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까지 장기 임차 중 ‘빨리 처분해야’…건물 소유 하나대체자산운용은 ‘느긋’
두산건설이 입주해 있는 논현동 두산빌딩 매각이 본격화됐다. 사진=연합뉴스
두산건설은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설립되는 신사옥 입주를 앞두고 있어 기존 입주처를 정리해야 한다. 문제는 두산건설이 소유하고 있던 논현동 사옥 지분 79.95%를 2013년 하나대체자산운용(당시 하나자산운용)에 세일즈앤리스백(자산을 매각한 후 이를 다시 빌려 쓰는 방식) 했으며 임대차 계약 기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데 있다.
유동성 위기를 겪던 두산건설은 2013년 세일즈앤리스백으로 논현동 사옥을 1380억 원에 매각했다. 세일즈앤리스백은 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기업이 소유한 건물을 비교적 높은 가격에 매각하고 대신 임차료를 조금 더 지불하는 방식을 뜻한다. 두산건설은 당시 시세보다 건물을 비싸게 판 대신 2028년까지 장기로 사옥을 임차키로 했다. 이 때문에 두산건설이 올해 신사옥으로 이전한다 해도 연간 100억 원씩, 남은 8년간 모두 800억 원가량을 고스란히 지불해야 한다. 다만 두산건설은 올해부터 건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다.
재계는 두산건설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활용해 임차 비용 부담을 줄일 것으로 전망한다. 채권단의 구조조정 압박이 거센 만큼 불필요한 비용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두산건설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하나대체자산운용으로부터 건물을 사서 다시 재매각해 임대차 계약을 소멸시키고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두산건설이 논현동 두산빌딩을 매수할 예비투자자도 선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대체자산운용은 올해 초부터 논현동 사옥 매각을 추진해왔다. 다만 하루 빨리 대체 임차인을 찾아야 하는 두산건설과 입장이 다르다. 두산건설의 임대차 계약이 2028년까지라 공실 리스크 없이 연 6.8% 수익률이 나는 데다 강남 토지가격이 계속 상승하기 때문에 하나대체자산운용 입장에서는 서둘러 건물 지분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 IB(투자은행) 업계는 논현동 사옥 공개입찰이 올해부터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두산건설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고 있다.
매각주관사로 선정된 부동산 관리 회사 존스랑라살코리아, 에비슨영코리아는 지난 4월 잠재적 매수자들에게 투자안내서를 발송, 지난 22일까지 입찰의향서를 받았다. 주관사는 입찰의향서를 바탕으로 원매자의 입찰 가격, 신용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한다. 두산건설은 이 결과를 보고 우선매수청구권 행사 여부를 결정한다.
두산건설로서는 자신을 대체해 건물에 입주할 의사가 있는 원매자(마스터리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것이 좋다. 단순히 건물 매수만 원하는 원매자에게 건물이 매각되면 임대차 계약이 승계돼 비용부담이 계속 이어진다. 하나대체자산운용은 공개입찰을 통해 최대한 고가에 건물을 매각하는 편이 유리하다. 결국 공개입찰전이 흥행할수록 두산건설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져 부담이 커진다.
두산그룹은 경영난을 겪는 와중에도 신사옥 건설에 박차를 가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2017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두산그룹 신사옥(두산분당센터) 부지 주변 야경. 사진=연합뉴스
입찰의향서 제출은 마감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조용하다. 매각주관사는 입찰과 관련해 일정을 비롯한 일체의 정보도 밝히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흥행할 경우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마련인데 아직 시장에서 입찰과 관련해 나오는 이야기가 없다”며 “매도자가 하나대체자산운용이지만 임차 승계 문제 등이 복잡한 것이 매각시 단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업계는 시점이나 논현동 사옥의 지리적 이점을 따졌을 때 공개입찰이 크게 흥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강남 오피스에 대거 입주해 있는 테크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재택근무를 늘려 오피스 수요가 줄어든 상황도 큰 이유다. 2013년 논현동 사옥이 1380억 원에 거래됐는데, 현 시세로 따져도 그 이상 받기는 힘들다는 평가도 나온다. 토지 형태와 지리적 이점, 개발가치 등이 논현동 두산빌딩보다 월등하다고 평가받는 데다 강남대로의 알짜로 손꼽히는 신논현 어반하이브 빌딩도 2019년 12월, 두산빌딩 매매가보다 낮은 1370억 원에 매각된 바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논현동 두산빌딩은 언주대로에 있어 강남역 핵심상권에서 비켜나 있고 유동인구가 많은 곳도 아니며 토지가 직사각형 형태라 향후 개발가치도 고평가되기 힘들다”며 “현재 2013년 가격인 1380억 원에 그대로 매매된다고 해도 매도자와 매수자에게 나쁘지 않은 가격 수준”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매각이 흥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현대해상 강남빌딩이 최근 성공적으로 매각된 배경에는 코로나19로 해외 부동산 투자가 어려워지자 자금이 국내로 몰린 영향이 크다”며 “투자 수요는 있는데 투자처가 부족해 유력 중심지 오피스 빌딩은 매각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현재 국책은행이 혈세를 지원해가면서 두산그룹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만큼 시중 금융사가 협조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나대체자산운용이 두산건설에 현저히 불리한 조건으로 사옥을 매각하기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적절한 선에서 매각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다.
두산건설 측은 “아직 사옥 매각과 관련해 의사결정을 할 단계가 아니다”면서도 “다만 우선매수청구권이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2028년까지 건물을 그대로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