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수사심의위 신청에 검찰 구속영장 청구 맞불…영장 기각돼도 기소 방침 바꿀 가능성 없어
지난 5월 26일과 29일, 검찰의 칼날이 이재용 부회장을 향했다. 두 차례 모두 17시간의 강도 높은 조사가 이뤄졌다. 이 부회장은 조사 당시 제기된 의혹에 대해 “보고 받지 않았고 지시하지도 않았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수사의 정점’인 이 부회장의 소환 조사가 끝난 만큼 검찰이 조만간 사법처리 방향을 정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런데 지난 6월 2일, 이재용 부회장이 승부수를 띄웠다. 서울중앙지검에 기소를 하는 것이 타당한지 심의해 달라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수사심의위는 2018년 도입된 제도로,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검찰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한다.
위원회는 150명 이상 250명 이하의 외부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15명의 ‘현안위원회’가 꾸려져 기소 또는 불기소 여부 등을 판단한다. 이재용 부회장 측은 수사심의위 신청에 대해 “몰아가기 식 수사를 끝없이 하는 것보다는 객관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검찰의 삼성 회계사기 수사 막바지에 이르러 지난 6월 2일 깜짝 카드를 던졌다. 사진=최준필 기자
#수사심의위 신청, 독일까 약일까
법조계에선 이재용 부회장 측이 낯선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구한 배경에는 전략적 판단이 깔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두 차례의 조사 과정에서 수사 내용 일부와 수사팀의 의중을 확인한 이 부회장 측이 승산이 없다는 판단을 했고, 이 때문에 검찰이 아닌 ‘여론’의 판단을 받아 반전을 노린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개시를 기점으로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보였다. 특히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 상황에서 ‘삼성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여기에 지난 5월 6일 대국민 입장 발표 이후 후속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일련의 활동을 통해 우호적인 시선이 생겼고, 이 때문에 검찰에 모든 판단을 맡기기보다는 수사심의위를 통해 ‘여론전’을 벌이는 쪽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선 시간도 벌 수 있다. 지난 5월 마지막 소환 조사 직후 검찰 안팎에선 늦어도 오는 6월 말까지는 사법처리를 마무리지을 것이란 예상이 파다했다. 그러나 심의가 시작되면 이 일정이 더 밀릴 수밖에 없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복잡한 회계 분야인데다 이해관계자들도 많아 수사심의위가 ‘요약본’만으로 사건을 파악하는 데에 시간적,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수사심의위에 참여했던 한 법조계 관계자도 “사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검토에서 결론에 이르기까지 수개월이 걸린 사례가 있다”며 “심의가 시작된다면 이번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수사심의위 신청이 오히려 ‘위험한 도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 내용이 복잡하고 광범위한 만큼 위원들의 시선이 오히려 검찰의 수사 방향 쪽으로 쏠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도 도입 이후 총 8차례 수사심의위가 소집됐지만 검찰의 수사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판단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수사심의위가 ‘기소’를 결정하면 이재용 부회장의 카드는 완전히 무력화되는데, 이 경우 이재용 부회장은 사법판단뿐만 아니라 검찰 수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마련된 제도의 취지를 사건처리 지연과 방어용으로 남용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꽃놀이패 쥔 건 검찰
이재용 부회장의 수사심의위 신청 직후 검찰도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지난 6월 4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 부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등 3명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 및 시세조종)과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다. 김종중 전 사장의 경우 위증 혐의도 받는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는 이재용 부회장의 수사심의위 신청과는 별개다. 피의자나 그의 변호인 등이 신청할 수 있는 심의 대상에는 영장 청구 여부가 포함되지 않는다. 이재용 부회장 측도 ‘기소 여부’와 ‘수사 계속’을 판단해 달라며 신청서를 제출했다.
검찰 수사팀은 그동안 수집한 증거와 진술 등을 근거로 이재용 부회장의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모습. 사진=최준필 기자
검찰은 또 수사팀이 수사심의위 신청 전부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응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구속영장 청구를 재가한 건 지난 6월 3일이다. 수사팀의 영장청구에 대한 결론은 지난 5월 마지막 주말에 내려졌고, 재가를 받기 위한 최종 의견서는 지난 1일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검찰이 맞불을 놨다기보다는 오히려 이재용 부회장 쪽이 영장 청구 방침을 미리 알고 대응을 했다는 데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검찰 입장에서도 구속영장 청구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속영장 기각=수사 실패’라는 공식은 성립되지 않지만,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 사건인 만큼 ‘기각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이재용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물론 재계 일각에선 이번 수사를 ‘무리한 수사’로 규정하고 수사 칼날이 정점으로 향할수록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법원이 검찰과 다른 판단을 내리면 이재용 부회장 측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향후 기소 여부를 검토하게 될 수사심의위의 판단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수사심의위가 불기소 결정을 내리면 검찰은 최악의 경우 재판에서 다퉈보지도 못하고 장기 수사물을 모두 내려놓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사팀은 그동안 수집한 증거와 진술 등을 근거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검찰이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는 150쪽 안팎이고,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설명한 의견서는 수백 쪽에 달한다. 법원에 증거도 다수 첨부해 제출했는데, 이재용 부회장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문건과 “승계작업을 보고했다”는 취지의 과거 미래전략실 임원들의 진술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모두 “보고받은 적 없다”는 이 부회장 측의 주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증거로 꼽힌다.
검찰이 이재용 부회장의 신병을 확보하면 구속기간 내에 기소해야 한다. 이 경우 수사심의위의 판단에서도 자유로워진다. 검찰의 최대 무기가 ‘충분한 증거수집’인 만큼 법원이 ‘소명 부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것만 아니라면 기소는 정해진 수순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다른 재경지검 출신 변호사는 “만약 영장이 기각된다면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이유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검찰은 수집한 증거를 근거로 범죄혐의는 소명됐다는 이유를 들어 불구속으로 기소하면 된다”며 “애초에 영장 청구는 재판에 넘기는 것을 전제로 한 절차라 어떤 결과가 나오든 검찰이 기소 방침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 실질 심사는 6월 8일 오전 열린다. 검찰은 구속 여부와 별개로 수사심의위 구성에 필요한 절차를 규정에 따라 진행할 방침이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