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기업 출신 임용 잇따라…판결 공정성 우려 속 지방 근무·적은 연봉에 지원률 ‘뚝’
‘경력법관 출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7년 동안 로펌·기업 출신으로 경력법관에 임용된 변호사가 182명이나 된다. 판사가 퇴직한 뒤 서로 챙겨준다는 전(前)관예우가 이제 후(後)관예우로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사진=최준필 기자
#공정성 담보 우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받은 ‘경력법관 출신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7년 동안 로펌·기업 출신으로 경력법관에 임용된 변호사는 모두 182명이다. 182명 가운데 로펌은 166명, 기업 사내 변호사는 16명이었다.
로펌 출신으로 경력법관에 임용된 이들 중 절반가량이 대형 로펌 출신이었다. 바른이 22명으로 가장 많았고, 세종(18명), 광장(17명), 율촌(14명), 태평양(12명)이 뒤를 이었다. 기업 출신 경력법관으로는, 2013년 삼성전자 사내 변호사 2명이 임용된 이래 지난해까지 공·사기업에서 일했던 변호사 총 16명이 판사로 옷을 바꿔 입었다.
자연스레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형 로펌과 기업 출신 변호사들이 판사가 되는 과정에서 판결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몸담았던 로펌 동료 변호사가 변론을 맡거나 몸담았던 기업이 재판 당사자가 됐을 때 ‘편의’를 봐주는, 일명 ‘후관예우’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형 로펌의 한 파트너 변호사는 “요새 들어오는 신입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경력법관을 노린다고 하면 로펌 입장에서 좋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라 원만한 관계로 지내려고 한다”며 “나중에 내 사건을 맡게 될 수 있는 것 아니냐. 사건에 대해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라고 설명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국정감사 때 “최근 로펌·기업 변호사 출신 법관 비율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해가 갈수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판사 출신 변호사가 혜택 받는 전관예우가 아니라 판사가 된 후 (몸담았던) 로펌 일에 혜택을 주는 후관예우가 문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고, 법원 측도 “실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에 사법부도 규정을 마련했다. 대법원은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제10조3)에서 로펌 출신 경력법관은 3년 동안 재직 경력이 있는 로펌이 수임한 사건을 배당받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사건배당이 ‘현저하게 곤란하게 되는 때에는 배당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고, 심지어 기업 출신 경력법관의 경우엔 배당에 관한 규정이 아예 없다. 특히, 대형 로펌에서 함께 근무했던 변호사가 다른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뒤 사건을 맡게 될 경우에는 경력법관이 개인적 판단에 따라 기피신청을 해야만 가능하다.
작은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역시 “우리 로펌에서 판사가 나오면 당장 사건을 맡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나중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면 사건에서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법조계는 좁은 시장”이라고 덧붙였다.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 나온 판사 사무실(위)과 OCN 드라마 ‘미스터 기간제’에 나온 로펌 사무실이다. 사진=OCN ‘미스터 기간제’·JTBC ‘미스 함무라비’ 홈페이지
하지만 법조인들의 반응은 후관예우 가능성보다는 ‘판사 자질 문제’로 이야기를 옮겨가는 경우가 많았다. 로펌을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판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얘기였다.
한 로펌 관계자는 “경력법관 임용을 준비하려면 아무래도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어서 일부 로펌에서는 ‘나가서 준비하라’는 사인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일을 잘하고 인정받은 친구들은 판사로 지원을 잘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법원에서조차 “돈을 2배 이상 많이 주는데 누가 로펌 잘 다니다가 법원으로 오겠느냐”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올 정도다.
특히 법조경력 3년 이상인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는 단기 법조경력자 법관임용 절차가 폐지되고, 2018년부터 법관임용 자격요건이 법조경력 5년으로 상향되면서 우수한 자원들의 판사 지원률이 오히려 낮아졌다.
경력법관 임용 조건이 법조 경력 3년 이상이었던 시절에는 로클럭(판사의 재판 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관)을 2년 한 뒤, 국선전담변호사나 소형 로펌 등에서 1년만 근무하고 곧바로 판사로 임용되는 게 소위 엘리트 코스였다. 실제 2016년에는 국선전담변호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6%가 로클럭 출신이기도 했다.
하지만 법조 경력 5년으로 기준이 올라가면서, 로펌 등에서 3년 이상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과거보다 우수한 지원자들이 줄어들었다는 게 법원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예전에 3년일 때는 1년만 로펌 생활을 하면 되기 때문에 로클럭을 하려는 우수한 자원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최소 3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 대형 로펌에 ‘적응’해 버린 우수한 자원들이 판사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연봉이 적다는 점도 우수한 자원들이 판사 지원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30대 중반의 한 판사는 “대형 로펌에 다니는 동기들과 비교하면 3분의 1에서 2분의 1 수준의 급여를 받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특히 5년 이상 대형 로펌에서 근무할 경우 연봉 1억 원을 훌쩍 넘기게 되는데, 경력법관으로 왔을 때 포기해야 하는 액수가 너무 크다는 게 법조인들의 설명이다.
지방 근무를 해야 한다는 점도 단점으로 꼽힌다. 갈수록 워라밸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법조인들에게 지방 근무는 판사를 지원할 때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자녀 교육 등의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법조경력 기준이 올라가는 2022년부터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2022년부터 경력법관으로 임용되려면 법조경력이 7년 이상이어야 하고,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으로 상향된다.
검사장 출신의 한 로펌 대표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상위권으로 거론되는 로스쿨을 졸업하지 못했거나 대형 로펌에 가지 못한 변호사들은 여전히 경력법관으로 지원을 많이 하겠지만, 과거 사법연수원 시절 1등부터 100등 가운데 상당수가 법원으로 가는 시절은 끝난 것 같다”며 “우수한 자질을 가진 판사들이 늘어나야 제대로 된 재판 결과로 사법부가 더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