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양산 사업 탈락하며 원·하청업체로부터 피소…경영난 등 위기 해결 ‘3차 양산’ 참여가 관건
K2 흑표 사업은 1995년 ‘국산 명품 전차 도입’을 목표로 시작됐다. 미국 크라이슬러가 설계한 K1전차와 이를 국내 기술로 개량한 K1A1과 달리 순수 국내 기술로 설계·제작하기로 했다. 15년의 개발 단계를 거쳐 2010년 양산 계획을 확정했다. 총 3번으로 나눠 양산하기로 했는데, 당시 책정한 사업비만 총 3조 5000억 원이었다. 2015년 1차 양산분 100대가 실전 배치됐고 지금은 2차 양산분이 순차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사격 훈련하는 K2 전차. 사진=연합뉴스
S&T중공업은 2차 양산 사업부터 참여했다. 이 사업의 계약 관계는 크게 ‘방위사업청(정부)⟶현대로템⟶S&T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기타 협력업체’ 순이다. 부품을 조립해 완성된 전차를 만드는 현대로템 아래 4500개 부품 협력업체들이 가지처럼 뻗어 있는 형태다. 이 가운데 S&T중공업과 두산인프라코어는 K2 흑표 국산화 사업의 핵심 업체다. 전차의 심장인 ‘파워팩(엔진+변속기)’을 만들어 납품하기로 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엔진을, S&T중공업이 변속기를 맡았다.
#‘샌드위치 피소’ 당한 S&T중공업
그런데 S&T중공업이 현대로템, 변속기 개발 단계서부터 함께해온 협력업체 두 곳과 그동안 민사 법정, 공정위 등에서 공방을 벌여온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로템은 2019년 1월 7일 자본재공제조합을 상대로 228억 원 규모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2차 양산 사업에 착수하면서 자본재공제조합을 통해 S&T중공업에 지급했던 보증금을 모두 돌려달라는 취지다. 이 소송은 소장이 접수된 시점부터 최근까지 S&T중공업이 대응하고 있다.
현대로템에 앞서 변속기 부품을 만들어 납품하기로 했던 협력업체 A 사는 2018년 10월 17일 S&T중공업에게 미지급된 납품 대금 11억 3000만 원 지급을 요구하며 창원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같은 해 다른 협력업체 B 사는 공정위에 S&T중공업이 계약을 어기고 4억 원의 대금을 주지 않는다며 신고했다. 이들의 공방 역시 올해 6월까지 이어졌다.
업체 간 갈등의 발단은 S&T중공업이 개발한 변속기 결함에서 시작됐다. 2차 양산을 앞두고 성능 검증이 이뤄졌는데, 총 6차례나 진행된 내구도 시험을 한 번도 통과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생산은 2년간 지연됐다. 결국 방사청은 2018년 2월 S&T중공업의 변속기 대신 독일산 변속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현대로템은 두 달 뒤인 4월 30일 S&T중공업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사실상 2차 양산 사업에서 퇴출된 셈이다.
