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승률·다승 1위 ‘2007년 쎈돌 천하’ 판박이…쏘팔코사놀배·GS칼텍스배 대결 주목
신진서 9단. 사진=한국기원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벗어났다. 도전자로 나선 박영훈 9단 역시 그 해 후지쓰배 우승, 기성전 3연패, 삼성화재배 4강 등 기량에서 정점을 찍었다. 도전 1, 2국에서 이세돌이 연승했지만, 박영훈이 나머지 판을 다 잡아 2연패 후 3연승이란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제12회 GS칼텍스배 도전5번기가 역대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이유다.
장면도 [장면도] 제12기 GS칼텍스배 도전 5국 ●박영훈 9단 ○이세돌 9단(2007.12.17) 정대상 9단은 장면도를 놓아보며 “최종국 초반 진행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편으론 다시 봐도 이 부근에 이세돌의 행마는 이해가 안 간다. 그냥 백7로 둬서 우상귀를 선수로 막힌 건 너무 아프다. 먼저 밀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묻는다. 이후 흑은 10의 압박이 좋았고, 12로 두어 중앙으로 훨훨 날아올랐다. 당시 이세돌이 최강자로 불렸지만, 초반이 완벽한 건 아니었다. 약간 불리하더라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판을 짜는 걸 즐겼다. 중후반 가공할 힘으로 상대를 휘저으며 따라잡는 게 특기였다. 참고도 [참고도] 인공지능 대 인간지능 최신 인공지능도 정대상 9단이 그린 참고도에 동의했다. 더해서 백4에 흑5로 강하게 부딪히는 과격한(?) 참고도까지 보여준다. 참고도 흑13까지 승률은 50 대 50으로 팽팽하다. 아마도 실전에서 이세돌은 백이 귀를 밀면 흑이 3 대신 바로 A로 우변을 막히는 게 싫었으리라. 귀의 실리는 바로 주울 수 있는 동전. 허리를 쭉 펴고 잔돈 따윈 무시했다. 자기 스타일로 초반 틀을 깎는 ‘장인의 고집’이 물씬 느껴진다. 손해를 극도로 피하는 AI에선 볼 수 없는 ‘인간지능’의 수다. |
승률1위, 다승1위, 연승행진까지 2020년 신진서는 2007년 이세돌과 아주 닮았다. 최근 성적과 기세를 보면 과거 이세돌에게 붙었던 수식을 모두 신진서에게 주면 그대로 맞아떨어진다. 상대를 휘감는 강렬한 수읽기와 공격적인 스타일도 판박이다. 초반 포석에서 이세돌은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지만, 신진서는 완벽하게 AI의 길을 따른다는 점에서만 약간 차이가 있다.
랭킹 점수는 6개월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타이틀 개수로 일인자를 구분하는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진정한 ‘진서 천하’를 선포하기 위해선 진한 승부 무대에서 뭔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 신진서·박정환이 격돌하는 쏘팔코사놀배, 신진서·김지석이 만나는 GS칼텍스배가 주목받는 이유다.
다시 만난 두 사람. 전기 GS칼텍스배 결승 장면으로 왼쪽이 신진서 9단, 오른쪽이 김지석 9단이다. 사진=한국기원
GS칼텍스배 5번 승부는 작년에 이은 리턴매치다. 신진서는 2018년 이세돌을 3 대 2로 꺾었고, 작년엔 김지석을 3 대 0으로 완파했다. 이번까지 우승하면 GS칼텍스배 최초 3연속 우승이다. 김지석도 우승 두 차례(18·19기 대회), 준우승 두 차례(22·24기 대회)로 이 대회와 인연이 깊다. 정대상 9단은 “유일하게 20년을 넘게 5번기를 유지한 기전이다. 승패를 떠나 다섯 판을 모두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신진서가 강하지만 6 대 4 정도 우세다. 과거 박영훈처럼 김지석이 반전드라마를 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전망을 전했다.
GS칼텍스배는 우승상금 7000만 원이고 생각시간 1시간 초읽기 1분 1회가 주어진다. 1국은 6월 10일 시작한다. 12일까지 2, 3국이 이어서 열리고, 4국과 5국은 18일, 19일 벌어질 예정이다. 결승 5번기를 앞두고 신진서는 “이제는 어떤 강한 상대에게도 지면 안 된다. 또 어떤 어려운 바둑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임전각오를 남겼다.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