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단만 출전하는 맥심커피배 우승…“AI 연구 덕에 성적 올라…제대 후 최소 5년은 정상 도전”
맥심커피배 우승트로피를 든 이지현 9단. 사진=사이버오로
입단 인터뷰에선 “우승하고 타이틀을 가지는 것이다. 세계기전보단 국내타이틀이 먼저다. 상징성이 깊은 국수전에서 우승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당시 경성고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지현은 1992년 9월생, 올해 나이는 스물아홉이다.
대기만성형 기사다. 어린이국수에서 입단까지 7년 걸렸고, 프로기사가 되어서 국내 최정상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시 10년이 걸렸다. 저단 시절부터 상위클래스로 인정받았지만, 실력과 노력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국내와 세계대회는 본선까진 잘 올랐지만, 4강 등 중요한 길목에서 막혀 주목받지 못했다. 바둑리그에선 주로 2지명이었다. 현재 국내랭킹은 8위다. 입단 시절보다 실력이 늘었을까.
“가끔 재미 삼아 예전 내 기보를 찾아볼 때가 있다. 과거에 이지현은 실력이 많이 약했다. 그때는 실수였다는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수들이 많다. 모양도 나쁘고, 무리하게 싸웠다. 지금도 실수는 하지만 시간에 쫓기거나 멘탈이 약해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실수해도 바로 냉정하게 그 상황에서 최선을 찾는 능력도 실력이다. 그런 면도 많이 보완되었다.”
원래 수읽기와 전투력이 주무기로 중후반이 센 기풍이었다. AI(인공지능)가 보여준 신세계로 초반을 보완하니 이기는 길이 훤하게 보였다. “누구처럼 특출난 기재는 아니었다. 나름대로 꾸준하게 노력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이 내가 가진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AI가 나오면서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시대가 되었다. 최근 성적이 좋아진 건 AI와 함께 연구한 덕분이다”라고 말하는 그다.
입대를 최대한 늦추고 20대 후반 마지막 1년을 바둑과 보내기로 결심했다.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성적도 꽤 잘 나왔다. 국대 리그에선 신진서, 박정환과 함께 상위권을 유지했다. “박정환과 신진서는 실력에선 별 차이가 없다. 스타일은 다르다. 박정환은 정수대로 두면서 실수 없이 이겨가는 바둑이다. 신진서는 상대를 압박하는 능력이 굉장히 강하다. 꼭 정답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유리하게 판을 이끄는 마력이 있다. 자신감이 넘치기에 수를 빠르게 결행한다. 시간공격까지 더하면 정신을 못 차리게 된다. 강하게만 두는 게 아니라 치고 빠지는 균형감각도 뛰어나다. 최상위랭커에게도 압도적인 승률이 나오는 이유다”라고 평한다.
후배 중에선 박건호, 송지훈을 지목했다. “재능이나 기재에 치고 올라오지 못하는 느낌이다. 내가 입단했을 무렵과 환경이 많이 달라 동기부여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라고 말한다. 먼저 입대한 ‘절친’ 안국현은 내년 1월에 제대한다고 한다. “실력은 별로인데 멘탈만 극도로 강하다. 국현이도 9단이 되었으니 공부를 더 해서 내 뒤를 따라 다음 맥심커피배에서 우승하길 바란다. 좀 힘들겠지만…”이라며 웃었다. 후배보다는 절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넘쳐났다.
이지현은 6월 8일, 경상남도 진해로 내려간다. 입단을 위한 수련기간 10년. 프로기사가 되어 승부세계에서 지낸 10년. 10대와 20대 청춘을 보낸 바둑세계를 잠시 떠난다. 해군 신병교육대에서 기초군사교육을 받고, 평택이나 동해 등 해군기지가 있는 곳에서 21개월 동안 군복무를 한다. 제대 날짜는 계산해 봤느냐고 물었다. “대략 2022년 2월”이라면서 “제대 후 최소한 5년은 30대 승부사로 다시 정상에 도전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박주성 객원기자
[승부처 돋보기] 우승 원동력은 4강에서 나온 대역전극 제21기 맥심커피배 4강 ●나현 9단 ○이지현 9단 실전진행1 #실전진행1 ‘흐름을 가져온 수읽기’ 자신의 장점은 ‘수읽기’라고 말한다. 손을 빼서 백2로 따내며 딴청을 피운다. 좌상귀 사활은 다 대책이 있었다. 흑3을 둬오자 이지현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백4로 패를 유도했다. 이후 백6단수가 미리 읽어놓았던 수다. 좌상귀에서 쉽게 살면서 초반부터 백이 주도권을 잡았다. 참고도1 #참고도1 ‘팻감 만드는 비법’ A와 B가 서로 가진 자체 팻감. 만약 참고도 흑2로 이어주면 백에게 C자리가 절대팻감이 된다. 수순을 비트니 팻감이 하나 더 생겼다. 이 무렵 두 기사 모두 마지막 40초 초읽기였다. 실전진행2 #실전진행2 ‘마지막 대역전’ 초반은 좋은 흐름을 가져왔지만, 중반에 착각을 해서 크게 불리해졌다. 나현은 흑1, 3로 하변 백 사활까지 추궁했다. 하지만 이지현은 이 부근은 백4로 건너붙이는 수를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당황한 나현이 시간 연장책으로 흑13을 두자 이지현의 눈이 번뜩였다. 백14로 중앙에 칼날을 세우자 흑 대마(세모 표시)가 비명횡사했다. 괴로워하던 나현은 백16을 보고 돌을 거뒀다. 참고도2 #참고도2 ‘옥집만 나온다’ 이지현은 “이번 맥심커피배 준결승에선 99% 진 바둑을 역전했다. 이 승리가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발판이었다”라고 말한다. 계속 둔다면 마지막 수(X표시)이후 흑1로 한 집은 낼 수 있다. 그러나 백2 이후에 흑이 우변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집을 지을 수가 없다. 모두 옥집뿐이다. 박주성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