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정무라인 쇄신 ② 재개발 규제 완화 ③ 사퇴효과 극대화…‘마의 벽’ 지지율 5% 돌파 관건
둘 중 하나다. 다른 길은 없다. 2년 남은 제20대 대통령 선거(대선)는 마지막 승부처다. 만에 하나 실패할 땐 정치적 유배를 넘어 ‘사망 선고’에 이를지도 모른다. 기회는 있다. 당 최대 주주 2인자는 여전히 공백 상태다. 그사이 그간 약점으로 지적된 계파와 세력은 눈에 띄게 불어났다. 3선의 광역자치단체장인 그의 행정 검증도 사실상 끝났다. 박원순 서울시장 얘기다. 박 시장이 사실상 차기 대권 프로젝트를 띄우며 ‘포스트 문재인’을 향한 잰걸음을 시작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5월 13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이태원클럽 집단감염 관련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제공
박 시장의 대권 프로젝트가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지난 4·15 총선 직후다. 그는 총선이 끝나자마자 ‘정무직 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인적 쇄신에 돌입했다. 이는 박 시장의 ‘대권 프로젝트 1단계’다. 핵심 키워드는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계를 향한 러브콜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 등 여권 개혁파 끌어안기 △정책통과 대언론 소통 창구 강화 등으로 요약된다. 박 시장은 그간 자신의 대선 지지도 등이 낮은 이유로 ‘약한 정무라인’을 꼽으며 여권 인사들에게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발 인적 쇄신 신호탄은 ‘최병천·고한석·장훈’ 라인의 영입이다. 박 시장은 4월 27일 서울시 인사위원회에서 민주당 정책통으로 불린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을 민생정책보좌관으로 신규 임용했다. 민병두 전 민주당 의원 정책보좌관을 지낸 최 보좌관은 최근까지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최 보좌관은 21대 총선 과정에서 ‘미래통합당이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제1당을 탈환한다’는 전망을 내놓으며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다. 이는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 창당의 단초로 작용했다. 박 시장이 40조 원에 달하는 서울시의 정책을 이끌 적임자로 최 보좌관을 콕 집자, 여의도 안팎에선 ‘박원순표 정책 만들기’의 사전 포석이란 얘기가 돌았다. 전임자인 권정순 전 보좌관은 정책특보로 자리를 옮겼다.
고한석 비서실장과 장훈 소통전략실 실장도 합류했다. 삼성SDI 글로벌사업팀장 출신인 고 실장은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에서 민주당의 ‘빅데이터 전략’을 총괄했다. 열린우리당 정책연구원 정책기획 연구원과 민주연구원 부원장 등도 역임했다. 장훈 실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서 행정관을 지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6월 16일에는 물갈이설이 나돌았던 문미란 전 정무부시장 후임에 김우영 전 은평구청장을 내정했다. 그는 친노계인 이미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의 보좌관 출신이다. 계파로는 김근태계가 주축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로 분류된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이 차기 대선에서 뭔가 하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 같다”며 “인재영입만 놓고 보면 박 시장의 약점을 채워줄 보완재는 확실히 챙긴 셈”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 대권 프로젝트 2단계는 히든카드인 ‘박원순표 정책’ 만들기다. 핵심은 ‘부동산 정치’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 시장이 내년 차기 대권 도전 선언을 앞두고 규제에 묶인 서울 재개발 지역을 일부 해제할 것이란 얘기가 고개를 든다. 서울시는 최근 ‘리모델링 활성화 구역 지정 지침’ 개정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리모델링은 전면적인 철거나 재개발 등이 어려운 지역의 건물 증축 등을 촉진하는 제도로, 기존 연면적의 30%까지 노후 건물을 증축할 수 있다. 다만 재건축 완화를 놓고는 추측이 분분하다.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 재건축을 비롯해 ‘박원순표 35층 룰’에 걸린 강남 은마아파트와 잠실주공 5단지 주민들은 연일 “즉각 사퇴하라”며 박원순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손학규 전 민생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박 시장이 부동산 정치에 시동을 걸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앞서 박 시장은 2018년 7월 10일 “여의도를 통째로 개발해 신도시급으로 만들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여의도 통째 개발은 여의도를 국제금융의 중심지로 격상하려는 ‘종합 마스터플랜(여의도 일대 재구조화 방안)’의 일환이다. 하지만 박 시장의 여의도 개발 발언 이후 여의도 일대 아파트 가격이 2억∼3억 원씩 급등하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즉각 제동을 걸었다. 여의도 안팎에선 차기 대선을 노리는 박 시장이 청와대와 정부의 강경 기조에 꼬리를 내렸다는 평가가 많았다.
