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유지지원금은 족쇄처럼, 신규 대출 내려니 기존 빚 먼저 갚아야…“알바 뛰며 버텨”
한국관광공사의 5월 8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 3월 방한 외래관광객은 8만 3000여 명에 그쳐 전년 동월 대비 -94.6%로 떨어졌고, 우리 국민의 해외여행도 14만 3000여 명으로 -93.9%를 기록했다. 때문에 관광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67% 줄었고 관광지출도 60% 줄었다. 4월 관광수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각국의 입국제한과 운항 중지 노선이 3월보다 증가함에 따라 관광객 및 각종 관광수치 역시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대표적인 아웃바운드 업체인 하나투어의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약 275억 원에 이르고 모두투어의 1분기 영업손실도 약 14억 원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성수기였던 1월 실적을 포함한 것으로 매출이 거의 없는 2분기는 더 심각한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1분기에 실적으로 잡혔던 매출 중 4월에 취소된 건이 많기 때문에 적자폭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일부 상용수요를 제외한 문의나 예약은 전무한 형편”이라고 전했다.
단체와 그룹 여행이 주를 이뤘던 해외 패키지 시장의 타격은 그나마 상용수요와 카고 물량이 있는 항공업계보다 더 심각하다는 전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2만여 개에 달하는 중소 여행사들은 ‘죽을 날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심정이라며 안타까운 상황들을 전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전문 중소아웃바운드 업체들이 사상초유의 비상사태를 맞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은 진정 국면이지만 해외 사정이 더 좋지 않다보니 해외로 나가는 아웃바운드 수치가 언제 정상으로 회복할지 기약할 수가 없다. 여행업 관계자들은 대형 여행사는 어떻게든 이 시기를 버티고 살아남으면 나중에 다시 기회를 얻겠지만 중소 여행사들은 대부분 폐업의 길을 걷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소형 여행사에게는 정부의 지원책도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고 전했다.
소규모 여행사 대표 A 씨는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은 직원에게만 나온다. 사업주는 해당되지 않는다. 직원 5명 미만 규모의 소형 여행사에게는 임대료와 사장 월급 등 사업유지지원금이 더 절실하다. 예약 전화 한통 안 오는 상황에서 당장 임대료 낼 돈도 없어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 직원의 고용유지를 생각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중소 여행사 대표 B 씨는 “정부지원금이라고 해서 20여 명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덜컥 받았다가 후회하고 있다. 2월부터 지금까지 3개월 정도 받았는데 앞날이 도통 안보여서 폐업하려고 하니 직원에게 지급됐던 고용유지지원금을 사업주가 토해내야 한다고 하더라.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 고용유지조치기간 이후 1개월 동안 고용유지를 해야 하고 감원도 할 수 없어 고용유지지원금이 오히려 족쇄가 된 거 같다.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매출 나올 기미는 안보이고 임대료와 고용유지지원금을 포함해 빚만 늘어나는 느낌에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B 대표는 고용유지지원금의 맹점도 지적했다. 취소나 환불 건을 처리하고 국내 문의라도 받으려면 직원이 정상 출근을 해야 하는데 휴직이나 휴업을 해야만 고용유지지원금을 주는 조건이 현장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직원들은 모두 유급휴직을 시키고 고용유지지원금이 나오지 않는 사장 혼자 사무실에 나와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며 “솔직히 지원금을 받는 유급휴직자가 회사의 요구에 따라 실제로는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놨다.
여행업에는 규모와 상황에 따라 70~90%의 고용유지지원금이 지원되지만 정책에 구멍이 많다는 지적이다. 사진=한국여행업협회 제공
한 IT 관련 여행스타트업의 경우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을 때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 동안에는 플랫폼의 시스템 업데이트가 이루어져선 안 된다”는 황당한 지침까지 받았다. 이 스타트업 대표는 “IT 스타트업 특성상 매출이 전혀 없어도 손 놓고 있을 수가 없다. 플랫폼 업데이트와 서비스 고도화를 지속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IT 관련 여행스타트업들이 휴직이나 휴업을 조건으로 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면서도 몰래 재택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현장상황과 동떨어진 정책에 불만을 제기했다.
중소 여행사가 정부의 저금리 융자지원을 받기도 녹록지 않다. 대형 여행사의 대리점을 하다가 대출이 막혀 폐업을 준비 중인 C 대표는 “신규 대출을 받으려면 기존 대출금을 먼저 갚아야 한다고 해서 어이가 없었다. 당장 고꾸라진 매출 때문에 자금이 필요한 건데 기존 대출을 갚을 여력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빚을 늘리느니 폐업을 결정했다”고 했다. 정부는 신용보증기금 등을 통해 1%대의 저금리 융자 지원책을 내놨지만 이 역시 사정이 어려운 소형 여행사에겐 조건이 까다로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여행업을 관광숙박업, 관광운송업, 공연업 등과 함께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하고 특별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막상 소형 여행사들은 지원금과 융자 정책 등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협회 등에서 소외되어 있는 소형 여행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간담회 자리 한번 만들어지지 않고 정해진 정책이라 구멍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1000억 원가량의 2020년 관광진흥개발기금 특별융자도 4월 중순에 이미 소진된 상태다.
한국여행업협회는 각 지자체나 자치구에 폐업을 신고한 여행사가 200여 곳에 달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여행사가 많은 데다 폐업전야인 여행사의 수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중소 여행사 직원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등에는 “멀쩡한 여행사 직원이었다가 기약 없는 일용직 알바를 하며 하루하루 버틴다”는 사연들이 차고 넘친다.
이들은 휴업이나 휴직 중 건설일용직, 아파트경비, 대리운전, 택배기사, 음식배달 등을 하며 사무실 임대료와 생활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 그렇지만 가장 힘든 것은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라고 토로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