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사 운영 때부터 마당발 알려져…리드 실질 오너 의혹, 2019년 말부터 잠적
일요신문 취재 결과, 몇 년 사이 재혼한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연락을 피해 잠수를 탔다. 하지만 가족 및 친지들과는 지난 3월까지 접촉했다고 한다. 자신이 연관된 리드 관련 수사에선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지만 라임자산운용 관련 검찰 수사가 강도 높게 진행되자 결국 추적을 피해 도주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김 회장이 한국을 떠나 밀항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김 회장은 유명 연예기획사 대표로 이름을 알렸고 유명 배우와 결혼하며 화제가 됐다. 사진은 이미지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일요신문DB
1966년생인 김 회장은 과거 유명 연예기획사인 P 사 대표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면서 유명 배우와 결혼해 화제가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주식시장 상장이 잇따르면서 자연스레 ‘업종’을 전환했다. M&A(인수·합병) 기업가로 활동하며 주가조작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유명 배우와는 그 과정에서 이혼했다.
김 회장을 잘 아는 전환사채(CB) 투자업계 관계자는 “그는 과거 연예기획사를 할 때부터 발이 넓었던 인물”이라며 “2000년대 중반 이후에는 완전히 주가조작 설계자가 됐다고 보면 된다”고 평가했다.
실제 김 회장이 관여한 K 사는 라임자산운용의 주가조작 관련 초반 투자 대상이다. 2017년 8월 대표이사 변경과 함께 K 사에 라임자산운용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김 회장이 실질 오너로 알려진 리드의 대표이사 박 아무개 부회장도 K 사 임원진에 이름을 올렸다. 김 회장이 K 사와 리드 등 여러 기업을 사모펀드 이름으로 무자본 M&A 한 뒤 주가조작을 했다는 의혹의 근거이기도 하다.
김 회장과 지난해 연말까지 연락을 했다는 측근은 “김 회장이 2017년에 주변에 ‘라임 자금을 가져올 수 있다’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최근 기사를 보니 정말 제대로 주가조작을 한 것 같더라”며 “당시에는 두세 곳 기업을 경영하는 줄만 알았지, 이렇게 많이 관련됐을 줄을 몰랐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7년 8월 2800원대에 거래되던 K 사는 현재 주가가 300원대로, 2018년 2만 원이 넘었던 리드는 상장폐지됐다.
#오래 전부터 기업인수 명목으로 사기
김 회장의 금융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회장은 2006년 8월, 최 아무개 씨에게 5억 원을 빌리면서 “6개월 후인 2007년 2월 이자를 포함해 10억 원으로 갚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를 지키지 못했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 받는다. 김 회장은 당시 코스닥 주식 110만 주(당시 44억 원 상당)가 있었지만, 이미 자금 융통을 위해 다른 채무의 담보로 설정돼 있던 상황이었다.
이보다 앞선 2007년에는 회사 돈 8억 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 모든 범죄가 ‘주가조작’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게 김 회장을 잘 아는 측근들의 설명이다. 앞선 김 회장 측근은 “엔터 사업이라는 게 연예인을 통해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 아니냐”며 “김 회장이 기업 인수꾼이 된 뒤부터 주변에 5억~10억 원을 많이 빌리려고 했다. 그렇게 빌려줬다가 돈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데, 2017년부터는 라임자산운용을 언급하면서 ‘사업이 잘된다’고 하고 다니더라”고 기억했다.
#다른 세력들과 라임 연결시켜 줬다는 의혹도
김 회장이 라임자산운용을 다른 ‘세력꾼’들에게 소개시켜 줬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대목이다. 실제 김 회장은 라임자산운용의 조 아무개 이사와 구속된 신한금융투자 심 아무개 전 팀장과 빈번한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심 전 팀장과 함께 구속된 라임자산운용 부사장 이종필 씨에게 다른 주가조작 세력인 에스모의 실질 최대주주인 이 아무개 회장을 소개시켜 준 게 김 회장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미 검찰 수사를 통해 라임자산운용이 어떻게 리드를 상장폐지까지 끌고 갔는지는 드러난 상황이다. 주가조작으로 수익을 약속한 김 회장 일당은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300억 원을 투자받는 데 성공하자 이 전 부사장에게 명품 시계, 명품 가방, 고급 외제차 제공 및 전환사채 매수청구권 등 합계 14억 원 상당의 금품이나 이익을 제공했다. 심 전 팀장에게도 리드에 신한금융투자의 자금 50억 원을 투자해준 대가로 7400만 원 상당의 금품이나 이익을 줬다.
