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맑음, 면세점은 흐림…“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훌륭” vs “아직 인정 받을 정도 아니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016년 3월 새로 문을 연 서울 중구 현대시티아울렛 동대문점 매장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현대백화점그룹은 최근 계열사 패션기업 한섬을 통해 화장품 전문기업 ‘클린젠 코스메슈티칼’(클린젠) 지분 51%를 인수했다. 유통망 확장에도 적극적이다. 올 상반기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에 2호 시내면세점을 열었고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점 DF7(패션·기타) 사업권도 따냈다. 올 하반기엔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대전점과 남양주점, 2021년 1월엔 여의도 파크원 현대백화점을 앞두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의 일은 아니다. 정지선 회장은 2007년 취임한 뒤 적극적인 M&A와 투자로 다양한 영역에 발을 들였다. 2011년 말 가구업체 리바트를 사들였고, 2012년 초 한섬을 인수하며 패션사업에 진출했다. 2013년 경북지역 종합유선방송사업자와 식품가공업체 씨엔에스푸드를 인수했으며, 2015년에는 건설 중장비 제조업체 에버다임을 품고 현대렌탈케어도 설립했다.
인수한 기업들은 조금씩 덩치를 키워나갔다. 2017년 SK네트워크 패션부문 인수로 패션사업을 강화했다. 2018년에는 리바트와 시너지를 위해 건축자재기업 한화L&C(현 현대L&C)를 사들이고, 서초방송을 인수하며 케이블(CA)TV 사업도 확대했다. 2010년대 들어 매년 한두 건의 M&A를 진행하며 백화점 사업 일변도에서 벗어나 종합 생활문화기업으로 발돋움해나갔다.
정지선 회장(가운데)이 2018년 11월 현대백화점면세점 무역센터점 그랜드 오픈 기념행사에 참여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사업들 성적표는 분야마다 다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한섬의 경우 인수한 2012년 당시 영업이익 710억 원에서 2013년 503억 원으로 줄었지만, 2014년부터 반등해 2019년 1065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리바트도 2011년 92억 원에서 2012년 32억 원으로 급감했지만, 2013년부터 상향곡선을 그리더니 2017년 492억 원으로 최대치를 찍었다. 2019년에는 주택 매매 거래량 감소에 따른 타격으로 238억 원에 그쳤지만, 올 1분기 148억 원으로 선방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투자 성적을 깎아내리는 사업들도 있다. 에버다임의 경우 인수한 2015년 당시 177억 원에서 2016년 256억 원을 기록했지만 이후 하향세를 보이더니 건설경기 침체가 심화한 2019년 30억 원으로 뚝 떨어졌다. 현대렌탈케어는 설립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적자고, 최근 대폭 강화하는 면세점사업도 2018년과 2019년 각각 418억 원, 741억 원 손실을 봤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현대백화점은 신세계가 면세점과 화장품에서 실적을 내자 뒤따라 진출한 것처럼 ‘미투’ 전략을 쓴다”며 “확실한 사업에만 뛰어들기에 타사보다 재무 건전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쟁사들이 해외 매장을 우후죽순 늘린 뒤 대규모 손실을 낸 모습을 보면 현대의 방식도 괜찮은 전략”이라며 “항상 늦는 것이 문제지만 리스크 관리 측면에선 나름 훌륭하고, 인수 기업을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성적이 괜찮다”고 말했다.
인수 효과를 다소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증권사 다른 연구원은 “신세계와 롯데는 제조·브랜드·유통에 물류까지 이어지는 밸류체인을 갖고 있어 잘 융합해 키우면 시너지가 극대화할 것이란 판단에 적극 투자하지만 현대는 3사 중 인프라가 가장 약하다”며 “알짜 경영을 하다 보니 유통 생태계가 바뀐 상황에선 선택지가 많지 않아 거듭 M&A에 나서는 것인데, 아직 투자 가치를 인정받을 만큼의 성적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백화점 등 이커머스 성장에 타격을 받지 않는 오프라인 매장은 늘리는 한편, 유통업계 이커머스 경쟁에 합류하기보다는 쿠팡과 11번가 등 온라인몰에 입점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며 “가진 포트폴리오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잘하는 사업 분야 위주로 강화하는 등 오프라인 유통업의 침체기에 잘 대처하는 모습”이라고 판단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