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카와 정년 늘려 총장 임명 의혹에 ‘법 개정 항의’ 트윗 1000만 건 빗발…“아베의 첫 좌절, 레임덕 자초” 평가
‘트위터 시위’가 아베 신조 총리의 폭주를 저지했다. 검찰청법 개정 강행에 제동이 걸리면서 그동안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었던 아베 정권이 첫 번째 좌절을 맛봤다. 사진=EPA/연합뉴스
문제의 검찰청법 개정안은 “국가공무원과 검찰관의 정년을 65세로 연장한다”는 게 그 골자다. 거대 여당인 자민당은 두 법안을 세트로 묶어 국회에 제출했다. 일본은 고령화로 인해 정년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야당도 65세 정년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논란이 된 부분은 “내각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검찰 간부의 정년을 최대 3년간 연장할 수 있다”는 특례 규정이다. 자칫하면 인사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에 야당과 검찰 측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만 연장을 허용해 주겠다는 뜻 아니냐”며 “검찰 길들이기와 다름없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아베 총리는 “검찰청법 개정안의 취지와 목적은 고령기 직원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것”이라며 “정년 연장의 요건과 사유를 사전에 명확히 하고 있어 향후 내각의 자의적인 인사가 이뤄질 우려는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봇물을 이뤘다. 특히 연예계 참여가 두드러졌다. 일본 연예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정치적 견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일례로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폭언에 메릴 스트립 등 거물급 배우와 가수들이 공공연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일본의 경우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번 검찰청법 개정은 달랐다.
배우 이우라 아라타는 트위터에 “형편에 맞춰 법률도 정치도 비틀지 마라. 더 이상 이 나라를 망가뜨리지 말아 달라”고 썼다. 탤런트 라사르 이시이는 “어수선한 시기에 왜 이런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가. ‘불난 집에 도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면서 “코로나부터 해결하고 나서도 전혀 늦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밖에도 가수, 연출가, 만화가 등 많은 유명인사들이 참여하면서 검찰청법 개정안 항의 트윗은 크게 확산되어 갔다. 관련 트윗은 무려 1000만 건에 육박했다.
구로카와 히로무 검사장
전례 없는 정년 연장에 야당의 추궁이 이어졌다. 아베 정부는 “공무원의 퇴직으로 공무에 현저한 지장이 생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 근무기간을 늘릴 수 있도록 한 ‘국가공무원법’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1981년 국가공무원법 개정 당시 ‘검찰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정부가 국회에 답변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에 불을 댕겼다.
이런 와중에 아베 정부가 3월 13일 국가공무원과 검찰관의 정년을 연장하는 법안을 묶어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야당 측은 “뒤늦게 구로카와 검사장의 정년 연장을 정당화하고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검찰총장인 이나다 노부오가 올해 8월 퇴임하면 구로카와를 그 자리에 앉히려는 꼼수”라는 분석도 내놨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아베 총리가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정년을 연장시킨 구로카와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구로카와는 1957년생으로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 1983년 검사가 됐다. 특이한 이력은 “일반 검사를 15년 한 뒤 1998년부터 정치인과의 접점이 많은 법무성으로 이동해 근무를 했다”는 점이다.
동기인 와카사 마사루 전 도쿄지검 특수부 부부장은 구로카와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그는 붙임성이 좋아 어쩌면 정치가들이 대하기 편한 스타일일지 모른다. 보통의 검사는 정치가가 부탁하면 단호히 거절하지만, 구로카와는 ‘일단 알겠다. 검토해보겠다’고 답하는 원만한 성격이다.” 이러한 성향 탓인지 혹자는 “아베 총리가 구로카와를 2년 임기의 검찰총장에 앉혀 정권 말기에 거세질 수 있는 검찰 수사를 막으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유명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도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하는 해시태그 운동에 동참했다. 사진=트위터
가뜩이나 코로나19 늑장대응으로 불만이 쌓인 가운데, 검찰청법 개정안은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NHK 여론조사에 따르면 개정안에 대해 반대 의견은 64%에 달한 반면, 찬성 의견은 17%였다. 지지율도 급락했다. 아사히신문이 5월 16~1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33%를 기록해 지난 4월보다 8%포인트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이대로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다면 다음 조사에서는 정권의 위험수역으로 꼽히는 지지율 30% 이하로 떨어질 게 분명했다.
결국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검찰청법 개정안의 이번 정기국회 통과를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당초 아베 총리는 강경돌파 노선이었다”고 한다. ‘구로카와 검사장이 친아베 성향’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도 “구로카와와 둘이서 만난 적이 없다”며 친분을 부인한 바 있다. 이때만 해도 아베 총리는 ‘제대로 설명하면 포위망을 뚫을 수 있다’고 자신했던 것 같다.
배우 이우라 아라타는 트위터에 “이 나라를 망치지 말아달라”고 썼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인터넷에서 거침없이 확산되면서 대응 방향을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트위터 시위’가 아베 총리의 폭주를 저지한 셈이다. 아베 정부는 2012년 12월 재집권 이후 ‘안보관련법’과 ‘특정비밀보호법’, ‘카지노법’ 등 국민이 반발하는 중요 법안들을 속속 통과시킨 바 있다. 수적 우세를 앞세워 밀어붙이기식 강행을 계속해왔던 것이다. 이번 같은 ‘중도 포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일본 매체 ‘동양경제온라인’은 “아베 총리의 첫 좌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트위터에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를 처음으로 단 30대 여성은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목소리를 낸 것이 헛되지 않았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줘서 정치를 움직일 수 있었다. 너무 기쁘다.”
한편 여당이 ‘검찰청법 개정안’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일본 언론에 의하면 “가을로 예정된 임시국회에서 관련 법안 심의를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구로카와 검사장에 대해서는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후지TV의 가자마 신 논설위원은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가공무원법 개정안과 함께 철회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의 정년 연장은 인생 100세 시대를 대비해 미룰 수 없는 시책이므로, 다음 국회에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역대 최장기 집권 중인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는 내년 9월까지다. 이번 소동을 계기로 인터넷상에서는 ‘#다음엔 반드시 선거하러 가자!’라는 해시태그 캠페인이 시작됐단다. 과연 내년에도 많은 일본인들의 목소리가 정치를 움직일 수 있을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