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군 탄탄’ 글로벌 제약사 향한 기대감…성장성 입증 숙제에 소송리스크도
SK바이오팜 상장 행보에 증권가와 바이오·제약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신약을 2개나 보유하는 등 경쟁력을 입증했다는 평가지만, 일각에서는 시장에서의 성장성을 입증하기까지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조정우 SK바이오팜 사장이 2019년 11월 SK서린빌딩에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의 미 FDA 허가와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SK바이오팜은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의 수요 예측 결과를 토대로 19일 공모가를 4만 9000원으로 확정했다. 당초 공모 희망밴드가 3만 6000~4만 9000원이었는데, 수요 예측에 참여한 기관투자자들의 주문이 몰려 835.66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공모가를 밴드 상단인 4만 9000원으로 확정했다. 상장 공모주는 총 1957만 8310주다. 공모가 기준 이 회사의 시가총액은 3조 8373억 원 수준이다. 6월 23~24일 청약을 거쳐 7월 2일 상장한다.
증권가에서는 SK바이오팜의 기업가치를 예상 공모가보다 높은 5조~6조 원으로 평가한다. SK바이오팜이 글로벌 임상 후 미국 FDA 시판 허가를 받고 지난해 7월과 올해 5월 각각 현지 출시한 수면장애치료제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 등 중추신경계(CNS) 분야 신약 2개가 가치를 인정받고 있어서다.
대신증권은 SK바이오팜의 상장 후 적정 시가총액을 5조 8500억 원으로 산정했다. 수노시와 엑스코프리의 신약 가치는 각각 5050억 원, 5조 3000억 원으로 추정하지만 수노시가 올 1월 유럽의약품청(EMA) 판매 승인을 받는 등 유럽 판매 허가 시점이 예상보다 빨랐고 엑스코프리의 향후 유럽 진출까지 감안하면 가치는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엑스코프리는 신약후보물질 발굴부터 글로벌 임상, 미국 FDA 판매 허가와 현지 영업망 구축까지 모든 과정을 SK바이오팜이 독자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서 2003년 LG생명과학(현 LG화학)의 항생제 팩티브, 2014년 동아에스티의 항생제 시벡스트로, 2016년 SK케미칼의 혈우병 치료제 앱스틸라도 FDA 승인을 받았지만 중간 단계에서 해외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했다.
SK바이오팜의 후속 파이프라인도 탄탄하다. 엑스코프리와 수노시를 제외하고 SK바이오팜이 임상을 진행 중인 신약후보물질은 소아 희귀 뇌전증 치료를 위한 ‘카리스바메이트’, 희귀 신경계 질환 치료용 ‘렐레노프라이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용 ‘SKL13865’ 등 총 6개다. 모두 CNS 질환 치료 목적인데, 해당 분야는 신약 수요가 높다는 점에서 시장 전망이 밝다. 글로벌 시장조사·컨설팅 기관 ‘프로스트 앤 설리번’은 글로벌 CNS 의약품 시장 규모에 대해 2018년 840억 달러에서 연평균 6% 성장해 2024년 11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근 30년에 걸쳐 신약개발 기술력을 쌓았고 현지 생산 공장을 설립하고 의료진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공급·판매하는 등 신약개발에 필요한 모든 밸류체인을 갖췄다. 이 체계를 바탕으로 차기 신약물질을 개발하고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과 공동개발 제휴를 하는 등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타사로 기술 이전이나 공동 투자, 자체 개발·생산 등 다양한 방식의 투자로 파이프라인을 정리·보완하면 더 빠른 주기로 글로벌 신약 개발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우울증이라 판단하는 기준이 높아 CNS 시장 규모가 작지만 미국만 하더라도 항우울제 등 CNS 계열 약을 많이 복용한다. 시장 규모가 큰 미국에 먼저 진출한 것은 좋은 전략”이라고 했다.
증권가에서도 SK바이오팜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신약개발 기술력을 입증한 뒤 상장한다는 점에서 거품 논란이나 리스크가 덜하다고 진단한다. 다만 IPO를 통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상장 직후 SK바이오팜 주가가 단기 급등하는 등 지나치게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SK바이오팜의 유통주식 비율은 SK 보유 지분 100% 중 25%로, 5%는 우리사주조합(1년 보호예수)에 우선 배정한다. 투자자들에게 할당되는 20% 가운데 기관투자자 배정 물량인 15%는 의무보유 확약기간(15일·1개월·3개월·6개월)이 붙어 주식 매각이 제한된다. 따라서 상장 후 바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은 일반 청약자 물량 5%가량으로, 주식 수로 따지면 391만 주에 불과하다.
SK바이오팜 상장 행보에 증권가와 바이오·제약업계 흥행 기대감이 커진다. 조정우 SK바이오팜 사장이 2019년 11월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와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다른 위험 요인도 있다. 기본적으로 CNS 의약품 개발이 매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 개발에 성공한 뒤에도 시장에서 입지를 굳건히 다진 글로벌 제약사들과 경쟁해야 한다. 앞서 LG화학도 미국에서 팩티브를 출시했으나 글로벌 제약사 제품과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과질환 치료제는 환자가 한 번 쓰면 오래 복용하기에 사용량은 많지만 쓰던 약을 중간에 바꾸면 부작용이 날 수 있어 기존 약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며 “다국적 제약사 몇 곳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여서 진입장벽이 높아 개발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음에도 국내 제약사들이 도전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권준수 교수는 “SK바이오팜은 미국에서 이미 신약 2개를 허가 받은 만큼 질적 측면에서 인정받았고, 관련 파이프라인을 많이 확보했기에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망하면서도 “이제 시작 단계이기에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큼의 마켓셰어를 차지할 수 있느냐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 관련 리스크가 내재돼 있는 것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세노바메이트 임상시험 중 시험 대상자가 부작용으로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SK바이오팜 자회사인 미국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상대로 2016년 6월 27일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기돼 현재 미국 애리조나 주법원에서 증거개시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SK바이오팜은 투자설명서를 통해 “세노바메이트 부작용에 따른 사망 사례는 FDA 승인 과정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 뒤 시판 허가를 받은 것으로서 시판허가 취소 및 판매 중지 가능성은 낮다”며 “SK라이프사이언스는 임상시험에 대해 부보액(보험가입액) 1000만 달러 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며 손해배상 지급시 부보금액 내에서 지급될 것이라고 예상하기에 재무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뇌전증 의약품 시장 내 주요 신약의 특허 만료에 따른 제네릭(복제약) 또는 개량신약 경쟁 심화나 미국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 등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제약시장은 의약품 가격 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에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발표해왔다. 특히 올해는 11월 대선을 앞둔 만큼 약가 인하 정책을 실시할 경우 미국을 주무대로 한 SK바이오팜 신약들의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