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친환경에 이어 유가 급락에 초비상…미래 먹거리 발굴 숙제
수요 감소와 유가 하락 등으로 인해 정유업계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 현대오일뱅크 충남 대산공장의 제2차 고도화 분해시설 전경.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로 정유업계 직격탄
4월 22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국내 정유 4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정유업계 간담회가 개최됐다. 이번 간담회는 코로나19로 인한 석유 수요 감소, 정제마진 악화 등에 따른 정유업계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유업계는 이날 현 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세제 혜택과 유동성 확보 방안, 원유 재고 처분 방안 등의 지원책을 요구했다. 성윤모 장관은 “위기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정유업계가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치 가능한 지원 수단을 계속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석유수입·판매부과금 및 관세 납부유예(각 90일·2개월) △석유공사 여유 비축시설 임대 △전략비축유 조기·추가 구매 등의 정유업계 지원정책을 발표·추진해 왔다. 이번 간담회 결과에 따라 정부는 △석유공사 비축시설 대여료 한시 인하 △석유관리원 품질검사 수수료 2~3개월 납부유예 △대규모 석유저장시설 개방검사 유예 등을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가 추가 지원 카드까지 꺼낸 것은 정유업계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는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5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4월 21일 계약만기를 하루 앞둔 20일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유가(배럴당 –37달러)를 기록했다. 돈을 얹어주면서 원유를 팔아야 하는 이례적인 현상이다.
국제유가 폭락은 정유사들의 재고 평가손실로 이어진다. 정유사는 원유를 구매하고 정제해서 판매한다. 원유 구매 시점과 판매 시점이 다르다. 2월 50달러대에 들여온 원유를 정제했음에도 구매 가격보다 낮게 팔아야 하는 상황에 손실만 불어나고 있다. 실제로 정유사의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은 한 달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4월 셋째 주 정제마진은 배럴당 마이너스 0.1달러를 기록했다. 3월 셋째 주 마이너스 1.9달러로 하락한 이후 5주 연속 마이너스다. 제품을 생산하면 할수록 적자만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정제마진은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가를 뺀 가격으로 통상 배럴당 손익분기점을 4~5달러로 본다.
#생산 멈췄더니 이젠 저장고 부족
비상이 걸리자 정유업계는 가동률을 낮추거나 공장을 멈추는 방법을 택했다. 현대오일뱅크는 4월 8일부터 5월 22일까지 제2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가동률을 30% 수준으로 낮췄다. SK이노베이션은 공장 가동률을 100%에서 85%로 낮췄다. 여기에 5~6월 예정된 정기보수를 1~2주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에쓰오일, GS칼텍스 역시 정기보수에 들어가고 공장 가동률을 낮췄다. 에쓰오일은 창사 이래 최초로 희망퇴직까지 고려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소비 급감으로 안 팔린 석유를 보관할 여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SK이노베이션은 한국석유공사의 180만 배럴 규모 저장 탱크 2개를 3개월 동안 빌렸다.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도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저장고가 부족해 유조선 임대도 고민해봤지만, 중동 등 산유국에서 이미 임차해서 운임료가 너무 높다”며 “긴급 수출이라는 명목으로 덤핑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1분기 적자폭이 예상치를 크게 웃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증권업계는 정유업계 1분기 영업손실을 3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업계 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간담회에서 나온 지원책 이외에도 추가 지원을 위해 방법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 바람에 미래 먹거리 고민까지
근본적인 위협 요인도 있다.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석유 수요가 과거처럼 되돌아갈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제에너지기구가 내놓은 ‘2019 세계에너지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 수요 증가세는 석유·가스를 포함한 전체 에너지 수요 증가세보다 두 배가량 더 높다. 에너지기구는 글로벌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2040년까지 석유를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도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2040년까지 전기차 830만 대, 수소차 290만 대 등 1000만 대 이상의 친환경차를 보급한다고 밝혔다. 전체 차량의 절반 이상을 하이브리드차도 뺀 순수 친환경차로 바꾸겠다는 이야기다.
앞선 정유업계 간담회에서도 성윤모 장관은 “글로벌 석유 기업들이 하반기부터는 사업 다각화·신규투자 등 새로운 대응에 나설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국내 석유산업도 글로벌 경쟁력 유지를 위한 혁신적 사업전략 모색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 세계가 전기, 수소 등의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고 있어서 수송용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이 예전만큼 수요를 회복하기 어렵다”며 “장기적으로는 친환경에너지 전환에 발맞춰 가스 정제 기술을 강화하면서 전기배터리 등을 통해 사업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