이렇게 리드를 인수한 김 회장 일당은 리드에 있던 자금을 횡령해 다시 다른 기업들을 사들였고, 관련 기업들에 전기차나 바이오 테마 허위 뉴스를 흘려 주가를 올렸다. 이렇게 김 회장 일당이 본 수익은 수백억 원에 달한다는 후문이다.
결국 회사 자금 800억 원의 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을 제외한 리드 경영진들에게는 4월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박 아무개 리드 부회장 등 리드 임원진 6명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횡령) 혐의 유죄를 선고하면서 “리드는 총 824억 원 상당의 손해를 봤다”며 “피고인들은 건실한 코스닥 상장사인 리드를 마치 현금자동인출기, ATM과 같이 이용해 거액의 유상증자 자금을 횡령했다”고 지적했다. 총 책임자로 기소된 박 부회장은 징역 8년이 선고됐다.
#배신 진술 나온 리드 사건…김 회장 발목 잡히나
그렇다면 김 회장은 어떻게 리드 수사를 피할 수 있었을까. 검찰 수사 과정 때만 해도 ‘참고인’으로 분류됐다. 박 부회장이 실질적인 주가조작 세력으로 지목됐고, 김 회장은 ‘단순 소개책’으로만 진술이 나왔다.
하지만 라임자산운용 관련, 강도 높은 수사가 이뤄지자 박 부회장은 진술을 바꿨다. 리드는 2018년 이후부터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과 김 회장 의도대로 운영됐다고 얘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 부회장은 1심 결심 공판 때 최후 변론에서 “횡령 사건에 이용된 것이 억울하다. 주범을 잡는 데 끝까지 협력하고 기여할 것”이라며 주범으로 김 회장과 이종필 전 라임자산운용 부사장, 신한금융투자 심 전 팀장을 지목했다. 특히 박 부회장은 “회사가 자금난에 시달리던 2016년 김 회장이 나타나 심 전 팀장과 이종필 전 부사장을 통해 자금을 유치해줬다”며 “이후 김 회장은 해당 자금을 자기 허락을 받아서 쓰라고 했다”고 구체적인 정황도 털어놨다.
지난해 초 서울남부지검에서 리드 수사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김 회장은 내로라하는 전관 변호사들을 선임해 수사에 대응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라임자산운용 논란이 확대되자 잠적했다. 서울남부지검 전경. 사진=임준선 기자
그럼에도 김 회장이 실제 리드 오너인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김 회장이 주가조작 과정까지 깊숙하게 관여한 것은 맞지만 리드를 소유했다고 보기에는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드에 투자했던 업계 관계자는 “김 회장이 리드 투자를 주도하고 관여한 것은 맞지만 실질 소유주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면서도 “리드 수사 때 김 회장만 잘 피해 나간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앞선 사채업계 관계자 역시 “리드는 무자본 M&A 치고도 구조가 꽤 복잡하지만, 김 회장이 실질 오너였다면 검찰 수사를 아예 피할 수 있었겠냐”며 “최근 라임자산운용 때문에 가중처벌이 예상되자 박 부회장이 책임 떠넘기기를 한 부분도 있다고 본다”고 귀띔했다.
#“자금 충분히 있다” 얘기하고 다녔다는 김 회장
지난해 초 서울남부지검에서 리드 수사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김 회장은 내로라하는 전관 변호사들을 선임해 수사에 대응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라임자산운용 논란이 확대되자 숨기 시작했다. 그는 대외적인 연락을 최대한 자제하고 올해 초에는 아예 ‘잠수’를 선택했다. 검찰 수사망을 피해 대포폰을 쓰고 현금 사용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혼한 가족들과 서울 강남에 거주하던 김 회장은 지난 3월까지도 가족들과 은밀하게 접촉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대포폰과 제3자를 통한 연락을 했다는 후문이다. 김 회장의 오랜 지인은 “가족 및 어머니에게 김 회장이 ‘현금은 충분히 있다.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더라”고 말했다.
라임자산운용 자금이 흘러들어간 상장사를 크게 에스모와 리드로 나눠 수사 중인 검찰은 현재 김 회장의 신병 확보를 시도 중이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