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즌·텍스트나우·성소수자 앱 등 이용, 성폭행 생중계 방송서 드러나…전문가 “역추적 가능”
‘n번방’ 창시자로 알려진 갓갓은 ‘박사방’을 운영한 박사 조주빈(25), ‘와치맨’ 전 아무개 씨(38)와 함께 텔레그램 성착취 방의 3대 운영자로 불렸다. 지난해 9월 모종의 이유로 잠적한 갓갓은 올 1월 돌연 다시 나타났다(관련기사 [단독] 조주빈 vs 갓갓, 대화방서 ‘누가 더 대단한가’ 대결 펼쳤다). 이후 n번방을 추가로 2개 더 개설하며 범죄 활동을 재개하는 듯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자취를 감췄다.
현재 경찰이 텔레그램 본사에 수사협조를 요청하고 문화상품권 거래 내역을 살피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갓갓의 뒤를 쫓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는 없다. 이런 가운데 갓갓의 스마트폰 화면 일부로 추정되는 자료가 나와 결정적 증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성착취 사건 피해자의 가족들은 4월 28일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해자들의 범죄 수법과 이를 토대로 얻게 된 갓갓의 스마트폰 화면 등 관련 자료를 일부 공개했다.
갓갓은 피해자 계정을 해킹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방송했다. 창 너머로 갓갓의 스마트폰 화면 일부가 노출되고 있다. 화면 상단에는 모비즌 아이콘이 떠 있다. 사진 제공=인스타그램 nbunbang
증언을 통해 들은 갓갓의 범죄 수법은 더욱 악랄했다. 피해자 가족 A 씨에 따르면 갓갓은 피해자 스스로 성착취 영상을 제작하도록 한 것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내 피해자를 성폭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다수의 관전자가 있는 자리에서 실시간 방송으로 내보냈다. 때로는 피해자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하고 협박하는 과정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당시 갓갓은 대단한 상영회라도 하듯 방송을 하고 관전자들의 반응을 살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갓갓에 대한 결정적 단서는 이 생중계 영상들에서 발견됐다. 갓갓이 피해자의 트위터 계정을 해킹하는 모습을 관전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그의 스마트폰 화면이 지속적으로 방송에 노출된 것. 이렇게 여러 차례 노출된 화면을 A 씨가 모두 이어 붙인 결과, 범행 당시 갓갓의 스마트폰 화면에 나열되어 있던 모바일 앱을 유추할 수 있게 됐다.
A 씨에 따르면 갓갓의 스마트 폰에는 트위터와 라인 외에도 성소수자 모임 앱, 모비즌 앱, 텍스트 나우 앱 등이 설치되어 있었다. 모비즌은 스마트폰의 자료나 일부 기능을 컴퓨터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한 모바일과 PC 간 원격제어 프로그램이다. 스마트폰의 파일 관리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스마트폰 화면을 컴퓨터에 그대로 띄우는 미러링 서비스와 화면 녹화 기능도 제공해 모바일 게임 방송을 하는 BJ들이 애용하는 앱 가운데 하나다. 텍스트 나우는 가상의 전화번호를 만들어주는 앱이다.
이런 앱들이 갓갓의 범행 수단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A 씨는 “갓갓은 평소 ‘모비즌’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스마트폰을 관리해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방송 영상에 나타난 갓갓의 스마트폰 화면 상단에도 모비즌을 뜻하는 아이콘이 지속적으로 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갓갓이 가입한 성소수자 모임 앱은 여성 동성애자인 레즈비언을 위해 만들어진 앱으로 확인됐다. 정황상 남성으로 추정되는 갓갓이 이런 앱에 가입한 이유 역시 범행 대상을 찾기 위해서라는 제보가 잇따랐다. 또 다른 피해자 가족 B 씨는 “갓갓이 마치 언니인 척 접근해 친분을 쌓고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냈다. 이후 이 정보는 피해자를 협박하는 자료로 쓰였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특성상 그들만의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 미성년자의 경우 성인에 비해 더 쉽게 마음을 연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갓갓이 가입한 앱을 토대로 역추적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수사 측면에서도 외국에 본사를 둔 텔레그램보다 국내 개발사의 협조를 기대하는 것이 더욱 수월하다. 앞선 모비즌 역시 알서포트라는 국내 기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설치 후 회원가입을 필요로 하는 앱이었다면 가입자 정보를 개발사나 개발자가 갖고 있을 것이다. 탈퇴를 했다고 해도 일정 기간 동안은 개인정보를 보관하는 규정이 있는 것이 통상적이다”라며 “앱 개발사 및 개발자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면 갓갓이 가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앱들의 가입자 정보 가운데 겹치는 것을 찾는 방식으로 수사망을 좁힐 수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갓갓 수사 상황에 대해 “수사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앞서 민갑룡 경찰청장은 “수사 범위를 좁혀가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갓갓의 검거를 바라는 한편 “갓갓에게 여러 범죄 수법을 전수했던 것은 n번방의 설계자로 알려진 와치맨 전 씨”라며 전 씨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 씨는 2019년 말 구속돼 현재 수원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