서울 재개발 규제 완화가 현실화한다면, 여의도 통째 개발을 넘어서는 ‘박원순표 정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 특히 강남권 표심이 오롯이 박 시장에게 갈지는 미지수다. 서울 재개발·재건축 규제는 박 시장이 서울시정을 거머쥔 2011년 10·26 재·보궐선거 이후 9년째 이어진 정책 기조다. 박 시장이 재개발 규제를 전격적으로 풀더라도 그간 쌓인 감정 등을 일시에 해소할 가능성은 낮다는 얘기다. 여권 한 정책통은 “선거는 이성이 아닌 감성 투표에 좌우된다”고 잘라 말했다.
부동산 정치를 내건 박 시장 승부수와 지지층의 충돌 문제도 딜레마다. 이는 박 시장이 중도층 일부 표심을 얻더라도 진보진영 표는 잃을 수 있다는 분석과 맞물린다.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서는 질 수도 있다. 박 시장이 중도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진보진영의 표를 얻지 못하면 차기 대선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의미다. 미래통합당 한 중진 의원은 이와 관련해 “박 시장은 역대 대통령들이 내세웠던 대규모 개발과는 거리가 먼 철학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영국의 옥스팜을 벤치마킹한 ‘아름다운가게’ 등이 박원순표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는 일종의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운동’을 하는 플랫폼이다. 박 시장은 유럽 전역에 820여 개의 매장을 가진 옥스팜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난 2002년 ‘아름다운가게’를 출범시켰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출신인 박 시장이 혁신적 사회운동의 대부로 올라선 계기도 ‘아름다운가게’와 민간 싱크탱크인 ‘희망제작소’의 성공이 한몫했다.
박 시장의 대선 프로젝트 3단계는 사퇴 효과를 극대화하는 ‘타이밍 정치’다. 서울시는 최근 박 시장의 사퇴 시점을 내년 △7월 9일 △9월 9일 △12월 9일 등으로 나눈 ‘내부 문건(대선 출마 관련 시장직 사퇴 시한 검토)’을 작성했다. 20대 대선을 240일 앞둔 7월 9일은 공직선거법상 선거관리위원회에 대선 예비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는 시점이다. 민주당 차기 대선 경선 예비후보 등록 시점인 9월 9일 전후로 사퇴할 수도 있다. 12월 9일은 공직선거법(선거일 90일 전 사퇴)상 반드시 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날이다. 야권 한 보좌관은 “박 시장의 권력의지에 따라 사퇴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했다.
관전 포인트는 박 시장의 대권 파급력이다. 우선 4·15 총선을 거치면서 박 시장 우군은 두 자릿수로 늘어났다. 3선의 남인순 박홍근 의원과 재선의 김영호 진성준 의원을 비롯해 박 시장 비서실장 출신의 천준호, 행정1부시장을 지낸 윤준병, 전 정무보좌관인 박상형, 전 정무수석인 최종윤·허영, 박원순 캠프 출신의 민병덕 의원 등이 박원순 사단으로 꼽힌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박원순계는 최소 ‘12+알파(α)’, 최대 20명가량”이라며 “2012년 대선 당시 손학규계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손학규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친노계 다음으로 많은 계파를 형성했지만, 대선 지지도가 한 자릿수에 머물면서 결국 본선 벽을 뚫지 못했다. 당시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던 한 인사는 “민평련이 지지했던 손 후보가 문재인 대세론에 무릎을 꿇은 것은 지지도 5%의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도 마찬가지다. 대선 국면에서 ‘5% 지지도’ 달성은 대망론과 필패론을 가르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통한다. 민평련과 교수 등 오피니언 그룹에서 지지가 높았던 손 후보는 ‘마의 5%’ 벽을 번번이 넘지 못했다. 그 결과 호남의 전략적 지지를 받는 데도 실패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지지율이 5% 아래였지만 광주 경선 승리를 시작으로 급상승, 대세론을 형성할 수 있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5월 25∼29일까지 조사한 결과(6월 2일 발표·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박 시장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는 2.3%에 불과했다. 1위는 34.3%인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2위는 14.2%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각각 차지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