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 강유식 (주)LG 부회장, 손길승 SK그룹 회장(왼쪽부터) 등 국내 대기업의 간판급 전문경영인들이 비자금 파문에 연루돼 연말 임원인사에서 어떤 운명을 맞을지 재계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 ||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올해 정기 임원인사 시즌이 본격 개막되면서 이들의 거취가 또다른 관전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의 거취가 주목되는 것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모두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기 때문.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대선자금 문제로 중수부의 칼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고, 강유식 LG 구조본부장 역시 대선자금 문제로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또 손길승 SK그룹 회장은 비자금 문제로 이미 검찰을 내집 드나들 듯 오가고 있으며,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도 출국금지된 상태로 검찰소환을 기다리고 있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현대그룹 비자금 문제로 검찰로부터 수차례 소환조사를 받은 바 있으며, 조만간 다시 검찰에 출두해 진실고백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들의 앞날도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을 위해 온몸을 바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방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해당 그룹들로선 수사결과와 상관없이 이들에 대한 거취를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
[이학수]
이들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이학수 삼성 구조본부장의 거취다. 이 본부장은 이건희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오랫동안 보좌해온 데다가, 사실상 오너의 뜻을 그룹 관계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그동안 해왔다는 점에서 그의 거취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사실 이 본부장의 거취에 관한 언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여름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가 편법적으로 지분을 늘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을 무렵, 그룹 안팎에서는 이 본부장과 관련된 얘기가 나돌았다.
그 내용은 삼성그룹이 이 문제와 관련해 검찰 등의 수사를 받을 경우 이 본부장-김인주 부사장(재무담당 본부장) 등이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는 것. 또 이 본부장의 후임으로는 당시 삼성카드의 유석렬 사장, 황영기 삼성증권 사장 등이 거론됐었다.
물론 삼성그룹에서는 이 본부장과 김 부사장에 대한 ‘보상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 이 본부장과 껄끄러운 관계를 남기지는 않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우려와는 다르게 이재용 상무의 편법 증여 문제는 계절을 넘기며 잠잠해졌고, 이 본부장의 거취와 관련된 문제도 자연스럽게 사그러들었다.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검찰이 정치비자금 문제와 관련해 삼성그룹에 대해 수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삼성으로서는 정치비자금 문제와 이재용 상무의 편법 증여 문제가 동시에 맞물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 이렇게 되자 이 본부장의 거취가 다시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본부장의 거취와 관련해서 현재로서는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현안들이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이 본부장이 연임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하고 있다.
[강유식]
강유식 (주)LG 부회장(전 LG 구조조정본부장)의 거취도 주목된다. 강 본부장은 그동안 구본무 회장의 핵심 측근으로 그룹의 안살림을 도맡아왔다.
그러나 그 역시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맡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찰이 대선자금 수사에 들어가면서 LG그룹의 비자금 실체에 대해 상당부분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 조사에서 지난 98년 이후 그룹 내에서 벌어진 은밀한 지분조정과 관련해 구조본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 강 본부장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예를 들면 현재 검찰이 집중 조사를 벌이고 있는 LG석유화학 상장 직전 구본무 회장 일가의 지분매입, LG홈쇼핑 지분조정, LG정유 계열 분리 등을 구조본에서 기획 및 실행을 한 것으로 재계에는 알려져 있다.
만약 강 전 본부장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와 관련해 책임을 지게 된다면 그룹으로서도 그에게 더 이상 그룹 내에서 중책을 맡길 만한 명분을 가질 수 없다. 정기인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가 퇴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또 강 전 본부장은 지난 3월 지주회사인 (주)LG가 출범하면서 이 회사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긴 했지만, 역할이 없어진 점도 그의 운신을 좁게 한다는 분석이다.
[손길승]
현재 재계의 최대 관심인물 중 한 명이다. 손 회장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국내 재계의 간판 전문경영인이다.
그는 9개월 남짓한 기간동안 오너경영인의 전유물이었던 전경련 회장직을 맡아 자신의 위상을 떨치기도 했으나 현재 상황은 백팔십도 달라졌다. 손 회장이 이끌고 있는 SK그룹 회장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을 것이냐를 염려해야 하는 상황인 것.
SK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SK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정기임원 인사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 관계자는 “다른 그룹과 다르게 최고위 경영층에서의 인사이동은 없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며 “내년도 그룹 기조가 그룹을 예전처럼 ‘봉합’하자는 것이어서 큰 변화는 주지 말자는 것이 경영진의 생각인 것으로 전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SK그룹의 바람과는 다르게 업계에서는 또다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최태원 (주)SK 회장이 SK글로벌의 분식회계와 관련해 책임을 졌듯이, 어떤 식으로든 이번 검찰 수사의 시발점이 된 SK그룹의 비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재계의 여론 때문이다.
특히 손 회장의 경우 이 문제와 관련해 수차례 검찰에 들락거렸으나, 정작 처벌범위에서는 벗어난 때문에 업계의 시각이 곱지 않다.
그러나 SK그룹에서는 오너-전문경영인의 투톱체제를 뒤바꾸는 것이 당장으로서는 출혈이 크다는 판단 때문에 내부에서 고민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