문제는 S&T중공업이 퇴출된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연의 원인이 어떻든 방사청과 직접 공급계약을 맺었다는 이유로 현대로템은 1조 원까지 치솟은 ‘벌금(지체상금)’을 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정상적으로 납품이 되지 않아 S&T중공업은 물론 변속기 개발 및 생산 협력업체 58곳 모두 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협력사는 납품 재개와 추후 다른 사업 참여 등을 기대하고 피해를 감수하기로 했지만, 도산 직전까지 몰린 일부 업체들은 S&T중공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업체 간 민사 소송과 공정위 제소 등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S&T중공업에 모든 책임을 돌리기는 어렵다. ‘변속기 결함 판정’ 배경에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꼬여있다. 군이 제시한 내구도 평가 기준은 ‘9600km를 고장 없이 달려야 한다’였다. S&T중공업 변속기는 7110km 구간에서 결함이 발생했다. 그러나 방산업계에선 9600km를 전차 한 대가 폐차되기 직전까지 달리는 거리로 평가한다. S&T중공업은 첫 내구도 시험 단계부터 2차 양산 사업에서 탈락하기 직전까지 “기계공학적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기준”이라며 지속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방은 마무리 수순…근본 해결 방안
지난 6월 4일, 창원지방법원 제4민사부는 협력업체 A 사가 제기한 11억 원대 물품대금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문 내용을 종합하면 법원은 S&T중공업이 고의로 계약을 어기고 대금을 미지급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8일 뒤인 6월 12일, 공정위는 정부세종청사 세종심판정에서 협력업체 B 사의 ‘불공정하도급거래(대금 미지급)’건으로 심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B 사의 신고를 접수한 공정위 조사관과 S&T중공업 측이 공방을 벌였는데, 앞서의 A 사 민사소송 선고 내용이 심도 있게 다뤄졌다. 공정위 조사관 측은 심의위에 S&T중공업을 상대로 과징금 부과와 형사고발을 요청했다. 아직까지 심의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다. 다만 방산업계에선 B 사의 신고 내용이 A 사와 거의 비슷하고, 법원 선고까지 내려진 만큼 공정위 역시 큰 틀에서 S&T중공업 쪽 손을 들어 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K2 흑표전차. 사진=현대로템 제공
현대로템과 S&T중공업의 공방은 올해 5월까지 이어졌다. 오는 6월 23일 선고를 앞두고 있었으나 최근 기일이 변경됐다. S&T중공업은 현대로템과 풀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있다. 지체상금과 관련한 책임 소재다.
현대로템의 이의제기에 따라 방사청은 생산 지연 원인과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납품 지연기간 총 1530일을 645일로 대폭 줄였다. 지체상금은 1500억 원대로 줄었지만 여전히 현대로템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어렵다. 방사청은 645일에 대해서도 면제원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면제가 무산될 경우 현대로템은 S&T중공업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S&T중공업은 K2 흑표전차 2차 양산 사업 참여가 무산된 이후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S&T중공업에 쌓여있는 변속기 생산 재고는 400억 원에 달한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매출액 6000억~8000억 원, 영업이익 500억~700억 원을 기록했지만, 2017년 400억 원대 영업손실을 냈고 지난해에는 매출액도 3751억 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최근 적자에서는 벗어났지만 이는 사업 성과보다는 비용절감의 결과다.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S&T중공업의 생산직 직원 170명과 사무직 직원 30명이 순환 유급휴직 중이다.
S&T중공업이 업체 간 소송전과 경영난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은 K2 흑표전차 3차 양산 사업 참여다. 최근 수년 사이 터키 정부가 S&T중공업 변속기에 러브콜을 보내면서 수출길이 열렸지만 한국 정부가 성능을 보장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조건을 제시했다. S&T중공업은 만약 터키 수출에 성공하더라도 납품까지는 4~5년이 걸릴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결국 현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3차 양산 사업에 참여하는 게 우선이다.
방사청 입장에서도 마지막 사업에서 국산 변속기 탑재를 포기할 경우, 연구개발비 306억 원과 정부 투자비 542억 원을 허공에 날리게 된다. 국산 기술도 사장되는 데다 S&T중공업과 그 아래 협력업체들의 피해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밖에 없어 S&T중공업 변속기에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방사청은 올해 안에 국산 변속기 탑재 여부 검토하고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3차 양산 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당초 5월께 정해질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뤄지고 있다. ‘9600km 기준 논란’을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숙제다. 2차 양산 과정에서 2년에 걸친 공방 끝에 S&T중공업을 최종 퇴출한 만큼 3차 양산에서 기준을 완화해 버리면 또 다른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방사청 한 관계자는 “수출용은 규격 제한을 두지 않고 테스트 중이고, 테스트가 종료된 이후 규격을 변경할 필요가 있으면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