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따 “죄송은 한데, 신상공개는 못해” 공익 강 씨 “범죄와 무관한 가족 피해 억울”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하며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주빈이 3월 25일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조주빈의 모습이 미디어에 처음 공개된 것은 3월 25일이다. 이날 검찰로 송치되는 조주빈이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나오며 포토라인에 섰다. “피해자에게 할 말 없느냐”는 질문을 받은 조주빈은 “손석희 사장, 윤장현 시장, 김웅 기자 등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이라는 표현을 확대 해석하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의 피해 여성들에 대한 사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간의 관심은 손석희 JTBC 사장, 윤장현 전 광주시장, 프리랜서 기자 김웅 등 실명이 거론된 특정 인물에 집중됐다. 박사방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닌 특정 유명 인물들의 실명을 거론한 조주빈의 사과는 언론과 여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빼어난 효과’로 연결됐다. 이런 까닭에 이날 조주빈의 사과 발언이 치밀하게 계산된 행위였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조주빈이 변호사의 입회하에 조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검찰 4차 조사부터다. 그리고 5차 조사가 있던 4월 1일 조주빈의 변호를 맡은 김호제 변호사는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조주빈 외에 ‘부따’ ‘사마귀’ ‘이기야’라는 닉네임을 가진 3명의 ‘박사방’ 관리자가 더 있었다”고 말했다. 박사방을 조주빈이 홀로 운영한 것이 아니라 4명이 공동 운영했다는 주장으로 이는 추후 재판에서 양형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검찰 조사 과정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의리’를 위해 공범의 이름을 끝까지 말하지 않는 ‘조폭’ 등 과거 범죄자의 이미지와는 정반대다. 조주빈의 언급 이후 ‘이기야’와 ‘부따’는 검거됐다. ‘이기야’는 군 복무 중에 군사 경찰에 체포돼 군 검찰로 송치된 육군 일병이며 ‘부따’는 최근 신상이 공개된 19세 강훈이다. 경찰은 ‘사마귀’의 신상도 파악하기 위해 수사 중이다. 그런데 강훈 측은 경찰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지만 박사방을 공동 운영했다는 조주빈의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부인하고 있다. 재판 과정에서 조주빈과 강훈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대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주빈의 증언을 통해 박사방의 공동 운영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부따’ 강훈은 4월 16일 미성년자로는 최초로 실명과 얼굴이 공개됐다.
텔레그램 ‘박사방’ 공동 운영자로 조주빈을 도와 성착취물 제작·유포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된 ‘부따’ 강훈이 4월 17일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그런데 강훈은 경찰의 신상정보 공개 결정에 반발했다. 16일 강훈은 변호인인 강철구 변호사를 통해 신상정보 공개 결정을 취소하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동시에 신상정보 공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지만 기각됐다. 경찰의 신상정보 공개 결정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를 취소하라고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는 더 드물다.
그럼에도 17일 포토라인에 선 강훈은 “죄송하다. 정말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결국 강훈 측의 입장은 ‘죄송하고 사과하지만 신상정보 공개 결정은 취소해 달라’로 정리된다. 여론은 차갑다. 미성년자를 비롯한 여성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빌미로 협박과 강요를 했던 피의자가 자신의 신상정보 공개에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 보호대 때문이지만 분명히 얼굴을 드러낸 조주빈과 달리 강훈은 포토라인에서 계속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감추려 했다. 그러는 사이 온라인에선 이미 강훈이 나온 학교와 학교생활 등의 신상정보와 지인들의 증언과 폭로가 거듭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미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사회복무요원(공익요원) 강 아무개 씨(24)는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이 화제가 됐다.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에게 살해 청탁한 혐의를 받는 강 씨의 2차 공판이 4월 10일 열렸다. 그런데 이날 재판부는 “이런 반성문은 내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언급하며 허탈한 웃음까지 보였다. 피고인이 재판부에 반성문을 내는 것은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양형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다. 그런데 강 씨가 법원에 낸 반성문은 반성보다는 범죄와 무관한 가족 등이 피해를 보고 있어 억울하다는 취지였다고 한다.
이날 재판부는 “‘저만 고통 받으면 그만이지만 범죄와 무관한 가족과 지인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고’가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반성하는 태도를 알리는 것이라면 조금 더 생각하고 쓰는 게 본인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