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출신 내세워도 그룹 인기로 이어지지 않아…소속사도 인기 멤버 위주 개별 활동 치중
걸그룹 구구단은 ‘프로듀스 101 시즌 1’ 종료 후 가장 큰 기대를 받았지만 2018년 11월 이후 현재까지 완전체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러나 데뷔 최소 2년 최대 4년 동안 이들이 거둔 성적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다. 석연치 않은 해체에 이른 그룹이 있는가 하면 무기한 활동 중단과 ‘멤버 방출설’까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프로듀스 시리즈 인기를 발판으로 삼은 걸그룹들의 잇단 실패를 두고 “일부 멤버의 ‘하드 캐리’(홀로 성공을 이끄는 사람이나 그 행위)로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프로듀스 101 시즌 1’ 종료 후 유망주 그룹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걸그룹 구구단은 최근 멤버 방출설이 불거져 논란이 됐다. 중국 오디션 프로그램 ‘창조영2020’에 참여하고 있는 멤버 샐리(류셰닝·24)가 지난 5일 공개된 중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2019년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소속사가 저희한테 집에 가라고 했다. 언제 다시 돌아오면 되냐고 물었지만 소속사는 ‘너희를 다시 부를 일은 없을 거다,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고 언급한 것. 당시 소속사인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가 이 같은 통보 후 숙소 안에 있던 물건들을 모조리 가져갔다는 게 샐리 측 주장이다. 샐리는 “그때 저는 앞으로 뭘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회사가 답을 해주길 기다렸는데 마치 병이 날 것 같았다. 매일 밤 울었다”고 덧붙였다.
젤리피쉬엔터테인먼트 측은 이 같은 이야기에 별다른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구구단은 2018년 11월부터 현재까지 완전체 활동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해체가 기정사실화됐고 계약 기간 탓에 내부적으로 조정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구구단은 I.O.I의 멤버로 이미 탄탄한 인지도와 인기를 보유한 김세정(사진)과 강미나가 합류해 데뷔 전부터 눈길을 끌었다. 사진=박정훈 기자
그러나 실제 구구단의 활동은 기대와 달랐다. 데뷔 직후인 2016년부터 2017년까지는 비교적 아이돌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지만, 2018년부터는 유닛과 솔로 멤버로 나눠져 무대보다 예능과 O.S.T 참여 등이 주된 활동이 됐다. 같은 해 11월 세 번째 미니앨범을 낸 것을 마지막으로 완전체 활동이 이뤄지지 않은 것도 개별 멤버의 활동 영역이 더 넓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그룹 활동이 없는 상황에서 일부 멤버의 방출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해체설에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유사한 사례로 같은 프로듀스101 시즌 1과 I.O.I 출신 멤버들을 전면에 내세웠던 프리스틴이 있다. 프리스틴 역시 프로듀스 프로그램에 출연한 멤버 7명, 이 가운데 I.O.I로 데뷔한 멤버 2명(임나영, 주결경)을 포함한 그룹이라는 점을 홍보해 왔다.
그러나 크고 작은 아이돌 그룹이 난립하고 있는 현 가요계에서 일부 멤버의 이름값만으로 그룹 전체의 인기를 견인하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프리스틴 역시 2018년부터 완전체 활동을 전면 중단했으며 600여 일 동안 공백기를 가진 뒤 결국 해체 수순을 밟았다. 이 과정에서 팬덤이 직접 소속사인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그룹의 완전체 활동을 촉구하는 단체 행동에 나섰으나 소속사 측이 무대응으로 일관해 더 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업계 내에서는 이처럼 기존 팬덤을 보유한 이른바 ‘입덕 멤버’ 한두 명만으로 그룹 전체의 대중적인 인기를 보장하는 것이 이전에 비해 더 어려워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아이돌 활동 시스템의 변화와 더불어 미디어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태도도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프리스틴은 ‘프로듀스 101 시즌1’과 I.O.I 팬덤의 많은 기대를 받았으나 긴 공백기 후 결국 해체 수순을 밟았다. 사진=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익명을 요구한 한 아이돌 소속사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이돌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엄청난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서 팬이 아닌 일반 대중도 방송을 보고 아이돌 그룹 자체에 호감을 갖는 것이 쉬웠다. 몇몇 멤버의 방송 캡처 사진이나 영상 등을 접하고 재미있으면 그 그룹의 정보를 직접 찾아서 보는 식이었다”며 “그런데 요즘은 대중이 방송에 출연하는 멤버와 그룹을 별개로 받아들이고 있어 개별 멤버의 인기가 그룹 전체로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김세정이 예능 감각이 있고 재미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구구단의 노래를 듣거나 무대를 굳이 찾아보진 않는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중소기획사의 경우는 애초에 빠른 수익 발생이 목적이라 부지런히 그룹 전체의 인지도를 올리는 것보다 인기 멤버 위주로만 활동 스케줄을 짜는 것이 편할 수밖에 없다”며 “비인기멤버들은 그룹 활동이라도 해야 인지도를 쌓을 수 있는데 소속사는 그룹보다 개별 활동에 치중하고, 결국 인기 멤버만 남고 그룹은 해체하는 이런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