 거뒀다.
일감 몰아주기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제때는 본죽, 탐앤탐스, 이마트 등 타사와 계약을 늘렸다. 그 결과 제때의 2019년 매출은 2190억 원으로 빙그레 오너 일가가 인수할 당시보다 6배 이상 늘었고, 빙그레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5% 수준으로 줄었다. 다만 2000년대 후반 10%가 넘었던 제때의 영업이익률은 2018년과 2019년 각각 2.18%, 3.16%로 하락했다.
제때가 빙그레 지분 승계의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 않다. 제때는 현재 빙그레 지분 1.99%를 갖고 있다. 향후 제때가 빙그레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김동환→제때→빙그레’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김동환 씨 등 오너 일가가 제때의 규모를 키운 후 지분을 매각하고 그 돈으로 빙그레 지분을 매입하는 방법도 있다.
실제 제때는 2015년 빙그레 자회사였던 창고업체 셀프스토리지를 인수하는 등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제때의 자본총액도 2007년 38억 원에서 2019년 341억 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빙그레 관계자는 제때와 빙그레 지분 승계 연관성에 대해 “지나친 확대 해석”이라고 부인했다.
해태아이스크림 인수 후 물류를 제때가 맡으면 제때의 매출도 상승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19년 3분기 기준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점유율은 롯데제과 29.01%, 빙그레 26.98%, 롯데푸드 15.83%, 해태아이스크림 15.31% 수준이다. 따라서 이번 인수로 빙그레는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빙그레 관계자는 “해태아이스크림의 물류망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했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두 회사가 물류망을 공유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생산 설비를 비롯해 물류와 유통 등을 공유함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며 “수익성 개선의 여지가 컸기 때문에 인수를 한 것으로 해석되며 인수 이후 다방면에서 시너지 발생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빙그레의 아이스크림 시장 점유율은 26.98%, 해태아이스크림은 15.31%다. 이번 인수로 빙그레의 점유율은 40%가 넘을 전망이다. 서울 용산구 크라운해태그룹 본사. 사진=고성준 기자
하지만 최근 아이스크림 시장이 하락세에 있다는 점은 빙그레 입장에서 불안 요소다. 빙그레에 따르면 빙그레의 냉동제품 생산량은 2018년 6만 9516톤(t)에서 2019년 6만 9040t으로 줄었다.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줄면 제때의 매출이 줄어들 뿐 아니라 해태아이스크림을 인수한 빙그레에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올 수 있다.
한유정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아동인구 감소, 소비 행태 변화 등의 이유로 2012년 2조 원에서 2018년 1조 6000억 원으로 크게 감소했다”면서도 “향후 빙그레는 유통 구조 개편 및 빙그레 아이스크림 부문과 중복 비용 제거, 공급 가격 정상화를 통해 손익 정상화에 집중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움직임도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빙그레는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의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되지 않아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다. 현행법상 공시대상기업집단이 아니면 일감 몰아주기로 처벌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과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거래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공정위는 이 조항을 통한 처벌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은 2019년 10월 조찬 간담회에서 “자산규모 5조 원 미만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예전부터 축적한 자료를 바탕으로 부당 내부거래 등을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일감 몰아주기는 엄정 제재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등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대해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호연 회장 장남 김동환 씨는 연세대학교 졸업 후 회계법인 EY한영을 거쳐 2014년 빙그레에 입사해 현재 차장으로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2017년 빙그레 직원 출신 가 아무개 씨와 사내연애 후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