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통합 전산망이 시행되면서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회사들이 극장이 관객수를 줄여서 보고한다는 불신이 없어졌다. 극장 통합 전산망은 영화산업이 투명해지는 것은 물론 산업이 시스템화되고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공신으로 여겨졌다. 내가 영화를 처음 시작한 1990년 초만 해도 극장이 관람객의 숫자를 줄이려고 표를 빼돌리고 이미 발권한 표를 재사용한다는 의심이 팽배했다. 일부 그런 사실이 밝혀져 극장과 제작사가 소송 직전까지 간 사례가 있다.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
그래서 영화제작비에는 ‘입회비’라는 항목이 공식적으로 존재했고 그 비용이 상업영화의 경우 적게는 5000만 원에서 흥행이 길어지면 2억 원까지 소요됐다. 이 비용은 절대적으로 극장을 못 믿는 제작사와 배급사가 부담했고 극장은 한푼도 내지 않았다. 다만 극장은 입회인의 존재를 방해하지 않았고 매일매일 입회인과 관객수를 대조하는 일에는 협조했다.
그런 극장과 제작사·배급사와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영화인들은 엄청난 노력을 했고 그에 영화진흥위원회가 마침내 극장들을 설득해서 2004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극장을 하나의 전산망으로 묶어서 실시간 관객 수를 투명히 보고하게 만든 ‘극장 통합 전산망’을 완성하게 됐다.
그럼에도 제작사와 배급사는 극장 통합 전산망마저도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못해 2010년경까지 주요극장에 입회인을 파견해 자기 영화 관객을 스스로 체크하는 관행을 버리지 못했다.
제21대 국회의원총선거가 막을 내렸다. 선거 결과는 집권 여당의 압승이었다. 사상 초유의 180석에 가까운 거대 여당은 말 그대로 개헌 말고는 무슨 일이든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일부 후보자와 유투버들이 사전선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몇몇 선거구는 법원에 이의를 제기하여 증거보전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재검표까지 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국민 중에는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성하기는커녕 시대착오적인 불법 조작 선거 논란을 야기한다”는 의견도 있고, 또 다른 쪽은 “통계적으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수치가 사전선거에서 나왔기 때문에 조작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불법조작론을 제기하는 측은 “선거당일에 투표한 유권자가 두 배 이상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일투표의 득표는 보수가 높은 곳도 많은데 사전선거에서만 보수가 모두 큰 표차로 진 것은 조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진보계열은 “진보를 지지하는 표심이 사전선거에 드러난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론 불법 조작 선거 의혹을 믿지 않는다. 2020년 대한민국이 사전선거를 조작하는 그런 미개한 나라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의심해서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수개표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국론을 분열하고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계도 정부에서 주도하는 극장 통합 전산망이 구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도 수년간 그 통합 전산망을 믿지 못해서 여전히 입회인을 극장에 파견했다. 입회인이 카운트한 관객 수와 극장의 관객 수가 일치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입회인 제도가 사라졌다. 만약 극장이 자신들이 의심받는 것이 불편하다고 입회인제도를 거부하고 배척했다면 아마 극장과 제작사·배급사의 갈등은 여전히 심화되고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나는 이 논란이 빨리 종식되길 기원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대한민국이 겪을 경제적인 충격이 어마어마하고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가 될 터인데 지금 국민과 국가가 이런 소모적인 행위에 국력을 낭비하는 게 옳은가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니 법원이 빨리 판단해서 이 논란을 잠재워주길 바란다.
수검표해서 아무 이상이 없다면 앞으로는 사전선거든 당일선거든 모든 논란은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단 입회인의 모든 비용은 극장을 의심한 제작사와 배급사가 부담했듯이 재검표에 대한 모든 비용은 문제를 제기하는 쪽이 부담해 하루빨리 이 소모적인 논쟁이 불식되기를 바란다.
원동연 영화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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