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감독으로 모두 성공 ‘핸드볼계 돌연변이’…“광명갑 땀으로 적시겠다” 분투 끝 여의도 입성
임오경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최초로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사진=박은숙 기자
임오경 당선자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국가대표로 뽑힌 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감동의 은메달을 획득하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을 탄생시켰다.
1994년 한국체육대학 졸업과 동시에 일본 히로시마 이즈미(현 메이플 레즈)에 입단해 2부 리그에 있던 팀을 1년 만에 1부 리그로 올려놓았고, 만 25세의 나이인 1996년 플레잉 감독 자리에 올랐다. 취임 첫해 우승을 거머쥐면서 히로시마팀에 8번의 우승을 안겼다. 2008년 7월 여성 최초로 서울시청 여자핸드볼팀 창단 감독으로 부임했고, 부임한 지 8년째 되는 해 인천시청을 누르고 정상의 자리에 오르며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는 이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감독이란 타이틀 앞에 ‘여자’, ‘여성’이란 수식어에 책임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가끔은 내가 여자라는 게 싫다. 여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자라서 주목받는 것도 부담스럽다. 코트에서만큼은 남녀가 아닌 감독으로만 평가받기를 원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의견을 내놓으면 여자가 말이 많다고 수군거리고, 심판 판정에 어필하면 잘난 척한다고 손가락질 받는다.”
그는 ‘여자는 안 돼’라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더 철저히 준비하고 이를 악물며 어려운 일들을 이겨냈다고 설명했다.
“난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코트에서의 모습과 코트 밖에서의 모습이 완전 다르다. 코트에선 최대한 집중해서 선수들을 가르치고, 코트 밖에선 선수들 사생활에 터치하지 않았다.”
임 당선자는 은퇴 후 지도자 생활하면서도 자신이 코트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한다.
“꼭 우승이 아니어도 선수로 코트에서 뛰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은퇴 후 사회 속으로 들어가 지도자 생활하면서 잘난 척하고 산다고 해도 그건 잠깐의 기쁨일 뿐이다. 사회에 나와 보니 예상치 못한 힘든 일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후배들이 은퇴한다고 말할 때 강하게 만류한다. 코트에 설 수 있는 행복을 놓지 말라고 하면서.”
임 당선자는 감독 시절 스타 선수에서 감독으로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는 편견을 깨고 악착같이 팀을 이끌었다. 선수 시절부터 편견과 싸워온 그는 독함과 부드러움을 품고 선수들을 이끌며 ‘핸드볼계의 돌연변이’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인재 영입으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당시 ‘낙하산’이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운동선수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며 선거 운동을 해나갔다. “광명을 땀으로 적시겠다. 최고의 도시로 만들겠다”며 새로운 광명 만들기 공약을 세운 그는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한다)’이라는 비판에 맞서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가며 선거 운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계에서는 임오경 당선자의 국회 입성에 다양한 기대를 나타내고 있다. 그가 진정 체육인으로, 체육인다운 의정 활동을 해나갈지, 아니면 정치와 쉽게 타협하며 권력에 야합하는 모습을 보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선수로, 지도자로 인정받았던 그가 국회에서도 인정받는 정치인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