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빅딜 이끌며 존재감 과시하다 ‘환매 중단’ 옵티머스 펀드 최대 판매사 책임론 곤혹…NH증권 “투자금 회수 최우선”
‘현대로템 2400억 원 규모 전환사채(CB) 발행, HDC현대산업개발 유상증자 3207억 원, SK바이오팜 IPO(상장) 공모규모 9593억 원.’ 코로나19 사태로 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 올해 상반기 자본시장을 이끈 ‘빅딜’들이다. 현대로템의 전환사채 규모는 2017년 이후 가장 컸다. SK바이오팜은 공모규모부터 청약 경쟁률, 증거금 등에서 종전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고 신기록을 경신했다.
NH투자증권은 이 거래들을 이끈 주관사 명단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공동주관 형태로 복수의 증권사들이 참여한 거래도 있지만 대부분 NH투자증권이 주도적으로 거래를 이끌었다. 그 밖에 위더스제약·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마크로밀엠브레인·드림씨아이에스 등의 상장 주관사도 맡았는데,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현재 NH투자증권은 한국거래소 및 금융투자업계 등이 집계한 올해 상반기 증권사 주관 실적의 대부분 분야에서 1위에 올라 있다.
SK바이오팜 IPO 등 올해 상반기 대형 딜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던 NH투자증권이 옵티머스펀드 환매 중단 사태로 고심에 빠졌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사진=연합뉴스
NH투자증권은 하반기에도 존재감을 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IPO 시장에서 독무대가 예상된다. SK바이오팜과 함께 올해 ‘최대어’로 꼽히는 빅히트엔터테인먼트 IPO에도 참여한다. BTS(방탄소년단)를 앞세운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 매출 5872억 원을 기록했다. 증권가에선 빅히트엔터의 시가총액을 최대 5조 원까지 예측하고 있다.
여기에 5G 부품 업체 와이팜, 2차전지 장비 에이프로, 법인보험대리점(GA) 에이플러스에셋의 상장 주관도 맡고 있다. 역시 시장 관심도가 높은 곳들이다. 앞으로 주관을 맡기로 한 잠재적인 IPO 후보들의 명단도 화려하다. 상장 릴레이가 예정돼 있는 ‘카카오 패밀리’ 가운데 한 곳인 카카오페이지와 바디프랜드, 현대카드, 패스트파이브, 더본코리아 등이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에도 IPO 주관 실적 1위를 달성했다. 지난해 NH투자증권의 공모 총액은 1조 3175억 원이었다. 2위인 한국투자증권의 9442억 원을 크게 앞질렀다. 올해 한국투자증권이 근소한 차이로 NH투자증권의 뒤를 바짝 좇고 있지만 증권업계는 하반기 추가 딜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면 1위 수성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이 같은 호실적에도 NH투자증권이 마냥 웃을 수는 없다. 지난 6월 24일, NH투자증권 홈페이지는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다운됐다. SK바이오팜 일반청약 마감일이었다. 그런데 같은 날 다른 투자자들에겐 원성을 샀다. 지난 6월 17일부터 환매가 중단된 옵티머스 펀드 상품이 이날 추가로 환매가 중단됐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라임 펀드 이후 최대 규모의 환매 중단 사태가 불거진 옵티머스 펀드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전체 옵티머스 펀드의 88%를 판매한 최대 판매처다. 옵티머스 펀드 설정 잔액은 5172억 원으로, NH투자증권이 4528억 원 어치를 팔았다. 환매 중단 규모는 최근 1000억 원을 넘어섰다. 투자금 사용처가 제대로 소명되지 않은 펀드가 남아 있어 앞으로 그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NH투자증권은 2019년 6월 말부터 해당 펀드를 판매했다. 당시 펀드 판매사들은 DLF와 라임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를 의식해 만기가 짧고 안정적인 펀드를 물색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NH투자증권이 낙점한 것이 옵티머스 펀드였다. 이 펀드는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편입 자산의 95% 이상을 투자해 연 3%안팎의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식으로 입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번 사태는 NH투자증권의 지난 행보와 비교하면 더욱 뼈아프다. 지난 2~3년 사이 내부적으로 펀드 등급제를 만들고 위험조정수익률 등을 감안해 검토하는 등 사모펀드 취급과 관련해 깐깐한 관리 체계를 만들었다. 2018년 말에는 사모펀드만을 전담하는 펀드솔루션부를 신설하면서 검증 과정을 강화했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에서 선정하는 최우수 펀드 판매회사로도 여러 차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9년 초에는 WM(자산관리) 부문 성과지표(KPI)까지 전면 개편했다. 증권사의 간판과도 같은 상품 판매 실적을 지표에서 빼고 고객 만족도를 고려해 현장에서 고과를 평가하도록 바꿨다. 회사 이익보다는 고객 이익을 우선으로 한다는 취지였는데, DLF와 라임 사태가 불거지기 전에 시행된 조치라 이후에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NH투자증권을 통해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회사를 향해 집단소송 등 강도 높은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대형 판매사인데다, 검증 과정을 강화해놓고도 부실한 상품을 걸러내지 못하고 판매한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다.
해당 펀드는 공공기관이 건설사에 공사를 발주하고 공사비용을 매출채권으로 건설사에 지급하는데 이 과정에서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사모펀드를 조성해 매출채권을 사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NH투자증권이 공공기관이나 건설사 한 곳에라도 확인을 했다면 이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부 투자자들은 불완전 판매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의 생명은 신뢰”라며 “좋은 평판과 우수한 트랙 레코드를 유지하고 있었더라도 한 번 신뢰도가 떨어지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증권업계 일각에선 NH투자증권의 명백한 잘못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옵티머스자산운용이 펀드 명세서를 위조,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현행법상 판매사들은 펀드 명세서를 통해 자산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만큼 운용사가 마음먹고 서류를 조작해버리면 부실을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취지다. 이를 두고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도 지난 7월 2일 “판매사가 부담해야 할 고통을 피할 생각이 없다”면서도 “이번 사태는 도의적 문제와 법리적 문제를 둘 다 봐야하는데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NH투자증권은 옵티머스운용 관계자들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투자자 보호와 자산 회수로 팀을 나눠 편입자산의 실사 및 자산별 회수 전략을 짜고 있다. 피해 투자자들을 상대로 투자금의 일정 비율을 미리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탁회사 예탁결제원과 하나은행에 대해선 옵티머스운용의 채권 매입 지시를 별다른 감시 없이 그대로 이행해 업무상 과실이 있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옵티머스 펀드 환매 중단 사태에 대해 NH투자증권 관계자는 “투자자 자금 회수를 최우선으로 두고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